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세력은 모두 '바보 노무현'이 되어야 한다

[동향과 분석] 되살아난 '친노 세력', 정치적으로 성공하려면

등록 2009.07.15 22:07수정 2009.10.0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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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완 전 비서실장,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이해찬 전 총리,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지난 10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와 안장식을 마친 뒤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전례위원회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평가한 책 <미완의 시대>의 맨 마지막 문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상을 좋아지게 하려고 정치를 선택했다. 따라서 '노무현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친노 세력이라면 정치를 피할 수 없다. 이제 49재도 끝났다. 평화·민주·개혁세력 앞에 대통합이란 숙제도 던져져 있다. 자연스럽게 친노 세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대안세력으로 자리잡아 가는 친노 세력

친노 세력은 유력한 정치집단이다. 집권과 박해를 모두 경험했다. '노무현 가치'라는 의식체계도 공유하고 있다. 지지세도 간단치 않다. 친노 인사들의 정치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48.4%로 시큰둥한 감정(39.4%)보다 높다. 물론 노 전 대통령 서거 일주일 후의 조사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서거를 계기로 그와 친노 세력에게 덧씌워진 '반노 정서'를 걷어내고 새롭게 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서거가 내년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여론이 78.1%였다. 윈지코리아컨설팅 5월 조사다.

노 전 대통령은 부활했다. 친노 세력은 그에 의해 정치적으로 복권됐다. 누구도 더 이상 낙인찍기(stigmatization)로 그들을 옥죌 수 없게 됐다. 되레 눈치를 봐야 할 정도다. 6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조사한 전직 대통령 호감도에서, 노 전 대통령은 DJ를 훌쩍 넘어서 박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박정희 38.1%, 노무현 36.0%, DJ 10.7%였다. 박정희를 경험하지 못한 20~30대에서는 박정희보다 2~5배나 높은 압도적인 호감도를 보였다.

지난 5월 말 <중앙일보>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유시민 전 장관, 강금실 전 장관, 한명숙 전 총리 순으로 친노 인사들이 2~4위를 차지했다. 6월 초의 R&R의 조사에선, 한 전 총리와 강 전 장관의 순위만 바뀌었을 뿐 유 전 장관을 포함해 역시 친노 세력이 2~4위를 휩쓸었다. 2위 유 전 장관은 1위인 오세훈 시장(17.9%)에 비해 그리 낮지 않은 12.5%였다. 한 전 총리와 강 전 장관은 각각 10.1%, 6.9%였다.


<시사IN>의 서울시장 후보 가상대결에서는 유 전 장관과 한 전 총리가 오 시장을 7~10 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물리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시장 후보 가상 대결에서는 문재인 전 실장이 현 시장에게만 지는 것으로 나왔을 뿐 다른 후보들에게는 이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두 조사 모두 진보정당의 후보까지 넣은 가상대결이었다. 따라서 친노 세력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안정적이라고 하겠다.

친노 세력의 강세, 그 이유가 무엇일까?


친노 세력의 강세 배경은 세 가지다. 서민·민주·균형·평화·탈권위·분권 등을 추진해 온 '노무현'과 부자, 강권, 특혜, 전쟁, 권위, 집중 등을 밀어붙이는 '이명박' 간의 선명한 가치대립이 그 하나다. 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 반민주 통치행태 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노무현 가치'는 갈수록 더 선명한 빛을 낼 것이다.

대표적인 부자감세 정책인 종부세 인하에 대해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의사를 표했다. 한길리서치가 작년 9월에 조사한 것에 따르면, 83.7%의 응답자가 참여정부가 법으로 만든 종부세의 유지 내지 강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관련 세제의 개편에 대해서도 61.3%가 반대했다. 금년 7월의 P&R 조사에서 국민의 71.1%가 법인세와 소득세 추가 인하를 안 좋게 봤다.

현 정부가 명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미디어법에 대해 국민의 67.4%와 62.9%가, 비정규직법 개정안에 대해 비정규직 92.3%가 반대의사를 밝혔다. 각각 KSOI, 미디어리서치, 한국비정규직센터의 조사결과다. 여론의 63.7%가 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데에 공감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빛의 광채를 찾는 건 당연하다.

민주당에 대한 불신도 또 다른 하나다. 민주당이 서거 국면에서 상당한 반사이익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한때 한나라당에 10%포인트 가까이 앞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민주당을 못 미더워하고 있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DJ까지 동원했지만 전주의 2개 선거구에서 모두 졌다. 뿐인가.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민노당에 졌다. KSOI 4월 조사에서 정책이 마음에 들거나 집권 능력이 있다는 등 좋은 뜻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32.9%였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유 중에 좋은 뜻이 점하는 비율(62.2%)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6월 한국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민주당 활동에 대한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여론은 27.2%에 불과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무려 64.6%였다. 현재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 53.5%가 잘하고 있다고 했고, 37.7%가 잘못하고 있다고 했다. 더 심각한 게 있다. 지지정당이 없다고 한 무당파 중에서 67.4%가 민주당이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잘하고 있다는 겨우 21.5%에 불과했다. 여타 외생변수를 제외하면, 민주당이 자체로 얻고 있는 지지율은 12~13%가 전부다.

역대 선거마다 등장한 '제3지대' 표

마지막 하나는 선거 때마다 드러나는 실체, 즉 '한나라당도 싫고, 민주당도 싫다'는 이른바 '제3지대'의 표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 그리고 진보진영 후보를 제외한 제3지대 후보들(이회창·문국현)의 득표율은 20.9%였다. 16대 대선에서는 유력한 제3지대 후보가 없었다. 15대 대선에서 제3지대 후보 이인제는 19.2%, 4,925,591표를 얻었다. 14대 대선에서 제3지대 후보들인 정주영·박찬종은 22.7%, 5,396,114표를 획득했다. 14~17대 대선결과를 비교해 보면, 19~23%의 제3지대가 있는 셈이다. 이것이 지금 친노 세력의 지지를 떠받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들 제3지대의 표는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에게 분할 흡수됐다. 이회창 후보는 15대에 비해 150여만 표를 더 얻었다. 노무현 후보는 15대의 김대중 후보에 비해 168여만 표 더 획득했다. 16대는 15대에 비해 기권표가 395만 늘었다. 유권자 수는 270여만 명 증가했다. 얼추 더하고 빼면 16대 대선에서 제3지대의 표는 443만 정도가 된다. 다른 선거와 비교할 때 엇비슷한 수준이다.

제3지대의 표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수도권과 영남권에서다. 제3지대 후보들의 수도권 득표율은 17대 대선, 15대 대선, 14대 대선에서 각각 19.9%, 18.1%, 26.8%였다. 영남권 득표율은 각각 22,9%, 25.1%, 19.6%였다.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다. 참고로 15대 대선에서 DJ는 수도권과 영남권에서 각각 42.0%, 13.5% 득표했다. 수도권과 영남권은 전체 유권자의 각각 48.5%와 25.8%를 차지하고 있다. 절대적 비중이다. 따라서 친노 세력이 수도권과 영남권에서 안정적 지분을 갖고 있는 제3지대 표를 계속 안고 갈 수 있다면 향후 정국의 조타수가 될 것이다.

통합 혹은 병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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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 1당으로 올라선 열린우리당 2004년 4월 15일 저녁 6시 17대 국회의원 선거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자 개표상황실에서 방송을 지켜보던 당직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권우성


친노 세력이 민주당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홀로 가는 것이 좋은가? 선호나 판단, 선택까지 모두 각자의 몫이다. 여론도 34.0% 대 33.7%로 팽팽하다(KSOI 조사). 하지만, 역사 속에서 교훈을 모색한다면 크게 2가지 모델로 나눠 볼 수 있다. 통합 모델과 병존 모델이다. 모두 여러 예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12대 총선(1985.2.12)에서 신민당, 14대 총선(1993.3.24)에서 민주당, 16대 대선(2002.12.19)에서 민주당, 17대 총선(2004.4.13)에서 열린우리당이 통합 모델의 대표적인 예다.

신민당은 전두환 정권이 주조한 정당체제를 깨버렸다. YS․DJ가 만든 신민당은 서울, 부산, 인천, 대전, 광주 등 대도시에서 후보 전원을 당선시켜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14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29.2%의 득표율에 97명의 당선자를 냈다. 당시 민자당은 38.5%의 득표율에 149명의 당선자를 냈다. 16대 대선에서 민주당은 48.9%를 얻어 승리했다. 열린우리당은 42%의 득표율로 원내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의회권력 교체에 성공했다. 이처럼 통합 모델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통합에 대한 기대는 지금도 여전하다. KSOI 조사에서, 국민의 48.1%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범야권 단일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병존 모델의 대표적인 예로는 13대 총선(1988.4.26)에서 민주당과 평민당의 경쟁, 15대 총선(1996.4.11)에서 국민회의와 민주당의 경쟁을 들 수 있다. 18대 총선(2008.4.9)의 민주당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13대 총선은 DJ와 YS의 분열로 인해 민정당이 제1당이 됐다. 평민당(DJ)과 민주당(YS)의 득표율을 합할 경우(43.1%) 민정당(34.0%)에 비해 9.1% 포인트나 높았기 때문에 통합했더라면 원내 과반수 의석도 가능했을 것이다. 15대 총선에서도 국민회의와 민주당의 분열로 인해 신한국당이 원내 1당(139석)이 됐다. 당시 국민회의와 민주당의 득표율을 합치면 37.1%로 34.5%의 신한국당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통합 모델과 병존 모델을 배타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갖는 한계도 있다. 열린우리당은 병존 모델로 시작해 통합 모델로 발전한 경우다. 따라서 양 모델을 기계적으로 대비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해를 위한 구분으로 봐야 한다. 친노 세력의 행보에서도 당장의 선택을 놓고 통합이냐 병존이냐 가늠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향후 정치일정을 고려해 통합지향성을 갖고 있느냐, 아니면 분열지향성을 갖고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바보 정신으로 정치 하면 나라가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친노 세력이 어떤 행보를 하든 제3지대의 표나 민심을 품고 가야 한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구체적 선택은 이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으로 들어가더라도 '지금의 민주당'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제3지대의 표나 민심에게 소구력이 없을 것이다. 지역성을 완전히 탈각하고, 새로운 리더십과 새로운 비전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리모델링 프로세스 속에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수도권과 영남권에서 민주당이 보여 온 3~7%의 지지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분간 병존을 통해 각개약진하다 발전적으로 통합하는 로드맵을 그려보는 선택에도 위험성은 있다. 나중에 통합할 것을 전제로 하는 합의 병존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정당 혹은 지역세력으로 비쳐져 완전히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3지대, 나아가 전체 민심은 지역주의나 낡은 정치에 대한 거부이지 새로운 지역정당이나 지역세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와 별도로 나선 민주당은 수도권과 영남권에서 각각 13,4%, 12.1% 얻는 데 그쳤다. 단순다수제의 선거틀에서 각개약진이 갖는 위험은 득표율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친노 세력의 정치적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민주당 입당이냐 홀로서기냐가 아니다. 제3지대, 나아가 그 이상의 민심을 얻는 것이다. 어떻게? 답은 '바보 노무현'이다. 작은 이해와 당장의 성패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그가 승리하지 않았나. 그렇다. 친노 세력은 모두 '바보 노무현'이 되어야 한다. 친노라는 브랜드를 기득권으로 삼지 않아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가치를 실현하는 데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벽을 쌓기보다 길을 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산다. '그 바보'가 이렇게 말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친노 #민주당 #선거 #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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