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선 다큐저널리즘의 강렬한 외침

정길화 저 <기록의 힘 증언의 힘> 출간

등록 2009.06.18 14:12수정 2009.06.1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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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저널리즘이 위기다. 제작비의 삭감으로 기획물들의 진행이 좌초되고 있고, 피디집필제를 강요하면서 취재에도 바쁜 피디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있다. 피디저널리즘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방송 위기로 이어진다. 앵무새처럼 '땡전' 뉴스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방송사에는 피디들이 보도팀과는 또 다른 탐사 저널리즘의 세계를 열었고, 방송사의 존재 가치를 높였다. 하지만 안팎의 수많은 갈등들이 쏟아지면서 위험은 증대되고 있다. 방송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민주화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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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화 저 '기록의 힘, 증언의 힘' 표지 한국 다큐저널리즘의 선두주자인 정길화 피디의 깊은 성찰서 ⓒ 조창완

▲ 정길화 저 '기록의 힘, 증언의 힘' 표지 한국 다큐저널리즘의 선두주자인 정길화 피디의 깊은 성찰서 ⓒ 조창완

우리나라 피디저널리즘의 비조(鼻祖)라고 할 수 있는 정길화 피디가 이 위기를 조심스럽지만 깊게 파헤친 책을 내놓았다. '어느 다큐멘털리스트의 다큐멘털리티'라는 부제가 붙은 '기록의 힘, 증언의 힘'(시대의 창)이다.

 

'추적 60분'이 가장 먼저 피디저널리즘을 표방했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피디저널리즘을 각인시킨 프로그램은 MBC '피디수첩'이었다. 피디수첩에는 인상적인 피디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정길화 피디를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경상도 악센트가 남아있지만 끈기있는 보도로 각인됐다. 이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을 통해 피디저널리즘을 정착시켰다. 물론 멕시코 이주민의 한을 다룬 <에네껜>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에게 정길화 피디는 글로 기억되기도 했다. 피디연합회장을 할 때 썼던 '기형도 시인'에 대한 칼럼을 필두로 가끔 그가 쓰는 글들은 당대 현안을 가장 깊게 성찰한 의미있는 글들이었다. 이번에 펴낸 그의 '기록의 힘, 증언의 힘'은 그가 최근 쓴 그런 칼럼들을 묶은 것이다. 책은 '기록의 힘, 증언의 힘', '지상파 방송과 미디어 공공성', '어느 다큐멘터리스트의 다큐멘털리티'로 구분되어 있다.

 

사실 글을 쓴 주제들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일관성을 벗어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기록의 힘, 증언의 힘'(41페이지), '최진실을 위한 만가'(146페이지), '대기자 김중배 50년 봉정식'(210페이지) 등만 읽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제작할 때 한사코 증언을 거부한 이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저자는 "이번 일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절감하는 것은 기록과 증언의 힘이다. 사실의 위력, 진실이 주는 파괴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노자>에 나오는 말로 '하늘의 그물은 넓고 커서 성긴 듯해 보이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 없다. 이 시대 '하늘의 그물'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그것은 전파인 것 같다. 전파는 천망天網의 메타포로 그럴싸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역사의 단초는 기록에서 출발한다. 후대의 사가와 다큐멘터리스트는 여기에서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지금 누가 그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적고 있다. 다큐멘터리스트로 그의 사명감을 절절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다.

 

그가 연출한 다큐로는 기적적인 43%의 시청률을 올린 <인간시대> '최진실의 진실'이 있다. 그런 그에게 최진실의 자살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소회를 적었다. <인간시대> 제작 당시 느꼈던 최진실에 대한 느낌과 더불어 그녀의 인생 여정을 회고했다.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을 선택한 그녀를 두고 다음과 같이 쓴다. "2008년 가을날의 신새벽에 그녀가 내린 결정은 그런 모든 것들이 마침내 한계에 바닥쳤을 때 내린 최후의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문득 시인 존단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시구가 생각난다. 가로되 '어느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인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서 저 종이 울리는지 묻지 말라. 종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기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부연하면 이 종은 한국 사회에 울리는 경종警鐘이 아닐까 한다"라는 부분에서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까지 중첩되어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또 올 2월26일에 있었던 김중배 대기자의 봉정식에 관해 쓴 글도 그가 지금 겪는 언론 민주화의 위기를 너무도 선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는 기자들의 사표와 같은 김중배 대기자의 일성을 전한다. "한가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정색한 후,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민주화 세상에 접어들었지만 민주화가 공고화되지 못하면서 다시 역풍의 반동시대가 되고 있다"며 스스로의 반성을 촉구했다고 전한다.

 

정피디의 글이 생동감 있는 것은 문학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도현도 말하고, <색, 계>의 탕웨이도 말하고, <지리산>의 이병주도 말하고,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동료 이채훈 피디에 대해서도 말하고, 정현종을 두고 문학에 대한 꿈도 말한다. 때문에 다큐멘털리스트의 좀 지루한 글 같지만 차분히 읽다보면 감수성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또 강준만 교수의 발문이나 주철환, 손석희, 김미화의 짧지만 강렬한 촌평도 정피디의 넓이를 보여주는 것 같아 빙그레 미소짓게 한다.

2009.06.18 14:12 ⓒ 2009 OhmyNews

기록의 힘, 증언의 힘 - 어느 다큐멘터리스트의 다큐멘털리티

정길화 지음,
시대의창, 2009


#정길화 #피디저널리즘 #기록의 힘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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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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