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면서 눈치 보는 노인들

등록 2009.07.04 20:15수정 2009.07.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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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무임승차권 수난


노인무임승차제도는 사회적 약자인 노인을 돌보기 위한 복지정책이다. 그러나 때로는 오히려 노인들을 두 번 괴롭히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일부 역무원의 불친절과 무례함 때문이다. 무임승차권을 받으려면 기계 사용에 어두운 상당수 노인들은 매표소 역무원을 거쳐야 한다.  그러다보니 역무원의 태도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엄마는 출근 전 아침마다 하소연을 하셨다. 역무원이 너무 불친절하다며 그 불쾌함이 엄마의 큰 목소리로 터져나오곤 했다. 처음엔 무슨 오해가 있나 싶었지만 며칠을 계속 그러시니 그냥 듣고만 말 일이 아니란 생각에 출근길에 동행했다. 엄마는 올해로 칠순. 지하철로 매일 출근을 하신다.

최근에는 노인무임승차권이 신용카드로 교체되어 은행에 가서 신청해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매일 출근하는 엄마의 경우 은행에 가는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매일 매표창구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담당 역무원은 노인인 엄마에게 인상을 찌푸린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늦었다고 표를 빨리 달라고 부탁을 해도 짜증을 낸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무원의 재량권이 노인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마침 엄마 앞에도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옆에서 엄마가 말씀하시던 그 역무원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았다. 할머니는 그날 아침 '주민등록증'을 지참하지 못하고 나오셨는데 역무원은 '내가 몇 번을 말하냐'며 짜증을 내고 야단치는 형국이었다. 할머니는 '다른 분들은 주민증을 보지 않고도 주신던데...'하면서 자신없게 웅얼거리는데 그 앞에다 역무원은 또 한 번 짜증을 냈다. 불쾌해진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돌아서셨다. 엄마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실제로 다른 역무원들은 얼굴을 알고 그러는지 노인들의 주민등록증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표를 건넸으니 할머니 탓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다. 역무원들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으니 할머니가 주민증을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실 만도 했다. 철도공사에서는 역무원들에게 재량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데 원칙대로 하는 것이 옳긴 하지만 예의 있는 태도 역시 역무원이 취해야 할 고객에 대한 중요한 원칙이다.

할머니가 불쾌하게 돌아선 후 작정을 한 엄마는 차례가 되자 항의를 하셨다. "당신의 임무가 뭡니까? 왜 위에 군림을 하려 합니까?..." 역무원은 오해를 풀고자 하거나 사과를 하기는커녕 귀찮다는 듯이 변명을 하다가 "그러면 기계를 이용하세요"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었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는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이름을 부른 후 민원을 넣겠다고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역무원은 그제사 기가 꺾여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지하철 민원은 코레일 홈페이지나 철도공사로

나는 담당 민원을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이리 저리 검색하고 전화를 해서 알아냈다. 코레일 홈페이지 상단에 '고객의 소리' 코너가 있는 걸 알게 되었고 그날 오후 네 가지 시정조치를 요구하며 민원을 넣었다. 그리고 며칠 후 철도공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담당자는 우선 정중히 사과를 했다. 그리고 해당 역무원에게 경위서를 요구했고 7월 6일에 담당부서에 해당 역무원을 불러 교육을 한다고 전했다. 내가 요구했던 시정조치는 네 가지였다. 우선 교육담당자의 이름을 알려주고 교육프로그램과 일정을 알려달라는 것, 그리고 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해당 공무원은 엄마에게 직접 사과하고 출근시간에 그 역무원을 다른 역무원으로 교체할 것, 철도공사의 앞으로의 대응책을 알려줄 것이었다.

교육담당자가 직접 전호를 해 왔다. 그는 역무원이 직접 사과를 하도록 하겠으나 교체는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고 사정을 했다. 노인들 정신건강을 위해서 다시 한번 교체를 요구했지만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앞으로 그가 어떻게 변하는지 두고 볼 생각이었다.

교육담당자는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사과를 했고 해당 역무원에게 사과를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서 만나니 과연 역무원의 태도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안 하던 인사를 하면서 우물쭈물 거리더란다. 그는 정확한 사과를 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그냥 출근하셨다고 했다. 불쾌하지 않으셨냐고 했더니 공손히 인사를 하고 달라진 듯 해서 불쾌감은 없으셨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눈치 보는 노인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어이없는 노인들도 어렵지 않게 뵙긴 하지만 노인들은 일단 사회적 약자이다. 그들에게도 항의할 것은 항의해야 하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보살펴야 할 이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인들이 겪는 지하철 수난은 무인승차권 수난만이 아니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어떤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더니 하신 말씀이 있었다. 굉장히 고맙다며 과하게 감사를 표하시더니 자신이 얼마 전에 디스크수술을 해서 너무 힘들었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수록 이리저리 많이 둘러보셔야 젊은 사람들이 자리 양보를 한다고 했더니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인이 젊은이들 앞에 서 있으면 부담을 주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하기는 우리 엄마 아버지도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노약자석 앞에는 서도 일반석 앞에는 서 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젊은 이들이 눈을 피하거나 자거나 하는 행동들을 보면 노인이 부담이 되는 것 같아 그 자리를 피하신다고 하셨다. 나는 용기가 없어 자리 양보 못하는 이들도 많다, 일부러 피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다른 해석을 제시해 보기도 했지만 노인들 입장을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 쉽겠구나 싶었다.

불친절 역무원이나 자리를 양보하지 못하는 젊은 이들만이 아니라 나 역시 노인들의 처지와 마음을 잘 헤어리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내 입장을 넘어 다른 이들의 입장을 헤아려보기. 이명박 대통령이 좀체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 여러 가지 사태와 국민들의 상처를 생각해 보면 다른 이들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코레일 #불친절 #지하철민원 #노인 #철도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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