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테프, 인간에서 신이 된 유일한 이집트인

[이집트 문명전 ②] 경이롭고 복잡하기에 매력 있는 이집트 신화

등록 2009.07.22 10:04수정 2009.07.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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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화는 우리에게 굉장히 낯선 존재이다. 하지만 정작 이집트 문명에서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컸다. 이집트의 생활에서 신화란 빼 놓을 수가 없었으며, 그들의 역사 또한 신화로 변이되어 기록되었다. 신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말처럼, 이집트인들은 신들을 창조하고, 또 합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이집트의 방대한 신화는 쓰였고, 이들은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앞선 기사에서 이집트의 주요 신인 4명의 신, 즉 오시리스와 이시스, 세트, 호루스에 대해서 다뤄보았다. 사실 이들 외에도 라, 슈, 게브, 누트 같은 신들은 태초부터 존재한 신들이라 그 중요성이 매우 높지만 이번 특별전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담은 유물들이 많지 않아서 제외하였다. 대신 이들보다 나중에 창조된 신이면서도 그 중요도가 높은 또 다른 5명의 신에 대해 소개해 본다.

 

[프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를 다스리는 장인과 창조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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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타. 멤피스를 다스리던 신으로서 장인의 신이다. ⓒ 파라오와 미라

▲ 프타. 멤피스를 다스리던 신으로서 장인의 신이다. ⓒ 파라오와 미라

이집트의 신들은 역사에 따라서 생성되기도 하고, 또한 합쳐지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이 중에서 초기의 신들은 주로 오시리스처럼 미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도상을 만들 때 조각이 많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도상이 정립되다보니, 팔다리가 몸에 가깝게 조각되었기 때문이다. 프타는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신임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이집트에는 이집트 전체에서 어느 분야를 맡은 신들도 있지만, 도시를 수호하는 신들도 존재한다. 프타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를 다스리던 신으로서, 이쪽의 창조신화에서는 프타가 중심으로 나온다. 이집트는 단일한 창조신화를 가진 게 아닌, 여러 모습의 창조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역사가 오래 되고,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에 걸쳐 수많은 국가들이 존재하면서 흥망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프타는 매우 오래된 신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창조의 신이지만, 물질적이라기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창조를 행하였다는 점에서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아무래도 대중에게 철학이나 신학은 어려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예술가들이나 장인들을 다스리는 최고의 신으로도 숭배되었다.

 

프타의 창조는 이해의 원천인 심장과 말의 원천인 혀를 통하여 행해진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모습을 보면 턱수염이 끝이 구부러진 신들의 것이 아닌, 곧게 뻗은 왕들의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문명전에서는 작은 조각이 하나 왔지만, 알고 보면 생각보다도 굉장한 숭앙을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누비스] 망자를 위한 마지막 예우, 아누비스가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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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비스. 오시리스와 네프티스의 아들이며 미라를 만든다. ⓒ 파라오와 미라

▲ 아누비스. 오시리스와 네프티스의 아들이며 미라를 만든다. ⓒ 파라오와 미라

아누비스는 개의 신, 혹은 자칼의 신으로 인식되었으며 주로 미라를 만드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믿어진다. 아누비스의 탄생은 조금 복잡한데, 오시리스와 네프티스의 아들이라고 한다. 네프티스는 오시리스의 여동생이나 세트의 부인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러한 모습은 꽤 이상하게 비쳐지는데, 신화를 접근 할 때 무조건적인 현대의 윤리적 잣대로만 보는 것도, 그 이해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프티스는 세트의 아이를 낳지 않았고, 오시리스에게 술을 먹여 착각하게 한 후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였다. 그러나 세트의 흉악한 보복이 두려워 아이를 버렸으며, 나중에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시체를 찾아 떠돌 때 같이 가면서 아누비스를 찾고, 이시스는 이 아누비스를 입양하여 양자로 삼았다고 한다.

 

아누비스는 이후 이시스의 호위자가 되었다고 하며, 약과 독을 관장하였다고 한다. 오시리스의 시체를 보고 아누비스는 이시스 및 네프티스와 함께 미라로 만들었으며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이게 이집트에서는 장례식의 최초라고 전해지며, 다른 전승으로는 게브와 토트의 도움을 받았다고도 한다.

 

아누비스는 사자의 서에서 주로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아누비스의 판정에 토트와 호루스, 오시리스가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의 벽화들을 보면 오시리스와 함께 아누비스가 있는 모습을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하토르] 위대한 하늘의 여신이자 암소의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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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르. 암소의 머리를 한 라의 딸이며 호루스의 부인이다. ⓒ 파라오와 미라

▲ 하토르. 암소의 머리를 한 라의 딸이며 호루스의 부인이다. ⓒ 파라오와 미라

 

하토르의 모습은 염소나 암소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초기와 그 이후에 신의 성격이 달라지는데 하토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초기에는 누트와 라의 딸로 생각되었지만, 나중에는 라의 부인, 호루스의 어머니로 인식되었고, 결국엔 호루스의 부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집트 신화를 보다보면 이렇게 신들의 역할이나 족보가 자꾸 바뀌다보니 혼란스러울 때가 많지만, 긴 역사 속에서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계속 신화가 '창조'되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번에 출품된 유물 중 <하토르가 조각된 의식용 수반의 일부>는 하토르에게 바쳐진 것이다. 이 유물에서는 하토르가 암소의 귀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의 신이 다른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가 이집트에서는 흔하다. 다소 복잡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을 이해해야 이집트 신화를 제대로 접할 수 있다.

 

하토르는 사랑, 음악, 춤의 여신으로서 하늘, 물도 상징하곤 하였다. 그리고 후에 가서는 시스트럼이라는 악기에 비유되었다. 기쁨과 모성을 갖춘 신으로서, 이러한 점에서 보면 매우 여성스러우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가 연상된다. 하지만 하토르는 이러한 선한 모습 뒤에 흉악한 모습도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여신이었다.

 

하토르는 바로 세크메트이기도 하였다. 세크메트는 하토르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신이지만, 신화에서 둘은 동일한 존재로 나온다. 그럼 과연 세크메트는 어떤 성격이었기에 하토르와 상반된다고 일컬어지는 것일까?

 

[세크메트] 사자의 얼굴을 한 파괴와 재생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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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크메트. 사자머리를 한 파괴와 재생의 여신이다. ⓒ 파라오와 미라

▲ 세크메트. 사자머리를 한 파괴와 재생의 여신이다. ⓒ 파라오와 미라

세크메트는 암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자라는 이미지에서도 눈치 챌 수 있듯이 파괴적이고 잔인한 성격의 여신이다. 세크메트는 프타의 배우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세크메트의 숭배가 멤피스와 가까운 지역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크메트는 자신의 적들에게 불꽃을 내뿜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라가 지상에서 인간들을 통치하는 동안 반란이 일어나자, 그는 자신의 딸인 하토르를 보내 반란을 진압하였다. 하토르는 인간들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죽였으며, 피의 맛을 보자 스스로도 진정시킬 수 없어 세크메트가 되었다. 하지만 라는 인간들을 파괴하기보다 복종시켰기에, 걱정이 되어 하인들에게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만들게 하고 세크메트에게 주었다.

 

세크메트가 인류를 파괴하기 시작한 그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온 들판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라가 준 맥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게 되었고, 결국 평상시의 성격으로 돌아와 인류의 멸망을 중지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인류의 멸망을 피하게 되자, 세크메트를 숭배하는 주신제(酒神祭)가 열리게 열렸다고 한다.

 

이번 이집트 문명전에는 세크메트를 상징하는 유물로 <사자머리를 한 여신과 오벨리스크>와 <세크메트> 등이 출품되었다. 둘 다 머리에 태양원반과 우라에우스 뱀 장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며, <세크메트>의 경우 다리 좌우로 아멘호테프 3세에 대한 헌사가 히에로글리프(이집트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임호테프] 영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 인간으로서 신이 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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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테프. 유일하게 인간으로서 신이 된 사나이이다. ⓒ 파라오와 미라

▲ 임호테프. 유일하게 인간으로서 신이 된 사나이이다. ⓒ 파라오와 미라

임호테프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미라라는 영화에 나온 이모텝을 연상할 것이다. 사실 발음 상 차이이지 거의 동일한 인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인물로서 임호테프는 고왕국시대 조세르왕의 재상이자 건축가인 실존인물이며, 이모텝은 세티 1세 때 처형된 것으로 설정된 가상인물이다. 그러니 미라라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악당으로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시대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호테프>라는 유물에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들고 있으며 턱수염이 없고 머리에 꼭 맞는 모자를 쓰며, 허리옷이 섬세하게 주름 잡혀 있는 게 특징이다. 이 임호테프는 이집트 신화에서 인간으로는 유일하게 신으로 숭배되는 사나이다. 파라오의 경우 그 자체가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되었기에, 이런 면에서 임호테프는 굉장히 의외의 인물이다.

 

그가 만든 계단식 피라미드나 조세르왕의 마스타바(귀족무덤, 석실분묘)는 당시 이집트인들에게 가히 혁명적인 기술이었다. 이집트인들은 일찍이 이런 웅장하고도 정교한 건물들을 볼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학자들 중에서는 그러한 임호테프의 작품을 보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주해 온 기술자로 보기도 한다.

 

그는 이집트를 넘어서 로마제국에서도 치료의 신으로 숭배받기도 하였다. 일부러 그를 숭배하는 이들이 치료를 받기 위하여 이집트에 있는 그의 신전으로 찾아올 정도였다니 시대를 초월한 믿음의 대상이라고 하겠다. 인간으로서 신의 대우를 받는다는 것, 이는 임호테프 생전에 보여준 열성적인 의지가 당시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이집트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고,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런 신들은 각자만의 신화를 가지고, 또 다른 신들과의 결합 등을 통하여 계속 그 모습이 창조된다. 결국에는 이집트인들이 남긴 자신들의 지혜로서 그들은 존재하게 된다.

 

그런 신들 중에서도 임호테프의 존재는 정말인지 특별하다. 다른 종교에서 인간이 신이 된 경우는 더러 있지만, 이게 수천 년에 걸쳐서 지속적인 숭배가 이뤄졌다는 것은 그가 남긴 유산이 얼마나 지대하였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덧붙이는 글 5월 30일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문명전에 갔다와서 쓴 글입니다. 이집트의 신 중에서 임호테프 외 4명의 신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이집트문명전 #이집트 #파라오와 미라 #임호테프 #세크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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