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자' 미실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선덕여왕>

등록 2009.07.07 12:28수정 2009.07.0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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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미실(고현정 분). ⓒ MBC

한동안 덕만(이요원 분)과 김유신(엄태웅 분)에게 집중됐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스포트라이트가 다시 미실(고현정 분)에게 집중되고 있다. 6일에 방영된 <선덕여왕> 제13부에서는 진평왕(조민기 분)과 천명공주(박예진 분)가 미실의 권력을 해부하기 위해 진흥왕의 칙서에 담긴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드라마에 따르면, 미실을 가까이에 두었던 생전의 진흥왕(이순재 분) 역시 미실 권력의 원천을 파악하기 위해 문노(정호빈 분)에게 조사작업을 지시한 적이 있으며, 이에 따라 은밀히 조사에 착수한 문노가 '사다함의 매화'란 것에 주목하여 이에 관한 기록을 남긴 바 있다고 한다.

미실이 갖고 있는 신비한 권력의 비밀을 풀어줄 사다함의 매화란 것이 중국 사신단을 수행할 상인단에 의해 신라에 들어올 것이란 첩보가 입수되었고, 제13부 방영분부터는 이것을 수중에 넣기 위한 진평왕 측과 미실 측의 물밑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상은 물론 드라마 속의 내용이다.

신비한 권력자, 미실의 권력장악 비결

그럼, 기존의 역사서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고 위작 논란이 있는 현존 <화랑세기>(필사본)에만 소개된 미실이라는 여인은 실제로 어떻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진지왕을 폐하고 진평왕을 옹립할 정도의 막강한 권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었을까?

한 개인이 권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기반이 있다. 선천적 기반과 후천적 기반이 그것이다. 여기서 선천적 기반이란 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을 말한다.

신라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는 후천적 기반보다는 선천적 기반이 개인의 권력 획득에 있어서 좀 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물론 평범한 백성도 화랑도의 낭도가 되어 공을 세우는 후천적 방법으로 정치권력에 접근할 수는 있었지만, 신분제가 잘 정비된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혈통 같은 선천적 기반이 보다 더 중요한 기능을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미실의 권력을 해부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그의 혈통을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여타 인물들과 비교할 때 미실의 신상명세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진평왕·천명공주·덕만공주·김유신 등의 경우에는 혈통이 잘 드러나는 데 비해, 미실의 경우에는 드라마 속의 비중에 비해 혈통이 잘 드러나 있지 않다. 화려함과 신비함이 극과 극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실제 미실은 어떤 혈통을 이어받은 인물이었을까?

그런데 신라인인 미실의 프로필을 조사할 때, 우리는 다른 시대 인물의 프로필을 조사할 때와는 색다른 접근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 속 인물의 프로필을 조사할 때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해당 인물이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언제 죽었으며, 본명은 무엇이고 호(號)는 무엇이며 자(字)는 무엇인지와 함께, 그의 부계 혈통이 어떠했는지를 조사한다. 이에 비해 우리는 해당 인물의 모계 혈통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편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미실의 혈통과 그의 선천적 권력기반을 제대로 규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부계혈통만으로는 미실의 타고난 신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화랑을 장악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권력 핵심부에 진입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진흥왕-진지왕-진평왕 3대와 육체 관계를 가질 수 있었는지, 왜 많은 남자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는지 등을 파악하려면, 그의 부계 혈통뿐만 아니라 모계 혈통까지 함께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인공 아닌 주인공' 미실의 혈통을 부계뿐만 아니라 모계 차원에서도 함께 살펴본다면, 미실이라는 한 인물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동안 부계 중심으로만 이해되던 한국 고대사를 보다 넓은 시야에서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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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부터 비담과 미실, 선덕여왕, 김유신, 천명공주, 김춘추 ⓒ MBC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권력

<화랑세기>에 따르면, 미실의 어머니는 묘도부인이라는 여인이었다. 묘도부인의 프로필은 상당히 화려하다. 미실이 출생할 당시에 그는 초대 풍월주(화랑도의 수장) 위화랑의 손녀, 법흥왕(당시 이미 사망)의 후궁, 대원신통의 혈통이었다.

법흥왕의 후궁? 그럼, 미실의 아버지가 법흥왕? 그건 아니다. 법흥왕의 후궁인 묘도부인은 궁중에서 법흥왕의 외손자인 미진부와 사통을 했으며, 법흥왕 사후에 왕실의 허락을 얻어 미진부와 결혼을 했다. 그 사이에서 미실과 미생이 태어났다.

묘도부인의 프로필에서 '대원신통의 혈통'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원신통은 진골정통과 함께 왕후를 배출하는 혈통이었다. 신라에서는 왕뿐만 아니라 왕후 역시 특정 혈통에서만 배출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왕비나 후궁은 아들에게 자기 인생을 건 데 비해, 대원신통이나 진골정통의 여인은 아들보다는 딸에게 자기 인생을 걸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딸을 낳지 않으면 자신의 혈통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미실의 어머니는 그런 신분의 소유자였다. 이런 여인이 왕후가 되는 경우에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딸을 낳아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남편의 왕통을 유지하기 위해 아들을 낳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음으로, <화랑세기>(필사본)에 따르면 미실의 아버지는 미진부라는 화랑이었다. 미진부는 법흥왕의 외손자인 동시에 제2대 풍월주였다. <화랑세기> 제2세 풍월주 미진부공 편에서 그의 생애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묘도부인 못지않게 미진부 역시 꽤 화려한 프로필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묘도부인은 왕후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었던 데 비해 미진부는 처음부터 왕이 될 수 없는 신분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두 사람의 공통점은 화랑도(초대 풍월주의 손녀, 제2대 풍월주) 및 왕궁(법흥왕의 후궁, 법흥왕의 외손자)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부모의 혈통을 종합하면, 미실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화랑도 및 왕실과의 깊은 인연을 물려받은 한편, 이에 더해 어머니로부터는 왕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하나 더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화랑도 및 왕실과 깊은 인연을 가진 데다가 왕후가 될 가능성까지 갖고 있었다는 것은 미실의 선천적 권력기반 즉 정치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후천적으로 갈고 다듬은 권력

<화랑세기>에 기록된 미실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 같은 정치적 유산 가운데에서 미실이 비교적 잘 활용한 것은 화랑도 및 왕궁과의 깊은 인연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부모의 유산을 몇 배 이상으로 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서 진지왕 폐위 및 진평왕 옹립에서 나타난 미실의 역할을 들 수 있다. 이때 사도태후(진흥왕의 부인)와 제휴한 미실은 화랑도를 동원하여 정변을 주도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리고 미실은 자신이 옹립한 진평왕이 나이가 어린 점을 활용하여 조정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타고난 정치적 유산 가운데 미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왕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진흥왕 사후에 진지왕의 왕후가 될 뻔한 적이 있지만, 사회 여론의 반대에 직면한 데다가 진지왕마저 다른 여자에게 빠졌기 때문에 왕후가 되고 싶은 미실의 꿈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미실이 진지왕 폐위를 주도하게 되었다는 것이 <화랑세기>의 설명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매력적인 '악녀'로 묘사되고 있는 미실의 권력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상당 부분 그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물론 후천적 능력 및 노력 역시 탁월했기에 그가 부모의 정치적 유산을 잘 지킬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후천적 권력기반을 이야기하자면 한두 장으로는 부족하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제13부 이후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관심의 초점으로 급부상한 미실의 권력 원천을 살펴본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미실이 부모로부터 꽤 많은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았으며, 그가 그러한 유산 가운데에서 화랑도 및 왕궁과의 인연은 비교적 잘 활용한 데 비해 왕후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미실의 권력은, 왕후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진지왕에게 복수하는 수준까지는 미칠 수 있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왕후로 만드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미실의 한계였다.
#선덕여왕 #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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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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