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9.06.20 17:35수정 2009.06.20 17:35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전직 대통령 탄핵사유 중의 하나가 경제파탄이었습니다. 경제를 파탄내서 국민들로 하여금 먹고살기 힘들게 만들었다는 주장이었지요. 그때 경제지표를 일일이 거론하면서 멀쩡한 경제를 두고 자꾸 파탄났다 하면 정말 경제가 어려워진다며 고개를 갸우뚱하시던 당시 대통령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시는지요?
이후 경제가 죽었다고 주장하던, 그래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고 그 경제 살리기의 일환으로 끈질기게 거론되던 대운하 사업은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치게 됩니다. 결국 국민이 반대하면 굳이 추진할 이유가 없다던 현 정부가 다른 것 하나 슬그머니 꺼내는가 싶더니 내놓고 하는 얘기가 이번에는 4대강이 죽었다며 4대강을 살려야 겠다는 것입니다. 둘러치나 메치나 넘어지기는 마찬가지인 것처럼 가만 들여다보면 대운하 얘기나 4대강 얘기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먼저 강 살리기라는 말 자체가 강이 죽었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얘기인데 멀쩡한 우리 4대강이 이 정권 들어서 갑자기 돌연사라도 했다는 건지, 이것을 어떻게 살리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주 단순한 자연원리에 따라 물은 원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강에 관한 한 물 얘기이고 보니 이보다 더 복잡하거나 어려운 얘기가 있을 수가 없겠습니다. 요는 강바닥의 모래를 퍼내고 중간 중간 보를 설치하여 홍수 조절능력을 향상시키고 갈수기 때 물을 저장하여 물 부족을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환경복원이다. 환경파괴다. 실효성이 있다. 없다' 찬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필자의 아침 출근길은 충북 청원군 옥산면을 거쳐 조치원 쪽으로 난 508번 지방도로를 이용합니다. 너른 미호평야를 가로질러 가다보면 시골에 흔히 볼 수 있는 아담한 내가 하나 나옵니다. 이름하여 지방하천 병천천, 동네 뒷산을 감돌아 흐르는 고로 우리는 그냥 뒷내라고 부릅니다. 매일같이 이곳을 지나다가 아주 우연찮게 이 조그만 시골 냇가가 지금 정부에서 계획하고 추진하려 하는 4대강 살리기 시범지역인 양 준설과 보를 설치하는 공사가 오래 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연스럽게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미리보기 표본이 된 셈입니다.
대부분의 시골 냇가가 그렇듯이 어렸을 적부터 머지않은 지난날까지 이곳은 금빛 모래가 반짝이고 아낙들이 종아리 걷고 들어가 모시조개를 (재첩) 주웠으며 저 또한 아내에게 양동이 들려 따라오라 이르고 투망 어깨 메고 강물 따라 올라가며 모래무지나 버들치 등의 물고기를 잡아 동네 이웃들과 천렵하던 곳입니다. 주말이면 멀리 청주 시민들까지도 찾아와 하룻밤 야영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이곳에 대규모 제지공장이 두 개나 들어서고 갈수기 필요한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선지 보를 하나 신설했습니다. 때맞춰 둑으로 대형 덤프트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냇바닥의 모래를 퍼 어디론지 나르는 작업이 몇 며칠 이어졌습니다.
지금의 4대강 살리기와 아주 똑같은 공법으로 본의 아니게 "병천천 살리기 사업"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진에서 보듯이 갈수기인 지금도 물이 확보되었습니다. 축소판이니 유람선은 아니라할지라도 모터보트라도 띄우면 나름대로 뱃놀이도 즐길 만하겠지요.
여기까지입니다. 보를 설치하고 바닥을 준설해서 우리가 얻은 것은 딱 이 두 가지뿐입니다. 고인 물은 사진처럼 썩어가기 시작했고 금빛 모래밭도 노란 모시조개도 모래무지하며 버들치 같은 물고기도 어디로 갔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천렵가자는 이웃도 없고 주말이 되어도 이곳을 찾는 청주 시민들도 없습니다. 제지공장만 갈수기에도 걱정 없이 가동되고 인근 논밭을 가진 농부들만 전에보다 물 퍼대기가 좀 나아졌을 뿐이지요. 결과적으로 얻은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은 사업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거기다가 더 큰 문제는 뒤늦게 잘못을 깨달았다하더라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4대강 살리기.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하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자고이래로 가장 단순하면서도 변함없는 원칙을 앞세우지 않고는 4대강 살리기든, 대운하든 모두가 엎질러진 물처럼 일단 저질러 놓으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신중해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2조 2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사업비는 으레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눈 내리지 않는 계절에도 눈덩이처럼 계속적으로 불어날 것이며 정권 임기내라는 단기간 내에 4대강에 포클레인 들이대어 살려낼 수 있는 우리의 강이고 사업이라면 죽었다는 강은 죽은 것이 아니라 일시 까무러친 것은 아닌지 그러면 그냥 돈 들이지 말고 흔들어 깨우면 되지 않을까?
당시 여권의 어느 실세가 자전거 타고 강 따라 한번 달려보고 우리나라 강이 죽었다고 탄식하는 것이나 한강변에 살면서 준설하고 나니 전보다 물이 맑아졌는데 왜 딴지냐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촌부의 말이라고 허투로 듣지 마시고 교통 편리하고 서울에서도 머지않은 곳이니 시간내시어 한 번 둘러보시기를 권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한겨레 신문 개인 블로그에 게재한 글입니다.
2009.06.20 17:3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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