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 전문 프리랜서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이유경(37) 기자
한만송
'조금씩 현실에 타협하면서도 이를 합리화하며 사는 우리들과 달리, 고통 받는다는 표현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지구촌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는 우리의 깽.'
이 기자의 지인은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 기자의 별명은 '깽'이다. 그가 분쟁지역을 찾는 기자로 발을 내딛은 것은 한국 언론의 폐쇄성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을 요구하는 학벌 사회, 출입처 중심의 천편일률적 취재 관행, 도제식 교육 관행 등을 보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었다는 이유경 기자.
그는 2004년 3월 자신의 발로 분쟁지역을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에 얇은 호주머니와 네트워크 준비도 없이 분쟁지역에 몸을 던졌다.
그동안 네팔, 미얀마, 라오스, 태국 남부, 스리랑카, 카슈미르(인도 파키스탄 분쟁지역), 인도,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등 내전과 전쟁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지역을 다니면서 분쟁의 원인과 인권문제를 주로 취재했다.
그의 기사와 사진은 <위클리 경향> <한겨레21> 등 국내 언론매체와 독일 진보 일간지 <Neues Deutschland>에 실렸다. 이밖에도 <Die Wochenzeitung>(스위스), <Asia-Pacific Times>(독일), <Mygreennews.com>(독일) 등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고 있으며, 그의 사진은 홍콩베이스 아시아전문 사진 에이전시인 'Eyepress.com'을 통해 배포되고 있다.
"가난하지만, 조·중·동에 기사를 넘길 수 없죠" 생사를 오가면서 취재를 하지만 국내 언론은 이유경 기자가 발로 뛴 기사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정부가 외국 언론 상황을 비교하면서 국내 미디어 시장의 통폐합을 주장하지만, 세계 경제 12위의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국제 취재활동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출입처를 중심으로 편제된 국내 언론의 역할은 외국 취재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사건사고가 있는 곳에 기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사고의 내용이 취합되는 곳에 기자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언론이 내보내는 세계 분쟁지역 관련 소식의 절대 다수는 외국 특파원이 취재한 것을 통신사를 통해 가공한 정보다. 같은 아시아권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의 소식도 이와 비슷한 경로로 습득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유경 기자와 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 길을 개척하는 기자들에게 분쟁 지역 취재는 생명의 위협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협까지 주고 있다.
이유경 기자는 <위클리 경향>과 <한겨레 21> 등에 기사를 송고하고 있다. 이들 언론사에서 이 기자에게 보내는 원고료는 분쟁지역을 몇 달 간격으로 오가는 경비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원고료가 높은 다른 매체에 송고할 생각이 없냐는 물음에 이 기자는 "국내 언론사 중에서 원고료가 높은 곳은 조선·중앙·동아밖에 없는데, 이런 언론사에 기사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면서 "분쟁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권문제와 사실 왜곡을 가감 없이 보도할 수 있는 국내 언론사에 내 기사를 송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단호한 말은 배고프지만 신념을 지키겠다는 정신이 묻어 있다. 이 정신이 바로 삶과 죽음을 오가는 분쟁지역에서 그를 지탱해주는 힘이리라.
"아시아 넘어 고통 받는 제3세계 민초의 삶 만나고파" 이 기자는 앞으로 몇 년간은 아시아지역의 분쟁을 취재할 계획이지만, 향후에는 아프리카와 남미지역까지 취재 영역을 넓히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마오쩌둥주의'의 공산반군의 무장투쟁과 중도 우파세력의 연대로 왕정을 끝내고 공화국으로 넘어간 네팔 지역에 취재에 욕심을 내고 있다. 네팔은 지난해 5월 제헌의회의 왕정 폐지 결의에 따라 왕정이 막을 내리고 공화국이 출범했다. 그러나 최근 폐위된 뒤 칩거해온 갸넨드라 전 국왕에 대한 왕정 복귀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 잠재적 분쟁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더욱이 정파 간의 대립으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기자는 2006년 9월 13일 군부 쿠데타 이후 정치 불안을 겪고 있으며, 최근에는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로 일고 있는 태국도 관심 지역이다. 태국은 이 기자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이라 주요 취재지역이다. 이밖에도 스리랑카지역 등에서도 추가 취재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미얀마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추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치적 불안 상황이 지속되면서 스파이 활동이 많아 외국 언론에 대해서도 상당히 경계를 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서 미얀마에서는 쫓겨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아시아의 다수 국가들은 서방에 의해 20세기 초까지 식민지였기 때문에 백인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지만, 한국인과 같은 동양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어 취재하기에는 서방 기자들보다 유리하다.
이 기자는 아시아 다수 국가들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은 한국의 70년대 수준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기자는 "20세기 초까지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방 강대국에 의해 식민지로 수탈당한 아시아 민족은 이제 정치적 이데올로기, 종교, 기득권으로 인한 내전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아시아 지역을 넘어 초국적 자본에 의해 여전히 고통 받는 제3세계 민중들의 삶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BBC, 알자지라, CNN이 주요 취재원? 국내처럼 출입처와 학연, 인맥을 통해 형성된 정보원이 과연 분쟁 지역에서도 형성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당신의 주요 정보원은 누구냐"고 물었다.
이 기자는 자신의 정보원은 영국 BBC, 아랍권 방송인 알자지라와 미국 CNN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거대 미디어 그룹의 경우 정보원을 통해 생산된 고급 정보를 돈으로 일부 유통시키기도 하지만, 발로 뛰는 그의 경우는 분쟁 지역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이들 방송이 주요한 정보원이다.
자신의 베이스캠프에서는 이들 방송을 24시간 청취하며 자신의 다음 취재 지역을 경정하고, 취재 루트를 작성한다고 한다. 또한 이 기자는 국제 인권단체 보고서, 각국의 정책 싱크탱크 등을 통해 입수한 각종 자료를 통해 취재 지역에 대해서도 일상적 체크를 한다.
물론 일부 지역의 경우 인터넷 등을 통해 취재 후의 상황을 제보하고 이를 통해 후속 취재도 진행되고 있다면서 그 동안의 성과물을 일부 털어놓기도 했다.
외국 분쟁 지역을 취재하며 지난해 광우병 파동,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와 인권 후퇴 상황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자 이 기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많은 우려를 갖고 있지만, 외신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보다 남북의 긴장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최근 독일 진보 일간지인 <Neues Deutschland>에 대한민국의 '6월 키워드'를 주제로 기사를 송고했다. 주요하게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벌어진 인권침해와 민주주의 후퇴 상황에 대해 기자의 문제의식을 다루었다.
또한 최근 남북 관계 긴장 고조로 인한 남북한의 주요 변수와 이명박 정부에게 남북 경색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와 이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하지 등에 대해서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배고플 자신이 있다면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