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이 똥물 운하에 빠진 날

등록 2009.06.30 14:40수정 2009.06.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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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지금의 도봉전철기지주변)에 살고 있었다. 동네 주변으로는 넓은 밭들이 많았고 그 너머 중랑천은 상류 쪽의 많은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수로 인해서 시커먼 퇴적물들이 쌓였고 냄새가 아주 고약하여 '똥물'이라고 불렀다.


어쩌다 발견되는 물고기들은 등이 휘거나 이상한 기형 모양이라서 감히 잡거나 먹을 생각은 못할 만큼 오염된 하천이라서 물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겨울철에나 얼음을 지치러 나올 뿐이었다. 하천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썰매를 타거나 얼음 위에서 딱지, 구슬, 자치기
정도가 겨울철 놀이의 대부분이었다. 그 당시 중랑천에는 드럼통을 여러 개 묶어서 나무갑판을 올린 뗏목이 있었다. 근처 밭 주인이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실어 나르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에는 농사를 짓지 않기에 땟목은 동네의 큰형(중, 고등학교)들이 타고 놀았고 우리는 보는 것만으로 대리 만족을 해야만 했다.

봄이 가까워지는 때였을 것이다. 우리도 뗏목을 타보자는 의기투합으로 뗏목의 밧줄을 풀고 모두가 승선을 한 후에 대나무 장대를 밀어서 하천 중간으로 나아갔다. 물살을 타기 시작한 뗏목은 살얼음을 치면서 앞으로 나아갔고 우리는 미지의 대륙을 찾아가는 탐험대였다. 회선(回船)지점으로 선택한 곳에서 멈추려고 장대를 물속에 꽂아 브래이크를 걸었지만, 옆으로 돌면서 떠내려가기를 몇차례 반복하자 우리들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궁리 끝에 한쪽으로 중심을 몰아서 뗏목을 물가로 붙이기로 했다. 대여섯 명이 한쪽으로 중심을 이동했고 반대편에서 장대를 잡은 녀석이 밀어내자 뗏목은 조금씩 육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리저리 중심을 이동하며 거의 다 왔을 무렵 반대쪽에 있던 녀석이 장대를
지렛대 삼아서 뛰었다.

그 순간 뗏목은 휘청하며 반대편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끝에 서 있던 대여섯 명은 동시에 팔을 휘저으며 모두가 똥물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질퍽한 갯벌 같은 곳에 처박힌 우리는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겨우 허벅지 깊이였지만 온몸은 시커먼 오물을 뒤집어 쓴 것이 아프리카 토인들 같았다. 겨우 뗏목은 묶어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 봤다. 정신을 차리자 슬슬 올라오는 역한 냄새도 참을 수가 없었지만, 겨울이라서 젖은 옷은 차갑게 식어갔고 몸도 떨리면서 입에서는 이가 위아래로 자동으로 맞부딪혔다.

빨리 뜨거운 곳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일단 동네까지는 힘껏 뛰었고 한 녀석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은 일을 나가서 없었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연탄보일러 주변에서 몸을 녹이며 대책을 논의했다. 고드름처럼 얼었던 머리털에서는 구정물이
떨어지고 지독한 냄새는 콧속을 사정없이 찔렀다. 먼저 뛰어내려 사고를 낸 녀석에게 욕 한 바가지씩 퍼부은 뒤 뜨거운 물과 갈아입을 옷을 구해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녀석은 미안한 마음에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세수대야에 뜨거운 물을 가져다 날랐다.

우리가 똥물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동네의 큰형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발가벗은 우리를 보고는 배꼽 빠져라 웃으면서도 어른들이 알기 전에 끝내야 한다면서 모두 수돗가로 나오게 한 후에 찬물을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빨랫비누로 빡빡 문지르며 이를 악물고 씻어냈다. 겨우 목욕은 끝냈지만, 옷과 신발이 문제였다. 찬물에 박박 비벼가며 씻어내자 더러움은 씻겼지만 냄새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 당시 세탁기는 구경도 못했고 '짤순이'라는 탈수기도 없는 집들이 많던 때였지만 다행히 그 집에 있던 짤순이로  옷을 탈수하여 방바닥과 연탄 보일러 주변에 나란히 널어 둔 다음에야 어느 정도 사고 정리가 되었다.


집에서 가져오거나 빌려 입은 옷을 몸에 걸쳤다. 해가 지고 어른들이 인근 공장에서 퇴근할 무렵에야 말려놓은 옷들을 챙겨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무슨 냄새냐며 킁킁거리며 옷을 벗겼다.  숨가쁜 그날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덧붙이는 글 | 냄새나는글 응모.


덧붙이는 글 냄새나는글 응모.
#똥물 #뗏목 #고드름 #자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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