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59주년에 보는 흑백사진 두 장

등록 2009.06.25 16:57수정 2009.06.2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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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전쟁의 참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4살 되던 해(1953년) 7월에 휴전협정이 체결됐는데, 집안 어른들과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통해 당시 상황을 조금은 알고 있다. 


폭격으로 파괴된 공장건물들은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녹슨 쇳덩이를 주워 엿과 바꿔먹기도 했으며, 신작로 건너 공설운동장과 중앙초등학교에 군인들이 주둔(지금의 논산훈련소)하고 있어서 전쟁의 후유증을 피부로 느끼면서 성장했다.  

북진통일을 열망했던 이승만과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박정희 독재정권의 왜곡된 교과서로 북한을 배웠고, 권력자들의 눈치를 살피는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한국전쟁 59주년을 맞는 감회는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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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25일 신작로 건너에 있는 공설운동장 풍경. 군산시 남녀 초중고 학생들이 동원되어 궐기대회를 하고 있습니다. 행사를 마치면 시가행진을 했지요. ⓒ 조종안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매년 6월 25일이 되면 시내 남녀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물론 초등학생들도 궐기대회에 동원되었고, 한두 달 전부터 웅변대회와 연극 등 행사를 준비하느라 수업도 제대로 못했다.

6월 25일, 휴전협정일, 광복절, 국군의 날 등 한국전쟁과 관련된 기념일이면 '북진통일!'과 '김일성 도당을 때려 부수자!'는 구호가 공설운동장 하늘로 퍼져 나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나와서 손뼉을 치고 시장 주변 가게에서 막걸리와 국수로 허기를 달랬다.

초등학교 시절 추억인데, 김일성과 인민군 얼굴을 흉측하게 그린 가면을 쓰고 손에 몽둥이를 든 학생들의 가장행렬과 밴드에 맞춰 시가행진하는 대열을 배고픈 줄도 모르고 따라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민족은 없고, 적과 아군만이 존재하는 획일적인 교육에 긴장과 대립을 부추기는 구호 난립은 7천만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정권연장에 이용했던 이승만, 박정희 두 독재자가 연출했던 작품이었다.

한국전쟁, 김일성에게만 책임이 있을까?


전쟁터에서 전사한 분들은 명예라도 얻고 자식들도 작으나마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르고 어디론가 끌려가 죽은 민간인의 가족들은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몰살당하는 광경을 지켜본 어른들의 대화 내용과 선생님 말씀이 달라 의문을 품기도 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전쟁의 진실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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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주년 6·25를 알리는 간판. ‘분쇄하자 간첩침략’, ‘이룩하자 국가재건’이란 구호가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의 음흉한 마음을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 조종안


많은 이들이 전쟁선포도 없이 김일성이 무력으로 쳐들어온 것으로 아는데 100% 정답은 아니다. 해방이 되면서 남북은 북위 38선을 경계로 분단되었고, 그 후로는 소규모 총격전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은 남조선 해방을 위해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데 남쪽의 이승만 정권은 민족지도자 김구를 암살하는 등 권력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도둑도 나쁘지만, 도둑을 지키지 못한 주인에게도 책임이 있듯, 당시 위정자들에게도 역사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한국군이 패전만 하다가 미국의 참전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국군도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함으로써 유엔이 참전하여 북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기 때문이다. 진즉 부산을 내줘야 하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젊은이들의 용기와 낙동강을 붉게 물들였던 학도병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총알받이로 내몰았던 이승만을 국부로 모시자는 얼간이들과 국민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한나라당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트릿하면 빨갱이·좌파 타령을 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승만을 비롯한 고위층은 말할 것도 없고, 도지사, 시장, 경찰서장 등 지방의 관리들조차 차와 선박을 이용해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피난보다는 국민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우익단체, 대통령에게 테러 허가라도 받았나?

21세기에 들어서도 이어지는 갈등과 분열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자들이 뿌려놓은 눈가림식 반공교육의 열매이자 후유증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전두환을 스승처럼 모시는 이명박은 80년대식으로 국정을 끌어나가고 있다.

한국전쟁 59주년을 열흘 앞두고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이승만을 국부로 모시자는 우익단체가 군복을 입고 가스총을 쏴가며 기습 철거했다고 하는데 두려움과 함께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우리 국민은 아무리 척을 지고 사는 이웃이라도 상(喪)을 당하면 조문을 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 분향소를 부수고 영정사진을 들고 다니며 개선장군처럼 자랑하다니, 패륜아도 차마 그런 짓은 못할 것이다.

이명박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장례절차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어떤 날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국민장을 치른 대통령 분향소를 부쉈는지 조사를 해야 함에도 청와대, 검찰, 경찰 모두가 조용하다.

분명한 테러집단임에도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있으며, 경찰을 폭행한 전과가 있는 서정갑 씨에게 집회 허가가 계속 나온다니, 이명박 정권이 테러행위를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어떤 명분을 내걸어도 전쟁과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한국전쟁의 교훈인데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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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25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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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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