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을줄 모르고 예산 깎았나?
 전국 무상급식 할 기회 차버리다니..."

[인터뷰] 예산 삭감 항의농성 이재삼 경기도 교육위원

등록 2009.06.25 21:56수정 2009.06.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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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부터 경기도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재삼 교육위원. ⓒ 박상규


"도대체 왜 아직도 예산을 깎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김상곤 교육감한테 감정이 있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학생들 무료 급식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논리를 펴는데, 딱히 근거로 대는 것도 없어요. 아이고 정말, 답답해서 말이 안 나오네···."

이재삼 경기도교육위원은 한숨을 쉬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창밖은 시리게 맑았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 교육위원회 본회의장은 적막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 위원이 창밖에서 시선을 거뒀을 때 그의 눈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이 위원이 다시 쥐어짜듯 말했다.

"7년간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본회의장에서 감정이 솟구쳐 말이 안 나온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럴 만도 했다. 경기도교육위원회는 23일 본회의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신청한 추경예산안을 '일부' 삭감했다. 하지만 그 일부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핵심 정책 모두였다.

"교육위원들이 왜 예산 깎았는지 아직도 이해 못 해"

전체 추경예산안은 3656억6500만 원. 크다고 하면 큰 금액이다. 이중 교육위원들이 칼질을 해댄 건 5.6%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5.6%는 모두 김 교육감의 핵심 정책 예산이었다. 초등학교 무료급식, 혁신학교, 청소년인권조례 제정 비용.

예산 삭감 소식과 함께 김 교육감 정책이 좌초될 위기라고 전해지자 많은 시민들이 일제히 교육위원회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치졸하게 아이들 밥값을 정치적으로 깎는다"는 것이었다. 이재삼 교육위원 역시 같은 이유로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농촌에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정말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그 안에는 농촌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에게 밥 좀 제대로 먹이자는데, 이것만큼 시급한 교육현안이 도대체 뭡니까?"

추경예산안은 김 교육감의 정책에 깊은 상처를 남긴 채 통과됐다. 삭감 찬성 7, 기권 2, 삭감 반대 2. 끝까지 삭감 반대를 외친 이재삼, 최창의 교육위원은 곧바로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의장석 바로 앞에는 현수막도 걸었다.


"도서벽지, 농산어촌, 도시소규모학교 학생 무료급식 삭감 항의 농성. 경기교육가족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경기도교육위원 이재삼, 최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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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부터 경기도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재삼 교육위원. ⓒ 박상규

항의이면서 동시에 경기도민을 향한 석고대죄였다. 24일 농성 중인 이재삼 위원을 도교육청 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만났다. 이 위원은 연방 안타까움과 사죄의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원래 학교 급식은, 오래전부터 국가가 책임지고 무상으로 했어야 했다"며 "전국으로 무상급식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를 경기도 교육위원들이 발로 차버렸다"며 혀를 찼다. 무상급식 전국 시행이라니? 이 위원의 설명은 이렇다.

"경기도가 전체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하면 다른 지역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당장 서울시민들이 '우리도 무상급식하자'고 요구하겠죠. 그러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건 금방이고, 결국은 국가 차원에서 재원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겁니다."

이 위원은 지난 84년 경북 청송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2002년부터는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7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전국 초등학생 무상급식, 경기도교육위원들이 망쳤다"

이 위원은 "그동안 도교육청 예산 심의는 묵시적으로 전원합의제로 운영됐고, 이번처럼 표결로 가게 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과거에는 어떤 경우든 거의 합의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육위원들이 민선으로 당선된 김 교육감의 핵심 공약에만 '의도적'으로 손을 대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김 교육감이 좌초되면 경기도 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결국엔 우리 교육위원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위원은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 잘 믿기지 않는 듯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계속 이 말을 반복했다.

"알 수가 없어, 정말 알 수가 없어···.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본인들 지역구에도 밥 굶는 아이들 많은데, 그거 통과시키면 자신들도 좋을 텐데···. 진짜 알 수가 없어."

그러더니 이 위원은 오히려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진보 교육감이 싫은 걸까요? 여전히 김상곤 교육감을 '이방인'으로 보는 걸까요?"

이 위원은 교육 관료에 휩싸여 있는 김상곤 교육감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김 교육감은 경기교육이라는 바다에 배를 띄웠지만 아직 닻을 내리지 못했다"며 "직선으로 당선됐지만, 교육감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정무직 인사를 외부에서 거의 데리고 올 수 없다, 이 때문에 김 교육감이 많이 답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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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위원회 홈페이지. ⓒ 경기도교육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김상곤 아직 닻 못 내려... 교육위원들 당장 사죄해야"

이어 이 위원은 "직선 교육감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이번 농성을 언제 끝낼지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교육위원인 내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이런 사실이 경기도민에게 너무 죄송하고, 이번 일이 우리 교육위원들에게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오는 7월 열리는 경기도의회가 우리 교육위원들이 삭감한 예산을 원상복구해주길 바란다"며 "그게 가능하려면 결국 시민들이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이철두 경기도교육위원회 의장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일인지 이 위원은 전화기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항의가 빗발치는 게 당연하죠. 그럼 그런 것도 모르고 예산 깎았답니까? 시민들한테 욕먹기 싫으면 당장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하라고 하세요! 나쁜 감정 갖고 정치적 판단으로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죠! 빨리 사과하라고 하세요!"

사연인즉, 예산안 삭감에 찬성한 교육위원 7명에게 항의가 밀려든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이 위원 전화기로는 격려와 응원 메시지가 쉼 없이 도착했는데, 다른 위원들은 그 반대였던 모양이다.
#김상곤 #경기도교육위원회 #경기도교육감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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