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출할 때 막걸리 한 병에 국수 한 그릇이면 아주 든든하다.
김대홍
외할아버지였던가, 외삼촌이었던가 잘은 모르겠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1, 2학년쯤이었나?) 나를 안고 누군가가 "아따, 막걸리 한 잔 줘야 쓰겄소"라면서 입에 갖다 대었다(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어머니나 이모들은 기겁을 했던 것 같은데, 아스라하게 신 맛이 기억난다.
제대로 술 맛을 느낀 것은 초등학교 5, 6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선 종종 주말 간식으로 '술빵'을 만드셨다. 노릇노릇 부푼 모습이 먹음직스런 빵이었는데, 여기엔 막걸리가 꼭 들어가야 했다. 어머니는 꼬맹이에게 주전자를 쥐어주셨다. 꼬깃꼬깃한 돈과 함께.
막걸리집에 가서 반쯤 채운 뒤 돌아오는 길에 뚜껑을 열고, 막걸리를 따랐다. 아 그때 느꼈던 향긋한 맛이란.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그 유혹을 이기긴 힘들었다. 그래도 흔적을 남기면 안 돼 뚜껑에다 살짝살짝 마셨으니 더욱 감질 맛만 났다.
신 김치 '쭉' 찢어서 입에 한 잔 털어넣으면 '캬~'막걸리가 '맛있다'는 것을 느낄 무렵 집에서 공사를 할 일이 생겼다. 일꾼 두 명이 와서 일을 했다. 한낮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응달에서 두 사람은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틀림없이 밥그릇에 우윳빛 막걸리를 '콸콸콸' 따른 뒤, 손가락 푹 담가서 휘휘 저어 마셨겠지. 그리고 신 김치 '쭉' 찢어서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힌 뒤, 입에 밀어넣었을 테고. 그때 군침 흘린 기억이 난다.
입시에 목매던 10대 시절, 처음으로 '알딸딸한' 기분으로 안내한 것 역시 막걸리였다. 대학입학시험을 100일 남겨둔 어느 날, 친구들 몇이 불렀다.
"오늘 졸업 선배들이 격려한다고 부른대. 가자."
수업을 마치고 근처 대학교 잔디밭에 갔다. 큰 원을 그리며 둘러앉은 선배와 동기생들. 막걸리 잔이 돌았다. 드디어 술을 마시는 순간. 긴장에, 기대감에 침을 '꿀꺽' 삼켰겠지.
꽤 여러 잔 마셨다. 이 시간 술을 마시고 있으리라곤 꿈에도 모를 부모님에게 술 마신 티를 내면 안 됐으나 술맛과 향기는 강했다. 마실 만큼 마신 뒤 화장실에 가서 한참을 입을 헹구고 세수를 하며 법석을 떨었다. 그것도 모자라 껌을 사서 '질겅질겅' 씹었다.
결과는? 나는 시치미 '뚝' 떼고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갔고, 어머니는 정말 모르신 것인지, 모른 체한 것인지 완전범죄를 도와주셨다.
몽둥이 찜질보다 강했던, 라면그릇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