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하건데, 나는 정신이상자가 아니었다!

[서평]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고

등록 2009.06.19 10:30수정 2009.06.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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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저.

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저. ⓒ 윤석관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힌 채 여드레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치욕스런 죽음을 당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인물은 영조.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도대체 사도세자는 왜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야 했는가? 도대체 세자가 무슨 잘못 저질렀기에 조선의 전성기를 마련했던 임금 중의 하나인 영조가 자기의 자식을 그렇게 잔혹하게 대해야만 했는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해 그의 아내였던 세자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서는 어린 시절 완벽한 왕재로 만들어지고자 벌어진 영조의 엄격한 훈육방식 때문에 사도세자가 정신이상이 생겼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도교경전인 '옥추경' 을 읽은 후에, 갑자기 겁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천둥과 번개를 매우 무서워해서,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다. 여색을 탐하기 시작해서, 궁궐 안에 궁녀를 건드리기 시작해서 임신까지 시키기 시작했다. 비구니를 범하고, 비구니의 머리를 기르게 해서 궁 안까지 데려와 살게 했다. 정신착란 증세 때문에 내시를 죽이고, 자신이 사랑한 궁녀를 죽여서 모두 무서워 피했다. 아무도 몰래 평안도로 가니, 역적모의 의심까지 받게 된다.  -한중록 인용-

이와 같은 세자의 무수한 악행들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조선왕조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해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서술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동안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해서 가장 유력한 정설로서 인정되어 왔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고백>을 저술한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은 혜경궁 홍씨가의<한중록>이 그녀의 말년에 저술되어진 회고록 형식이었고, 당시의 승정원의 기록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왜곡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면서 <한중록>이 그녀의 가문인 풍산 홍씨를 보호하기 위해서 작성된 지극히 변론적인 성격을 띤 글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으로 당시의 여러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사도세자의 죽음이 정신이상 때문이 아니라 정쟁의 결과였다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즉, 영조가 지지했던 정파와 사도세자가 지지했던 정파가 각기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는 것이 그의 죽음의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정치적 대립은 숙종이 계획적으로 환국(정권 물갈이식 교체)을 반복하게 된 결과, 신하들이 자신의 세력을 보존하기 위한 방식으로 택군을 시작하게 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고, 경종에서 영조로 왕위전달 과정에서 일어난 강압적인 노론의 정치 압력 때문에 상처에서 고름이 맺혔으며, 그 결과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곪아 터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리고 부자간의 갈등이 망나니 아들 때문이라는 혜경궁 홍씨의 주장에 저자는 어린 시절의  세자의 언행들은 물론 그의 일생의 묘사를 통해 사실이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훈육으로 인해 꾸중을 들었다는 내용과는 달리 상당히 비상한 인물이었고, 아버지의 물음에 막힘없이 대답하면서 영조를 기쁘게 했었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소학은 원량이 일찍이 읽은 것이니 나는 배운 것이 어떠한지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입교'가 왜 먼저이며 '명륜'이 왜 다음이냐?"
"가르침을 받은[입교]후에 윤리를 밝힐 수 있으므로 입교를 먼저 배우는 것입니다."

"'가언'과 '선행'이 '계고'보다 뒤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동은 반드시 옛 것을 상고해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8조목 중 '격치'를 먼저 삼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지식에 도달한 귀에야 세상을 다스리는 정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올바른 도덕적 견해를 펼치던 사도세자는 강경파 소론이 일으킨 '나주벽사사건' 이후에 탕평책이 무너지고 그로 인한 노론의 득세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레 노론을 배척하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보이면서 노론에 위화감을 조성한다. 그 때문에 노론의 중심에 있던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그러니까 사도세자의 장인이 되는 홍봉한을 위시한 노론 전체가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대비도 노론이었으며, 중전도 노론이었고, 최근에 영조가 얻게 된 첩도 노론이었으며, 그의 아내 혜경궁 홍씨 역시 가문을 중시하던 노론이었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부자간의 이간질을 자행했으며, 그들의 행동은 점차 부자간의 단절을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나주벽사사건' 이후 약해진 소론의 입지 위에서 세자는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는 정권 교체 이후 생겨날지도 모를 노론의 반발에 대비하기 위해서 관서지방으로 미행을 다니면서 세력들을 모집하고, 집안에 몰래 땅굴을 파고 무기고를 만들었는데, 이 사실을 혜경궁 홍씨에 의해 홍봉한이 알게 되었고, 이것은 노론에게는 세자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구실을 삼기에 매우 적절한 먹잇감들이 되고야 말았다.

마침내, 장인 홍봉한을 위시한 노론은 나경언이라는 인물을 매수하여 그를 통해 세자의 비행을 알리는 '허물10조'를 왕에게 바치게 된다. 그곳에 적혀있는 내용은 불에 타서 현재는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했지만, 핵심은 세자가 정변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결국 나경언의 자백으로 세자의 무고함이 밝혀지게 되나, 영조가 세자를 포기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친모의 역모고변이 이어지자 영조는 부자간의 정치적 갈등 때문에 나라의 혼란이 지속되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세자를 내쳐버린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아들을 희생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였지만 세자가 듣지 않자 마침내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버린다.

영조는 가끔씩 세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일삼는 이들이 나오면 모조리 파옥시켰고, 결국 그를 살려달라고 비는 사람은 훗날 정조가 되는 사도세자의 아들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사도세자의 제거를 통해서 완승을 거둔 노론은 세자가 의지했던 조재호까지 제거하는데 성공. 마침내 노론 천하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마지막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세손 즉, 정조였다. 정조는 아버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결코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고, 폐세자의 위험을 비롯한 수많은 위험이 있었으나 그의 어미니 혜경궁 홍씨가 그를 지지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여든이 훌쩍 넘어서 약해진 영조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면서 결국 정조는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정조는 즉위 당일 이렇게 선포한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 말을 시작으로 대대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관여했던 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아버지였던 즉, 외할아버지 홍봉한과 자신의 외가의 처벌에 대해서는 심한 갈등을 느낀다. 왜냐하면 처벌하자니 어머니를 울게 되고, 처벌안하자니 아버지가 울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외할아버지를 살해할 수 없었던 정조는 그를 유배 보내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도처에 깔린 노론의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새로운 인재를 찾기 시작한다. 체제공을 시작으로 홍국영, 정약용등 오랜 시간동안 관직에서 벗어나있던 남인의 세력들을 그의 측근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규장각을 건립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재양성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는 노론 명문가의 가옥이 즐비한 서울을 버리고 수원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지 위해서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고 정약용에게 화성건축을 명하지만, 정조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병을 얻어 생을 마무리하게 된다. 정조가 죽은 원인에 대해서 독살설까지 나돌고 있지만 확실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경종, 영조, 사도세자, 정조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인 싸움을 자세하게 기록해놓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권력이 부자간의 정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권력이 가문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부부간의 정을 버릴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그리고 혜경궁 홍씨는 죽을 날이 가까워진 여든 나이에 이르러서도 끝까지 그녀의 가문의 허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손자들에게 거짓을 알린다.

권력은 이렇게 천륜보다 우위에 있을 정도로 막강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도세자의 죽음을 통한 역사에서 알 수 있게 되었다. 사도세자가 어린 시절 대답한 대로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동은 반드시 옛 것을 상고해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지금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를 돌아 봤을 때, 오늘날에 벌어지는 당파간의 물고 물리는 싸움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밥그릇은 정해져있고 먹고 싶은 사람은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싸우고, 요즘은 그것을 뛰어넘어 밥그릇 하나만으로 부족해서 밥그릇 여러 그릇을 챙기기 위해서 매일매일 국회라는 전투장에서 결투를 치른다. 나는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러하리라 생각하게 만드는 씁쓸함을 안으면서 이 책의 마지막을 쓰다듬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분명 사도세자와 같은 답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공헌하는 인물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우리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묵묵히 시민들을 위해서 자신의 한 인생을 바친 인물이 있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끝까지 불의에 맞서고 인물이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휴머니스트, 2004


#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휴머니스트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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