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김광석과 '서른 즈음에'를 부르다

무대 위의 잔 다르크, 이은미의 20년

등록 2009.06.28 15:23수정 2009.06.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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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은미가 최근 20주년 콘서트를 열었다. ⓒ 이은미콘서트


그녀는 참 멋졌다.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 여전함이 아름다웠다. 지난 주말은 '그녀'와 함께 해서 즐거웠다. 김광석이 오래전 떠나가고, 우리들 곁에 그녀만이 남았다. 그녀, 맨발의 디바 이은미.

누군가와 함께 인생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같이 웃고 울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대중 가수와 팬 사이도 그렇다. 사회적으로 험난했던 지난 80년대와 90년대 젊음을 보낸 우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서로에게 존재 자체가 격려와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27일 토요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가수 이은미의 콘서트에 갔다. 그녀의 노래에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 애뜻한 동질감과 마음을 울리는 끈끈한 공명이 배어 있었다. '20주년 콘서트-소리 위를 걷다'는 공연 제목처럼, 그녀가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와 같이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의 노래도 삶의 무게감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녀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그렇게 꿈꾸던 그 내일이 또 어차피 오늘인데……. 오래전 날 떠나 아름답던 나의 사랑도 시간이란 무기 앞에 다 지워졌는데"라고 속삭였다. 그녀의 최신 노래 <타임 앤 라이프(Time And Life)>다. 지난 20여년 세월의 흐름이 인생의 무게를 더는 여유를 준 것 같았다.

열정이 넘치던 20대의 <어떤 그리움>

그녀는 20대 초반 가수의 길로 들어선 당시를 회상했다. 통기타와 피아노 한 대, LP레코드가 수북이 쌓여 있는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팝송을 멋지게 불렀더니, 손님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 한다. 그 노래,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The Greatest Love of All>를 그녀는 당시 카페 분위기의 무대를 배경으로 멋지게 불렀다. '가장 위대한 사랑이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노래다.

그녀는 "그때 '박수 맛'을 알았나 봐요"라고 부끄럽게 말했다. 관객들의 환호와 노래에 대한 열정이 넘치던 시절을 되돌아봤다. 가난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20대는 누구나 장밋빛 미래를 꿈꾸니까.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당시 젊은이들도 요즘 말로 88만원 세대였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은 넘쳐흘렀다"고 했다.


그녀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90년대 초반 <기억 속으로>와 <어떤 그리움>이란 노래가 널리 불리면서. 내가 이은미란 이름의 가수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 내가 20대를 넘기고 30대에 갓 들어간 무렵, 그녀는 <어떤 그리움>이란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어느 날 문득 다가왔다.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의 한 구석이 허전했던 것 같다.

20대 젊음이 지나가고, 각박한 사회생활에 들어선 30대 초반 누구나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을까. 30대는 기대와 희망의 저편으로는 시련과 아픔의 시대고, 시간에 쫓기며 허우적거리는 시대다. 그때는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를 통해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며 30대에 들어선 젊은이들의 고뇌를 노래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20대는 모두에게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하릴없이 훌쩍 지나간다.

그녀의 30대도 <서른 즈음에>였다

2006년 10월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회 아름다운 콘서트에서 가수 이은미가 열창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녀의 30대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30대 초반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가수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30대 초반에 만든 3,4집 앨범은 제작자 3명이 중간에 모두 도망갔다고 한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혼자서 몸으로 때우며 앨범을 냈다"고 한다. 노래 <자유인> 등이 실린 3,4집 앨범은 "희귀본이 되었다"고 한다. 앨범이 별로 팔리지 않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다.

그녀의 이날 공연은 노래가 한 곡 끝나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관객과의 대화 스타일로 진행됐다. 그녀는 중간부터는 아예 신고 있던 부츠를 벗어버리고 맨발로 노래를 불렀다. 그녀에게 맨발은 가식을 벗어던진 자유다. 그녀를 '맨발의 디바'로 부르는 것은 오래전부터 무대에서 맨발로 노래를 부르는 열정적인 그녀의 모습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그녀는 김광석과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따뜻한 광석 오빠"라고 했다. 그녀가 무명이던 시절, 이미 유명한 라이브 가수이던 김광석은 그녀를 자신의 공연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가끔은 용돈도 쥐어줬다고 한다. 그녀는 "광석 오빠와 <서른 즈음에> 노래를 같이 부르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광석 오빠가 먼저 부를 것"이라며 무대 뒤쪽을 손으로 가리키자 배경 스크린에는 생전 <서른 즈음에>를 부르던 김광석의 장면이 비쳤다. 무대 앞에서는 이은미가 <서른 즈음에>를 따라 불렀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듀엣이어서 그런가, 먼저 간 그 남자와 남아 있는 그녀의 합창이어서 그런가, 노래를 부르는 이은미도 듣는 관객도 뭉클했다. 나의 30대,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3년 전 내가 아프리카 배낭여행할 때 늘 나와 함께 했던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니, 흐르는 강물의 물결처럼 지나간 세월이 아른거린다.

늦게 철들기 시작했다는 그녀, <애인…있어요>를 부르다

그녀는 40대 들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노래에 질리고 삶에 지친 30대 후반 어느 날 사찰을 찾았다가, 스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네가 좋아서 노래를 불렀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좋아했는데, 이제 와서 노래를 포기하면 너의 노래를 좋아하던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호통이었단다. 그녀는 해머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뜨였다고 했다.

그녀는 그 무렵 <애인…있어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애인은 누구일까?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라고 말하니,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녀는 그 때 노래가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평생 부둥켜안고 살아가야할 애인은 다름 아닌 노래였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과 같다"며 팝송 <Both sides now>를 불렀다. 인생과 사랑에는 양면이 있다는 노래다.

그녀는 "노래는 나에게 있어 애증의 관계"라고 말했다. "어떤 때는 불타오르는 사랑이고, 어떤 때는 좌절을 불러오는 증오의 대상"이 그녀가 규정한 애인, 즉 노래였다. 노래가 그동안 그녀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커다란 부담으로 짓눌렀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연인도 그렇지 않은가. 사랑에도 인생에도 어디나 굴곡이 있다.

그녀는 "제가 늘 철이 늦게 들잖아요"라고 했다. 나도 늘 새로운 계절이 온 뒤에야 앞 선 계절이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는 무딘 사람이어서, 그녀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오래전 막 서른의 잔칫상을 차리고 질펀하게 한번 놀아보려는 데, 한 시인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훌훌 털고 먼저 일어날 때 나는 얼마나 황당했던가. 영악한 그녀보다 아직 철이 덜 든 순수한 그녀가 좋다.

40대의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결혼 안하길 잘했지>

40대 초반의 그녀는 요즘 <소리 위를 걷다>라는 새로운 앨범을 내고, <헤어지는 중입니다>, <결혼 안하길 잘했지>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에게 다시 다가오고 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간직한 그녀답게.

40대 이후, 그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는 "60대가 넘어서도 가죽바지를 입고 노래를 부르는 롤링 스톤스처럼 오래도록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롤링 스톤스의 노래 <Start me up>를 부를 때면, 노래 제목처럼 관객들을 좌석에서 일으켜 세우며 공연장을 흥겨운 놀이판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무대 위의 잔 다르크'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60이 아니라, 80대가 되어서도 무대 위에 있으리라. 70대가 넘은 음악가들로 이뤄진 쿠바 재즈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우리를 얼마나 감동시켰는가. 이 클럽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오마라 포르투온도는 80살이 다된 나이에도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아 6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다. 인생의 깊은 맛에서 나오는 포르투온도의 노래는 공연 내내 나를 흥분시켰다.

쿠바의 전설적 디바 포르투온도는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은미의 열정도 식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그녀는 "오늘의 공연이 이은미의 최고의 공연이 아니다"고 외쳤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이은미에 대한 관객과의 약속이었다.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이날 공연은 그녀 특유의 열정과 감성으로 자리를 꽉 메운 관객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했다. 감미로운 노래와 열정적인 몸짓, 세월의 무게를 노래와 이야기로, '맨발의 디바'에서 '무대 위의 잔 다르크'처럼, 우리 노래와 팝송, 샹송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이번 공연은 차라리 노래를 통한 관객과의 대화였다. 그녀의 노래와 함께 우리가 살아온 삶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녀와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즐거운 토요일 밤이었다. 그녀의 인생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가수도 우리네처럼 아파하면서 자라고 있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는 서울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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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30일 저녁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YTN과 공정방송을 생각하는 날 시민문화제'에서 이은미가 열창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잠깐 샛길로 빠지면, 그녀는 올해 <YTN 공정방송> 현장에 나타나 노래를 불렀고, 그동안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의 <인권 콘서트>와 시민단체의 반전 평화운동, 장애우를 위한 자선음악회, 우리 농촌 살리기 현장에도 늘 함께 했다.

그녀는 국내 여자가수로 600회가 훨씬 넘는 최다 공연기록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항상 노래가 가장 절실한 사람들 곁에 있었다. 그녀의 삶이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들 곁에 있어서 그녀의 삶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닮아갔는지…….

그녀는 공연 마지막에 "2009년 올해 한해는 즐겁게 살자"고 관객들에게 희망을 얘기했다. 나는 문득 낙엽이 떨어지는 올 가을에는 서울광장에서 그녀의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은행잎이 남산 허리 길에 수북이 쌓이는 가을이 되면, 굳게 닫혀 있는 서울광장도 활짝 열리겠지.
#이은미 #어떤 그리움 #애인있어요 #결혼 안하길 잘했지 #서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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