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재일조선인 지식인 서경식과 서로주체성의 철학자 김상봉이 2007년 5월 19일부터 8월 15일까지 아홉 차례, 40시간에 걸쳐 나눈 대담을 정리한 책. 두 사람은 각각 외부와 내부, 작가와 철학자의 시선으로 국민국가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를 고민하고, 형식적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새로운 과제들을 성찰한다.-책 소개 중에서
김준열
보기 드문 신앙 고백의 한 예로 '서준식' 선생 이야기를 꺼냈다. 김 교수는 서경식 선생과 만나 대담을 했다. 그 결과가 <만남>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서준식은 서경식 형이다. 서준식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17년 동안 형을 보냈다. 그때가 1971년이었다. 실제 형량은 7년이었지만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전향을 거부하여 10년을 더 복역했다.
서준식은 옥중에서 보낸 편지들을 모아 <옥중서한>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공산주의자(서준식)가 기독교·예수와의 만남을 얘기한다. 김 교수는 서준식의 고백만큼 그 이상 가슴 저미는 고백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옥중서한>을 필독하기를 권했다. 모든 논리·제도·도그마에 앞서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예수만큼 구구절절하게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고 서준식은 말한다.
두 번째 경험, 형이상학적 동요기독교와 만남에서 첫 번째가 '열정'이라면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동요'였다.
"무한히 빠른 속도의 로켓, 우주는 끝은 있는 걸까? 이 모든 것이 다 어디서 온 것일까. 철학자의 질문으로 바꿔서 말하면 왜 아무 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 있는 걸까? 나도 없고 집도 없고 해·달·별 아무 것도 없고, 시간과 공간조차 절대적인 무 속으로 던져버린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는 것일까. 어떻게 해서 이 모든 것이 있게 되었을까. 이렇게 묻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머리가 터져버린 줄 알았습니다. 왜 그런 물음을 던지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누가 창조했는데요?'라는 질문. 하나님은 왜 있나요? 왜, 언제, 어떻게 해서 무언가 있게 되었을까. 신, 하나님이? 평생 가는 형이상학적 동요입니다. 기독교와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 역시 모든 철학, 종교에 근본적으로 있는 물음입니다. 그 만남이 기독교적인 문화와 함께 일어났습니다."이런 형이상학적 동요는 철학과로 간 이유였다. 실은 정치를 하고 싶었단다. 정치를 하더라도 사이비 정치가가 되지 않으려고 깊은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는 대학 때 '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지은 세계에 까닭없는 고통, 불행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딪혔다. 이 질문은 그를 하루에도 12번씩이나 자살 충동으로 내몰았고, 죽으면 그 순간에 깨달을 수 있을지 하고 생각했다. 수많은 신학책을 읽었고 급기야 감신대에 불쑥 찾아갔다. 그가 찾아간 한 신학 교수는 "신앙이라는 것은 확신하는 것이 아니고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이때 경험을 '비극적 체념'으로 술회한다. 그때 인생을 다 알아버린 것 같았다고 한다. 다시는 이 물음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 물음을 덮어 온 셈이다.
"아무것도 세상에 이것이 진리, 저것이 진리이다는, 모든 것이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측량할 수 없는, 끝끝내 다가갈 수 없는, 절대자의 옷자락에 다가갈 수 없는 그 허무라는 것이 절대자가 우리에게 선물한 자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김 교수는 진보적인 지식인 축에 속한다. 자신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라고 말하지만 단 한번도 유물론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형이상학자가 된 원칙은 기독교가 준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신앙 고백으로써 신조를 믿든지 않든지 간에 인생에는 뜻이 있습니다." 매듭짓지 못한 물음을 덮은 채, 기독교적 실천으로 데모를 한다. 70년 후반,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서울 지역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 교회와 맺은 인연은 이 정도까지다. 밑바닥에서 하는 것을 좋아하는 체질 탓에 야학 운동을 오랫동안 했다.
기독교의 본질은 염려하지 않는 것1998년 2월 18일, 김 교수는 학교에서 쫓겨난다. 이 사건으로 깨닫게 된 게 있었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누구를 믿는 것이 아니고 염려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
"신앙은 누구를 믿어 도움을 받는 게 아니고 내가 정말로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징표는 사랑이고 두 번째가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김 교수는 인생을 즐겁게 산다. 욕심이 없어서다. 두려움이 없다. 내일 먹을 것이 생기겠지 하고 생각해야 욕심이 생기기 않는다고 말한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한국 기독교가 처한 문제는 믿음이 없는 까닭에 염려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삶을 걱정하지 않게 되면, 믿음 때문에 세상은 자연스럽게 평화스러워질 것이라고.
내가 하나님 되자"모든 복음서는 새로 쓰여져야 합니다."김 교수는 성경만 읽어서는 신앙이 살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 자체가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이 우리한테 하는 말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하는 말이다. 김 교수는 함석헌 글을 읽고 있으면 그 말 속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을 건넨다고 느낀다. 함석헌이 말하는 신앙이란 '내가 하나님 되자'이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신앙이다.
"세계의 고통이 내 고통으로, 세상의 모든 죄가 내 죄로 여기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존재의 온전함과 행복이 나 자신의 온전함과 행복이 되는 관계가 내가 하나님 되자는 뜻입니다. 뜻이 이루어지면 개별자인 나는 사라집니다."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대해서 아무리 분노한다고 하더라도 그 화살, 분노의 손가락을 밖이 아닌 내 자신에게 돌리는 것을 그는 함석헌에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