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에 욕이라도 하면 상황이 나아질까?

[取중眞담] DJ가 말하는 '행동하는 양심'되기

등록 2009.07.10 09:38수정 2009.07.1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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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부역강(年富力强), '나이가 젊고 기력이 왕성하다'는 뜻으로 주로 2·3·40대 신진 세력에게 구세대를 대신해 유업을 달성해줄 것을 부탁할 때 많이 쓰는 말이다.

DJ는 지난 6월 25일 동교동 자택 부근의 한 식당에서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 30여 명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연부역강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민주화, 서민경제, 남북화해를 위해 힘써 주세요."

이날 DJ로부터 연부역강하니까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은 이들은 70대의 한승헌 전 감사원장, 60대 중반인 한명숙 전 총리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50대 후반으로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이해찬 전 총리 등이다. 

하루가 다르게 백발과 주름이 늘어가는 김 전 대통령. 80대 중반인 그가 '지난 정권의 인사들'에게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분발을 촉구한 것은 현 시국에 대한 절박함의 표현으로 읽힌다.

"국민들이 불쌍해서…" 가장 열심히 투쟁하는 이는 DJ

 6월 27일 동교동 자택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6월 27일 동교동 자택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 안홍기


DJ의 절박한 심정은 그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달 27일 토요일, 오연호 대표기자와 함께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를 구술받기 위해 동교동 DJ 자택을 찾았을 때였다. 


"나이로 보나 현재 내가 정치권 외에 있다는 것으로 보나, 한마디 해서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별로 바람직하진 않지만…. 아직까지도 우리가 좀 후원을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냐. 한마디 하고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불쌍해서 안할 수 없어서 한다. 국민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난 국민이 불쌍해서…."

"국민이 불쌍해서…"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고, 발음도 명확치 않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그는 울고 있었다.


 6월 27일 동교동 자택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6월 27일 동교동 자택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 안홍기

DJ는 정장을 가지런히 차려입은 쇠약한 육신을 소파에 꼿꼿이 세운 채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어느 대목에 가서는 목소리를 높였고, 곳곳에 피멍이 든 손을 들어 내젓기도 하면서 격정을 토해냈다.

"50년 동안 독재 치하에서 잃어버린 민주주의, 잃어버린 공명한 경제, 잃어버린 남북 관계를 우리가 10년 동안 찾은 거에요. 역사를 거꾸로 얘기하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외환위기 때 나라가 가난해졌잖소. 그때 외환보유고가 37억불 아니오. 나라가 갑자기 망하게 됐어요. 그런데 국민들이 금모으기 하는 그런 정성, 국제적인 신임, 정부의 리더십 이런 등등으로 국제적 지원을 얻어서, 내가 청와대 나올때 37억불이 1400억불 됐습니다. 거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1200억불 보탰습니다."

자신이 이끌었던 국민의 정부와 이를 이은 참여정부의 10년이 하루 아침에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에 DJ는 울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80대 중반의 전직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이 시점에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열심히 저항하고 있는 이는 바로 김 전 대통령인 것으로 보인다.

담벼락에 욕하면 정말 상황이 나아질까?

그렇다면 '연부역강'한 30대인 나에게 DJ가 하고싶은 말은 무엇일까. 정말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면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일까.

"하다 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는 DJ의 말은 바로 '각자의 양심을 지켜내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읽혀진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DJ는 마음 속 천사와 악마 얘기로 '양심지키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있어요. 그거 없는 사람이 없어요.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 빼놓고 다 있어요, 천사와 악마가 있는데, 악마가 유혹을 해서 이기면 나쁜 사람이 되고, 악마를 굴복시키고 천사가 이기면 좋은 사람이 되는 거에요. 우리 모두가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기도 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거에요."


 6월 27일 동교동 자택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6월 27일 동교동 자택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 안홍기

그런데 이 마음 속의 악마를 굴복시키는 일이란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악마의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고 안락한 생활을 약속한다. DJ도 이런 점을 강조했다.

"입다물고 있는 국민들이 독재자에게는 얼마나 편한가. 협박하면 벌벌 떨고, 그 다음부터 손 떼면 얼마나 편한가. '함부로 떠들지 마라, 재미 없다'라고 할때 꺾여버리면 얼마나 편한가."

편한 일을 거부하고 양심을 지키면, 그 다음은 행동하는 일이 남아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행동하는 양심만이 이기는데, 행동하는 양심은 꼭 모험을 하면서, 감옥 가면서, 고문 당하면서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길들이 있다는 거에요. 투표도 있고 여론조사도 있다 이거에요. 그것조차 못한다면 이 나라 국민이라 하겠나. 그것조차 하지 못하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냐. 내 얘기는 그거에요. 악의 세력과 다퉈서 이기는 것도 아주 쉽고, 지는 것도 아주 쉬워요, 아무것도 안하면 되니까."

연부역강한 나에게 이 일은 너무 쉬운 일이지 않은가?
#김대중 #노무현 #민주주의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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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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