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4년 여름, 공포 정치의 최후

공포 정치, 생각의 자유가 없는 나라

등록 2009.06.25 12:30수정 2009.06.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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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민주주의는 올바른 길로 나가고 있는 것일까? 개인의 '생각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올바른 길로 나가고 있는 것일까? 개인의 '생각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곽진성
우리의 민주주의는 올바른 길로 나가고 있는 것일까? 개인의 '생각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 곽진성
 

PD수첩 작가에게 불어닥친, 서슬퍼런 이메일 검열의 광(狂)풍은 우리 사회의 지성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비단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은밀하고 사적인 생각마저 발가벗겨 버리는 이 시대 권력의 횡포는 우리의 이성를 침묵케 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위기위식이 팽배하다. 이런 이메일 검열이 권력 비판적인 언론인과 정책 반대론자들을 옥죄는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런 우려처럼, 우리 민주주의 사회가 아름드리 가꾸어 오던 '생각의 자유'는 지금 권력의 자의(自意)적인 검열로 인해 위축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이 시대 들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정치 때문에 구속되고, 조사 받았다. 어디 그뿐이랴, 맞고, 내동댕이 쳐졌으며 비극적으로 죽어 가야 했다.

 

미네르바. 고대녀. 촛불시민. 용산 철거민. 전 대통령. PD수첩 작가 등등. 그 억울한 이름은 수 없이 많아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다. 문제는 과거의 일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 얼마나 많은 약자와 건전한 반대론자들이 고통 당해야 하는지 헤아릴 수 조차 없다.

 

그렇기에 이 시대 권력의 횡포는 '공포 정치'란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된다. 인터넷에 비판글을 쓰면 잡혀갈까 두려운 사회, 사적으로 보낸 이메일로 인해 '사상'이 의심 받는 사회.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자신도 언젠가 검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에 떠는 사회. 지금 우리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권력의 일갈에 벌벌 떠는 모습이 국민과 언론의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공포'가 전하는 힘은 그만큼 폭력적이고 무섭게 전해온다.

 

하지만 정작 권력의 '공포의 정치'는 강자들에게는 관대하다. 국민과 언론의 이메일을 훔쳐보며 의심하는 권력은 정작 높은 자들의 '비양심'과 '비인간성'에는 관심이 없다.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압력 이메일을 보낸 비양심과 연쇄살인범 강00 사건을 홍보지침으로 삼으라는 전 청와대 홍보관의 비인간성에는 침묵한다. 시선을 두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공포'는 이땅을 살아가야 하는 약자들이 이 시대 민주주의를 위해 감내하는 부가가치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조류 인플루엔자보다 더 무서운 공포 바이러스를 국가에 퍼트린 권력은 오만하게도 사과가 없다. 반성도 없다. 오히려 더욱 공고히 국민을 옥죄고 검열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과연 그런 공포의 정치가 오래 갈 수 있을까?

 

1794년. 공포 정치의 최후,

 

역사의 교훈을 떠올려 보자. 문득 프랑스 혁명 후의 로베스 피에르 정권이 떠오른다. 막시밀리앙 로베스 피에르(1758~1794)는 혁명의 기치 아래 희망을 꿈꾸던 시민들의 희망을 핏빛으로 바꾼 독재자다. 사람을 죽이고 가두는 일 이외에는 무능력했고 무정견(無定見) 했던 로베스 피에르 정권이, 병적으로 두려워 했던 것은 사회의 비판의 목소리였다.

 

프랑스 혁명 직후의 무능한 정권은 비판을 자양분 삼을 만한 역량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로베스 피에르가 선택한 것은 공포 정치였다. 단기적으로 공포가 전하는 힘은 셌다. 과거의 권력자들을 역사의 저편으로 밀어냈고, 반대자들은 사라지게 만들었으며, 시민들은 숨 죽이게 만들었다. 이미 뇌사 상태에 빠져버린 정권의 생존을 위해 아까운 목숨들이 스러져야 했다. 공포정치로 인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 아래에서 정치적으로 무장 해체된 채 죽어갔다.

 

왕족, 귀족은 물론 반대 당원, 정부를 비판하는 자. 심지어 동료까지 반대론자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그 수는 45일동안 무려 1300여명에 달했다. 이유가 있었기에 죽은게 아니라 죽음이 필요했기에 이유가 붙여진 채 불의의 객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비전없는 정권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인공호흡기에 불과했다. 결국 불의가 가득찬 세상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공포 정치라는 인공 호흡기로도 로베스 피에르의 뇌사 정권은 소생하지 못했다. 공포로는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없다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다. 공포 정치의 수장, 로비스 피에르는, 1794년 7월28일. 이 무시무시한 폭력을 보다 못한 국민과 반대파에 의해 정권의 마지막 날 단두대의 제물이 되었다.

 

다시 2009년 우리 사회를 본다. 약자와 비판자들의 조사, 구속, 사망이 끊이지 않게 만든 대한민국의 권력은 이제 피디수첩의 작가를 절벽으로 몰아 넣는다. 이유마저 좀스럽다. 작가의 이메일에서 왜곡방송의 증좌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각의 자유까지 침해하며, 관음증 환자처럼 엿본 수많은 이메일에서 발견한 것은 왜곡방송의 증거가 아니라 권력의 독선과 오만이었다. 민주주의 제도 뒤에 숨은, 공포의 흉수(凶手)였던 것이다.

 

정권 연장을 위해, 날마다 산 제물을 단두대에 바쳐야 했던 로비스 피에르 정권의 심정이 이랬을까, 개인의 사적 영역까지 뒤쑤신 이 나라 권력의 광기에서, 문득 단두대 위의 슬픈 로베스 피에르가 떠오르는 것은 왜였을까.

 

2009.06.25 12:30ⓒ 2009 OhmyNews
#공포정치 #로비스 피에르 #PD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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