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 아시아 투어 콘서트 북 표지
SM엔터테인먼트
사실 한국 가수 중 도쿄돔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건 보아 정도라고 생각했다. 2연속 밀리언셀러, 베스트앨범까지 포함하면 3연속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보아라면, 그리고 소속사 AVEX 엔터테인먼트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 된다면 전성기 시절 보아 정도가 도쿄돔 공연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는 보아의 팬들 사이에서도 식지 않는 화두였다. 보아가 도쿄돔 공연이 가능한지, 아닌지.
그렇지만 보아는 끝내 도쿄돔 공연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었는데 안 한 건지, 아니면 못 한 건지,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겉으로 비친 모습은, '아레나 투어에 그친 보아가 미국 진출을 했다'는 것이다. 또 모르겠다.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보아가 그 인기를 등에 업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도쿄돔 공연을 성사시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치 일본에서의 인기를 역수입해 한국에서 슈퍼스타로 발돋움한 전례처럼.
동방신기의 도쿄돔 공연이 '그룹'으로는 국내 최초이지만, '한국 가수'로서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7년에 비, 2008년에 류시원이 각각 도쿄돔에서 공연을 가진 적이 있다. 한국 가수로서는 세 번째인 셈이다. 그렇지만 동방신기의 이번 도쿄돔 공연은 앞선 둘의 그것과는 공연 자체가 갖는 의미, 무게감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난다.
비의 경우에는 도쿄돔의 상징성을 홍보수단으로 이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비에게는 '월드스타'라는 닉네임에 어울리는 포장이 필요했고, 도쿄돔이 갖는 상징성은 아주 훌륭한 포장지 역할을 했다. 사실 비는 가수로서 도쿄돔에 설만큼의 활약을 일본에서 펼치진 못했다. 일본에서 발매된 그의 앨범들은 장 당 1만 장 남짓 팔렸을 뿐이다.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던 보아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물론 음반 판매량이 그 가수의 위치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다. 하지만 음반 판매량은 '가수의 앨범이 출시되면 무조건 산다'는 고정 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비는 도쿄돔 공연을 할 만한 위치는 분명히 아니었다. 수용인원 1만5000명의 부도칸(무도관)이라면 모를까. 비의 도쿄돔 공연에 든 관객은 4만3000명, 그 중 초대권 관객 5000명을 제외한 유료 관객은 3만8000명 정도였다.
류시원의 경우 비와는 조금 다르다. 류시원은 드라마로 인한 한류 붐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2004년 가수로 데뷔한 이후 약 5년간 쭉 그곳에서 활동했다. 이른바 현지화 전략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류시원은 비보다는 보아나 동방신기에 가깝다. 류시원은 지난 5년간 일본에서 5장의 정규앨범과 8장의 싱글앨범, 1장의 베스트앨범을 발매했다. 이들 앨범들은 매번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판매량도 좋았다.
2006년부터 투어를 시작한 류시원은 꾸준한 공연으로 고정 팬 층을 넓혀나가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8년 연말, 그는 도쿄돔에서 이틀 연속 공연에 성공한다. 그렇지만 류시원 역시 엄밀히 말해 도쿄돔에서 공연할 위치는 아니었다. 2008년 그가 자신의 첫 전국투어에서 기록한 관객동원 수는 약 9만 명. 18개 도시 30회 공연에서 모은 9만 명이라는 숫자는 도쿄돔 공연 가수에 어울리진 않았다.
일본 공연 등급, 축구장-돔구장-실내체육관공연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가수들이 '투어'라는 이름의 순회공연을 자주 한다. 신인이나 인지도가 낮은 가수들은 몇 개 구역, 적은 수의 도시를 돌기 시작하며 이름을 알려나가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인기가수들은 전국단위 투어를 한다. 보통 한 번에 2~3개월 동안 진행되는 이 투어는 공연장의 규모에 따라 '급'이 달라진다. 가수의 명성이 고스란히 공연장의 규모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에서 최고의 가수들만 할 수 있다는 '월드컵 스타디움 투어'는 그야말로 꿈의 무대다. 수용인원 7만2000명에 달하는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이나 콘서트 허가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도쿄 국립경기장 등 수용인원이 5만 명을 훌쩍 넘는 월드컵 스타디움에 설 수 있는 가수는 일본 내에서도 손꼽힌다. 스마프(SMAP), 비즈(B'z), 미스터 칠드런(Mr.Children) 같은 일본 내 최정상급의 몇몇 가수들만이 이 월드컵 스타디움 투어에 성공했다.
그 밑에 '돔 투어'가 있다. 도쿄돔을 포함한 삿포로돔, 나고야돔, 오사카 쿄세라돔, 후쿠오카 야후재팬돔에 이르는 이 5개 돔을 순회하며 공연하는 5대 돔 투어는 일본 가수들에게 있어선 월드컵 스타디움 투어 못지않은 꿈의 무대다. 3만~5만 명 수준인 수용인원은 월드컵 스타디움 투어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그 무게감과 상징성에 있어서는 당대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가수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것이 바로 돔 투어이기 때문이다.
돔 투어의 아랫단계인 아레나 투어는 보아와 동방신기의 주력 무대다. 축구장인 스타디움, 야구장인 돔보다는 규모가 작은 체육경기장인 아레나(Arena)의 수용인원은 대개 1~2만 명 안팎이다. 아라시,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같은 일본 내 톱 가수들도 아레나 투어를 매년 펼치고 있고, 이들은 한 번의 투어에 약 60~7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다. 동방신기의 이번 투어에는 약 35만 명이 집결했다.
100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아치우고, 아레나 투어에서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던 보아도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던 게 도쿄돔 공연이었다. 그것을 동방신기가 해낸 것이다. 불과 데뷔 4년차에 말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동방신기의 도쿄돔 공연에 대해 '그룹으로서 최초 공연'이라는 표현을 쓰며 최초라는 타이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초라는 타이틀 없이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동방신기의 이번 도쿄돔 공연은 한국가수들의 일본 진출에 하나의 모범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야심찼던 SES의 일본 진출이 쓰디쓴 실패로 되돌아온 뒤,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사장은 현지의 대형기획사와 제휴하여 그들의 입맛에 맞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보아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할 수 있었다. 그 모범 사례를 본 따 좀 더 파급력이 강한 남성 그룹 동방신기를 진출시켰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6년 동방신기의 첫 투어는 7개 도시 11회 공연에서 1만5000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 데 그쳤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9개 도시 20회 공연에서 35만 명에 이르는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4년 동안 무려 23배에 달하는 성장세를 보인 셈이다. 지난 1일 발매된 28번째 싱글앨범은 발매 당일에만 9만장에 이르는 판매고를 올렸다. 아라시에 이은 데일리 차트 2위. 동방신기는 이제 일본에서 메이저급 가수로서 우뚝 섰다.
동방신기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공유하기
10만 명 부른 동방신기, 보아도 못 했는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