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들과 '바보 노무현'이 함께 그린 동화

[노무현 추모벽화③] 봉하마을에 그려진 추모벽화 구경하세요

등록 2009.07.05 14:49수정 2009.07.0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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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길 연석에 그려진 추모벽화를 보며 걸어가고 있는 어린이들.
봉하마을길 연석에 그려진 추모벽화를 보며 걸어가고 있는 어린이들.이주빈

4일 정오 무렵 마침내 봉하마을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벽화가 그려졌다. 광주와 대구, 서울, 충남 아산 등에서 모인 '좋은세상 만들기' 회원 52명은 2박3일에 걸쳐 봉하마을길 연석 500여 개 중 80여 개에 추모벽화를 그려넣었다.

일정이 짧은 탓도 있지만 일부러 이들은 모든 연석에 추모벽화를 그리지 않았다. 정수 '좋은세상 만들기'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번 한번으로 끝나는 작업이 아니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다른 지역의, 다른 청년들이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일을 꾸준히 이어갔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추모벽화를 그리는 동안 봉하마을을 찾아온 많은 외지인들이 박수를 치거나, 빵을 주고, 또 기념촬영을 하며 격려했다. 대구에서 조카와 딸, 남편과 함께 온 박은희(36)씨는 "그림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날이 무척 더운데 정말 고생들 했다"고 고마워했다.

혜문 스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과 상징들을 너무 귀엽지만 눈물나게 표현했다"고 칭찬하면서 "너무 감사해서 우리 일행이 먹으려 산 빵을 자원봉사자들에게 모두 줘버렸다"며 웃었다.

봉하마을에서 오리작목반 반장을 맡고 있는 한 주민은 "내가 오리 친군데 우리 오리들을 너무 예쁘게 그려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이스바를 선물했다.

전국의 청년들이 2박3일 동안 봉하마을에 그린 추모벽화는 어떤 모양일까.

 광주의 한 초등학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 아이들은 사랑해요 말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의 한 초등학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 아이들은 사랑해요 말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주빈

 노무현 대통령과 숲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 한 초등학생의 그림.
노무현 대통령과 숲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 한 초등학생의 그림.이주빈

봉하마을로 접어드는 길, 연석에 그려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벽화는 광주의 초등학생들이 그려보낸 노 전 대통령 그림으로 시작된다. 초등학생들의 그림은 다양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TV에서 보고 놀라는 가족의 모습, 노 전 대통령 분향소 모습, 노 전 대통령에게 자기가 인사하는 꿈,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 손녀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 등등.


한 초등학생은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그림을 그렸는데 사랑을 고백한 아이들에 눈엔 눈물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아이들까지 울리는 세상. 하지만 아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꿈마저 껴안으며 '농사꾼 노무현'을 많이 그렸다.

 혼자 불꽃을 태우고 있는 촛불
혼자 불꽃을 태우고 있는 촛불이주빈

 촛물은 노무현을 상징한다.
촛물은 노무현을 상징한다. 이주빈

초등학생들의 그림을 지나면 촛불의 행렬이 시작된다. 어느 땐 혼자이거나 어느 땐 여럿인 촛불 혹은 촛불들. 노무현은 그렇게 촛불의 과거고, 촛불의 현재며, 미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촛불은 촛대보다 약한 불빛을 품고 있고, 그렇게 때문에 어떤 촛불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촛불도 제 불꽃을 끄지 않고 있다. 구호 하나 없는 촛불들의 긴 행렬. 그러나 강하다. 맨손에 촛불 하나 들고 거리에 나와 세상을 바꿔온 어떤 나라의 어느 국민들처럼 말이다.

 한 오리가 마치 "이제 우리 봉하마을로 출발하자구!" 얘기하는 것 같다.
한 오리가 마치 "이제 우리 봉하마을로 출발하자구!" 얘기하는 것 같다.이주빈

 어디 가나 꼭 있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서툰 날갯짓에 힘을 다하는 오리. 오리 날다.
어디 가나 꼭 있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서툰 날갯짓에 힘을 다하는 오리. 오리 날다.이주빈

 봉하마을에 이르른 오리들이 뭔가를 즐겁게 얘기하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노무현과 함께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서 얘기했을 것이다.
봉하마을에 이르른 오리들이 뭔가를 즐겁게 얘기하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노무현과 함께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서 얘기했을 것이다.이주빈

촛불이 행렬이 멈춘 곳에서 오리들의 유쾌한 행렬이 시작된다. 오리들은 하나같이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노란색, 그 누구의 상징색이었는데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도 오리들은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그에게로 끊임없이 달려 가고 있다.

세상 사는 이치는 다 같은 모양이다. 어떤 녀석은 제가 먼저 그를 보겠다고 날갯짓을 해댄다. 어떤 녀석은 가다가 사람들 행렬을 만났는데 하필이면 아가씨 치마 속을 눈치없이 쳐다보고 있다. 또 어떤 녀석은 길을 멈추고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이 지나온 길을 생각한다. 그래도 오리들의 행렬은 유쾌하게 계속되고 있다.

 초등학생의 슬픈 그리움도, 촛불의 가녀린 흔들림도, 오리들의 유쾌한 행렬도 그는 변함없는 소탈한 웃음으로 맞아주고 있다.
초등학생의 슬픈 그리움도, 촛불의 가녀린 흔들림도, 오리들의 유쾌한 행렬도 그는 변함없는 소탈한 웃음으로 맞아주고 있다.이주빈

 추모뵥화 작업을 마치고 기뻐하는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 이들의 밝은 미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미소와 닮은 듯 하다.
추모뵥화 작업을 마치고 기뻐하는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 이들의 밝은 미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미소와 닮은 듯 하다.이주빈

오리들의 유쾌한 행렬을 바로 그,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고 노무현이 맞이한다. 봉하마을 입구에서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근엄한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가슴 아픈 그리움을 살포시 안아주는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촛불들의 여린 흔들림을 사알짝 감싸주는 든든한 모습으로, 오리들의 유쾌한 행렬을 함께 따라가고픈 밝은 웃음으로 그는 그렇게 마중을 나와 있다.

그래서 착각이 든다. 전국의 청년들이 그린 것은 추모벽화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동화를 그린 것이라는. 모든 사람이 함께 잘사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오리도 인간들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세상.

어쩌면 착한 청년들은 뙤약볕 아래서 벌겋게 제 살갗을 태우며 이미 그렇게 여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즈긋하게 바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미소와 벽화작업을 마치고 밝게 웃는 모습이 판박이처럼 닮았다.
#노무현 #봉하마을 #벽화 #오리 #좋은세상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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