북아프리카, 카리브해 그 현란한 빛의 황홀

<김병종의 길 위에서 황홀전>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6월 21일까지

등록 2009.06.16 09:39수정 2009.06.1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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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전을 축하하기 위해 오신 성악교수합창단. 그의 전시회는 자주 그림과 음악이 만난다.
김병종전을 축하하기 위해 오신 성악교수합창단. 그의 전시회는 자주 그림과 음악이 만난다.김형순

'김병종의 길 위에서 황홀전'이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6월 21일까지 열린다.

작년 봄에 작가가 날 만나자고 하더니 느닷없이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를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중남미기행 이후 또 다른 도전인 셈인데 왜 그렇게 여행에 잡착하냐고 물었더니 어린 시절 고향 남원이라는 곳이 장안이라고 해봤자 너무 좁아 늘 넓은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단다.


그는 작가로써 새로운 풍경을 보면 새로운 감각이 태어나고 새로운 상상이 일어나고 새로운 작품을 잉태하는 것인가. 작가는 풍경과 교감하고 자연과 교접하면서 서로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괴테는 "시간은 밭이다"라고 했는데 누구는 시간으로 돈을 만들고 누구는 시간으로 권력을 만들지만 그는 시간으로 정감 넘치는 그림을 만든다. 그렇게 현란한 색채와 생동감 넘치는 구성으로 그의 감각세계를 화폭위에 옮겨놓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현대적 감각의 '문인화'는 세계 여러 곳에 소장

 '카리브의 추억2' 캔버스 한지 부조 혼합재료 50×128cm 2008
'카리브의 추억2' 캔버스 한지 부조 혼합재료 50×128cm 2008김형순

그는 그림을 시처럼 쓰고 시를 그림처럼 그린다. 상징적 '문인화'에 능한 현대판 선비라고 할까. 그의 이런 기질은 예기 넘치는 그의 고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적 호기심의 폭을 넗혀 해외로 나간다. 그리고 지적 열망도 높아 동양철학에도 깊이 빠진다.

'카리브의 추억2'는 외견상 중남미의 풍경을 띠고 있으니 그 내용은 어린 시절에 그가 듣고 본 민화의 해학, 판소리의 신명, 문인화의 여유, 민속의 자유분방함 등이 뒤섞여있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을 중남미의 문화코드로 옮겼을 뿐이다. 그의 이런 조형능력은 세계인의 마음도 사로잡아 그의 작품들이 대영박물관 등 유수한 세계미술관에도 소장된 것인가.


이런 점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종근은 이렇게 평하고 있다.

"김병종은 철저하게 '전통'을 내포하면서 '현대'로서 그 외연을 이룬다. 동을 축으로 하고 서를 외연으로 한다. 그의 작품은 추상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 같은데 뜯어보면 또한 구상적이라 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의 작품은 현대적이면서도 토착적이라는 점이 매력이다. 어떻게 이 양자를 그토록 잘 조화시킬 수 있는가"


삶에 기와 에너지를 넣어주는 마술사

 '라틴기행' 캔버스 한지 닥판 먹과 채색 97×162cm 2008
'라틴기행' 캔버스 한지 닥판 먹과 채색 97×162cm 2008김형순

'라틴기행'에서는 "그래, 인생은 한바탕 춤 같은 것, 울적한 날에도 마음에 꽃을 피운다"라고 고백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실 산다는 게 별건가. 그는 그림을 통해 하찮은 일상을 놀라운 축제로 바꾸는 귀재다. 무딘 손짓 하나도 그림 속에서는 멋진 춤사위가 되고 아주 작은 사건도 꿈과 낭만과 즐거움을 키우는 소재가 된다.

사실 현대인들은 대부분 평균적 소비자가 되려고 온종일 정신없이 일한다. 그러다보니 삶의 능동적 주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비의 덫에 걸려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지는 소외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에릭 프롬은 이를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으로 나누지 않았던가.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활기와 여유를 되돌려준다. 또한 분주한 우리들에게 숨통을 터주고 위로와 용기도 준다. 더 나아가 치유효과도 발휘한다. 그래서 그는 메말라가는 현대인의 삶에 기와 에너지를 넣어주는 마술사 같다. 바로 그런 점이 그의 그림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싶다.

카리브해와는 또 다른 북아프리카의 햇살

 카리브'어락(漁樂)' 캔버스 한지 먹과 채색 45×65cm 2008
카리브'어락(漁樂)' 캔버스 한지 먹과 채색 45×65cm 2008김형순

카리브 '어락(漁樂)'의 청옥색을 보면 그는 영락없이 소년의 감성을 가진 시인이다. 이런 예민한 촉수를 가진 작가에게 원초적이고 찬란한 색채의 유혹이 그에게 강력한 영감과 에너지를 샘솟게 하는 모양이다. 꿈을 좇는 소년처럼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도 새로운 세계가 목말라 중남미에 이어 아프리카로 떠나게 된 것이리라.

그가 작년 여름에 북아프리카를 여행지로 택했다는 것은 이제 웬만한 곳은 다 가봤다는 뜻인가. 부제로 '황홀'을 붙인 건 그가 가본 곳 중 가장 인상적이었나 보다. 하긴 이 세상에서 햇빛이 가장 많은 곳이 아프리카이고 그런 햇빛의 질과 양에 비례해서 아름다운 색이 나온다고 가정할 때 이 세상에서 최고의 그림은 거기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하긴 피카소나 모딜리아니도 창작에서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 그 해답을 찾은 곳이 바로 아프리카미술이다. 아프리카의 햇빛과 바람은 역시 중남미의 그것과도 다르다고 작가도 말한다. 그도 이제 아프리카의 빛을 봤으니 진정한 작가라고 해도 좋으리라.

물 뜨는 아프리카여인의 아련한 모습

 '오아시스풍경-사하라' 한지 먹과 채색 50×23cm 2008
'오아시스풍경-사하라' 한지 먹과 채색 50×23cm 2008 김형순

이 세상에서 어디가 가장 아름답냐고 물으면 그 답은 다 다르리라. 그 중 사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비행사 출신 생텍쥐페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샘이 숨어있기 때문이다"라며 그곳을 찬미하였다. 김병종도 바로 그런 심정으로 '오아시스풍경'을 그린 것이 아닌가싶다.

여기 오아시스에서 물 뜨는 여인의 모습은 안쓰럽고 아련하나 정겹다. 물의 양은 생명을 아슬아슬하게 지킬 정도도 적어 보이지만 그런 결핍에도 풍요를 즐기며 살아가는 그들만의 비법이 있는 것인가. 그들이 사는 모습이 불편해 보여도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황량한 사막에도 생명의 꽃은 피어나고

 '알제리기행' 한지 닥판 먹과 채색 97×165cm 2008
'알제리기행' 한지 닥판 먹과 채색 97×165cm 2008김형순

이번엔 '알제리기행'을 보자. 작가는 모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나는 화면을 소우주로 하여 그곳에 생명의 회복을 꿈꾼다. 그리하여 온갖 생명 있는 것들이 서로 기쁨을 나누는 원초적 공간을 만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작품을 그런 맥락에서 보면 될 것 같다. 황량한 사막에도 생명의 꽃은 피고 거기에 흐르는 파장을 수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잠시 카뮈이야기를 꺼낸다. 알제리가 배경인 카뮈의 '이방인'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단지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배경이 된 알제리에 와보니 그런 분위기가 조금은 이해가 된단다.   

하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논리적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삶에 공식이 없듯이 작가도 북아프리카의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잠시 문명의 때를 벗고 원시적 생명에 대한 허기짐을 해소시킨 것 같다.

모로코에서 본 초록빛의 극적 황홀감

 '모로코-마조엘정원' 한지 닥판 먹과 채색 97×162cm 2009
'모로코-마조엘정원' 한지 닥판 먹과 채색 97×162cm 2009김형순

이제 끝으로 '모로코-마조엘정원'을 감상해보자. 미술관에서 제공한 김병종 '북아프리카 기행문'에 보면 작가가 이 정원에서 본 초록빛에 반해 "초록색이 그토록 강렬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나는 그 곳에서 깨달았다. 창조된 첫 모습이 그러했을 것 같은 원색의 많은 나무와 꽃들이 뿜어 대는 영기(灵氣)는 날 취하게 한다"고 탄성을 토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가 본 이런 아프리카의 빛과 색의 극치와 황홀경은 그의 예술적 끼와 기질을 자극하여 온몸에 소름이 솟듯 그렇게 강력한 인상과 흔적을 남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작가는 순간순간 맛보는 이런 감동과 여운을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나눌 수 있다니 정말 부럽다.

그의 아프리카기행은 이제 끝났다. "여행의 모든 추억이 세포를 밀고 들어와 내 몸 안에서 육화된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여행에 배고픈 것 같다.
친화력 넘치는 그의 기질로 볼 때 아직도 달려보고 싶은 곳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삶의 아픔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을 잉태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 강남 0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덧붙이는 글 갤러리현대 강남 0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김병종 #북아프리카 #카리브해 #김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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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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