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님 믿고 삶의 전부를 걸었습니다"

'탈시설' 장애인들 14일째 노숙농성... "차라리 길에서 사는 게 행복하다"

등록 2009.06.18 14:11수정 2009.06.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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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7일 저녁 '탈시설-자립생활 거리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가 경찰과 대치하던 한 장애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17일 저녁 '탈시설-자립생활 거리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가 경찰과 대치하던 한 장애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박효원


a  17일 저녁 7시 30분, 혜화동 로터리에서는 '탈시설-자립생활 거리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17일 저녁 7시 30분, 혜화동 로터리에서는 '탈시설-자립생활 거리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권박효원


"오세훈 시장님, 이번 달에 만나기로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때 약속하셨죠? 그 약속 믿고 저희의 삶 전부를 걸었습니다."

17일 오후 3시, 중증장애인 100여 명이 오세훈 서울시장 공관 인근의 혜화동 로터리에 모였다. 오세훈 시장에게 자립생활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과 주장을 적은 팻말을 목에 걸고 있었다. 팻말에는 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도 붙어있었는데, 수신인은 오세훈 시장이었다.

이들 중에는 지난 4일 요양원을 나와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농성 중인 장애인 8명도 있었다. 14일째 길에서 숙식을 해결하는데도 이들은 "시설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시키는 대로 먹고 자고 TV 보다 죽으면, 행복하시겠습니까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집'이었던 시설보다 길거리가 낫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롭다'는 점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하는 일 없이 TV만 보다가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는 생활은 '사육'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인식은 지난 4월 서울시가 감독하는 38개 생활시설 거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이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약 70%의 장애인이 "거주시설과 서비스만 제공된다면 시설에서 나오겠다"고 답했다.

1988년부터 2년간 시설에서 살았던 김남기(53·지체장애3급)씨는 "CCTV를 설치해 시시각각으로 감시를 당했고 먹다 남은 학교급식을 먹었다"고 말했다. 외출하겠다고 나와서 시설을 탈출한 그는 "서울역에서 노숙하면서 너무 배가 고파 쓰레기통을 뒤진 적도 있지만 시설보다는 나았다"고 강조했다.


임영채(42·지체장애2급)씨는 5년간 시설에서 살았는데 1년에 2번 정도 허가를 받아 외출 할 수 있었고, 정부에서 준 수급비도 시설의 관리를 받아야 했다. 개성에 맞는 옷도, 먹을 음식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 기도원에서 생활했던 이승연(38·뇌병변1급)씨는 "종일 기도만 하다보니 외롭고 답답해서 우울증에 거식증까지 생겼다"고 전했다.

노숙농성 중인 중증장애인들도 "시설은 감옥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주기옥(63·지체장애2급)씨는 "23년 동안 한번도 마음대로 나오지 못하고 처박혀 살았다, 삶이 너무 지겹고 지옥같다"고 호소했다. 김진수(60·지체장애1급)씨는 "외출할 때마다 장부를 쓰지 않으면 무단외출이 된다"고 말했고, 하상윤(37·지체장애1급)씨는 "프라이버시도 전혀 없고 혼자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아들아, 시설에 안 가면 넌 어디서 먹고 살 거니"

a  17일 오후 3시 오세훈 서울시장 공관 인근 혜화동 로터리에서 열린 '탈시설-자립생활 쟁취 100인 선언 기자회견'.

17일 오후 3시 오세훈 서울시장 공관 인근 혜화동 로터리에서 열린 '탈시설-자립생활 쟁취 100인 선언 기자회견'. ⓒ 프레시안 허환주


시설에서 살던 장애인들은 가족에 의해서 버려진 경우가 많았지만, 스스로 시설을 선택한 경우에는 "돌봐줄 가족이 없다" 또는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눈칫밥 먹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시설로 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시설 장애인의 가족 94.4%는 "장애인이 계속 시설에 살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농성 중인 김동림(47·지체장애1급)씨의 아버지는 술을 마실 때마다 아들을 향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아내를 때렸다. 김씨는 어머니를 붙잡고 "집에서 나가고 싶다"면서 울었고, 그 후 시설에 들어갔다. 김현수(34·지체장애1급)씨는 어머니에게 "시설에 가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지만 "시설에 안 가면 어디서 먹고 살 거냐"는 말을 들었다.

김용남(51·지체장애1급)씨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는데, 작은형과 형수도 사고를 당한터라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혼자 살던 김진수(60·지체장애1급)씨는 두 달 동안 엎드려서 대소변을 해결하다가 자립을 포기하고 시설을 택했다.

아직 시설에 들어가지 않은 장애인도 가족 때문에 시설생활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명동(30·뇌병변1급)씨는 "부모님이 저를 많이 힘겨워하신다, 조만간 시설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면서 걱정을 토로했다.

그렇다고 가족들과 함께 사는 장애인이 독립했다고는 할 수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의 보호 없이는 생활하지 못한다면 '자립생활'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장애인들은 가족들에 의해 집에 감금되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운호(36·뇌병변1급)씨는 "27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 1년에 세 번쯤 외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홍철(27· 지적장애2급)씨는 부모의 구타를 견디다 못해 맨발로 집을 나왔다.

영화 같은 연애 끝에 탈시설 축 결혼, 그러나...

노숙농성 중인 장애인들은 서울시에 탈시설 5개년 계획 마련과 함께  ▲ 중증장애인 자립주택 지원 ▲ 활동보조서비스 확대 및 대상제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지원되지 않으면 시설을 벗어난다고 해도 사실상 자립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온 증언도 이와 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장애인 부부 오재석(32·지적장애2급)씨와 아내 김복자(29·지체장애1급)씨는 요양원에서 만나 연애를 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요양원 측의 구타와 감금을 견디다 못한 연인들은 퇴소를 결심했지만, 요양원 측은 같은 법인이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오씨를 입원시켰다.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를 통해 병원에서 나온 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오씨와 김씨는 오는 8월 태어날 아기 생각에 "완전 좋다"고 입을 모았지만 아직 '완전' 행복은 아니다.

부부는 한 달에 75만 원 정도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는데 월세와 공과금을 빼면 30만 원이 남는다고 한다. 김씨는 "아기가 태어나면 월세를 낼 수 없다, 시설을 나와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월세 생각에 답답해 죽겠다"면서 주거 지원을 요구했다.

100일 된 갓난아이를 둔 초보엄마 이준애(27·뇌병변1급)씨도 주거지원과 활동보조가 절실하다. 혼자 사는 장애인의 경우 주당 160시간 활동 보조를 받지만, 장애인 남편과 같이 사는 이씨는 주당 140시간만 활동보조를 받는다. 하루에 4시간 보조로는 자신과 아기를 돌볼 수 없다. 게다가 이 가족에게 나오는 기초수급비는 약 8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a  17일 오후 3시 '탈시설-자립생활 쟁취 100인 선언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서한을 전달하려던 장애인들을 경찰이 시장공관 앞에서 가로막고 있다.

17일 오후 3시 '탈시설-자립생활 쟁취 100인 선언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서한을 전달하려던 장애인들을 경찰이 시장공관 앞에서 가로막고 있다. ⓒ 권박효원


현재 서울시는 '장애인 행복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증장애인을 위한 전세주택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올해는 상반기에 50가구 하반기에 20가구를 각각 지원할 예정이다. 그러나 시설 장애인의 경우 주민등록상 시설사업장의 동거인으로 등록되어 무주택자가 아니기 때문에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없다.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탈시설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이 주거대책인데 서울시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국토해양부 지침이나 관련 법규에 따라야 한다"면서 "현행 공공주택정책이 시설 장애인에게 불리한 면이 있어서 국토해양부에 개선을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요즘 장애인시설은 서비스가 잘 되어 있고 외출도 자유로운 편이다, 자원봉사자가 많아서 그렇게 폐쇄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면서 "호텔급의 시설도 많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요즘 시설은 호텔급... 서비스 잘 돼 있다"

장애인단체들에 따르면, 오 시장이 지난해 12월 24일 면담 자리에서 "시설 장애인의 실태와 욕구를 조사한 뒤 6월까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노숙농성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온 것도 "6월 안에 성과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서울시 측은 "장애인단체쪽에서 면담을 요청해서 '그러자'는 정도로 답했을 뿐 6월까지 정책 마련을 약속한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도 난처하다"고 말했다.

최용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시설이 그렇게 좋아 보이면 오세훈 시장이 가서 살아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다시 서울시장에 뽑히려면 우리들과 한 약속을 지켜라"라고 압박했다.

농성 중인 장애인들은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의 노숙은 잠시 집에 못 들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집을 버리고 나온 것이다. 주거와 생계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주거지가 없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도 받지 못하게 됐다. 일단 혜화동을 관할하는 종로구 쪽에 긴급요청은 해놓았지만 결과는 모른다.

20년을 시설에서 살아온 김진수씨는 "이왕 나왔으니 죽기살기로 해야지, 두 달이든 세 달이든 집 장만할 때까지는 못 떠난다"면서 "이건 모든 장애인의 문제이고 비장애인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노점 하나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7시 30분, 혜화동 로터리에서는 장애인들의 1박2일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최근 추세대로 경찰이 도로에 차벽을 설치했고 참가자들을 채증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방패를 든 경찰이 몇 차례 대치했다. 몸싸움 도중 흥분한 한 참가자는 이렇게 외쳤다. "장애인 다 잡아가라! 시설에 갇히나 감옥에 갇히나 그게 그거지!"

a  17일 오후 3시, 혜화동 로터리에서 열린 '탈시설-자립생활 쟁취 100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한 장애인이 자신의 바람을 손피켓에 적고 있다.

17일 오후 3시, 혜화동 로터리에서 열린 '탈시설-자립생활 쟁취 100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한 장애인이 자신의 바람을 손피켓에 적고 있다. ⓒ 프레시안 허환주


농성 중인 장애인들이 살았던 석암요양원도 몇 년 전까지는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까지 비리 문제로 몸살을 앓은 끝에 지금은 이사장은 물론 당시 운영진들이 퇴진하고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 다행히 이사진 교체 이후 새로운 시설비리나 인권침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시설들에 비하면 석암에서의 인권침해는 새발의 피였다. 이미정(38·뇌병변1급)씨의 어머니는 장애아어머니모임에서 장애를 고치는 기도원 원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딸을 시설에 보냈다.

그러나 기도원에서는 머리도 감겨주지 않고 "이가 많다"고 이씨의 머리를 밀어버렸다. 이유 없이 권투 장갑으로 이씨의 등을 때리기도 했다. 금식기도를 한다면서 1주일 동안 밥도 주지 않았다. 몰래 음식을 먹다가 들킨 이씨는 무덤에 내쫓겼다가 떨면서 기어서 기도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정지숙(41·뇌병변1급)씨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상황은 시설 내 인권침해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지금은 장애인복지신문 기자와 결혼해 시설을 떠나고 에바다장애인자립센터에서 상담가로 일하지만, 한때 그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고 한다. 그 증언을 들어보자.

"손님들이 방문해서 이 방 저 방을 들여다보면 동물이 된 느낌이랄까요? 누워있는 모습은 물론 심지어는 목욕할 때도 (손님 방문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부원장은 원생들 보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말했지만 행동은 전혀 딸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여자 큰아이들만 데려다놓고 뒤에서 속옷 끝을 잡아당기고 가슴에 손대고 입술에 뽀뽀도 하라고 시키며 갖은 추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무시무시한 선생이 왔는데 아이들을 괴롭히고 때리기도 하며 얼굴에 멍이 들면 분 화장으로 커버시켜서 학교로 보냈고 자기 맘에 안 들면 아이들을 때리기 일쑤였습니다.

두부공장에서 날짜가 지난 두부를 서너 상자씩 가지고 오면 쉰내가 펄펄 나는데도 국을 끓여 쉰내가 여전하고 아이들이 구토와 배탈, 설사까지 하는데도 여전히 두부국은 나옵니다. 썩어가는 상추무침이 반찬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탈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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