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파괴사는 인간의 문명사

[휴가 때 읽을만한 책] 존 펄린의 숲의 서사시

등록 2009.07.24 16:12수정 2009.07.2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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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눈으로 인간의 문명을 바라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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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서사시 존 펄린이 지은 숲의 서사시 ⓒ 교보문고

▲ 숲의 서사시 존 펄린이 지은 숲의 서사시 ⓒ 교보문고

'숲의 서사시(A Forest Journey)'는 인간이 자랑하는 문명이란, 나무와 숲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던 역사였음을 조근조근 일러준다. '숲의 파괴사'가 '인간의 문명사'인 셈이다.

 

  메소포타미아 시대를 출발하여 그리스 로마, 스튜어트 왕조의 영국을 거쳐 19세기 후반 미국까지. 5천여 년의 시간과 다섯 대륙을 넘나들며 인간의 발길 아래 스러진 울창했던 숲을 노래한다. 숲이 사라진 자리에는 도시가 들어차고, 온갖 곤충과 벌레 따위 목숨붙이들의 삶터인 거목이 도륙당한 들판에는 사람들만 어슬렁거린다.    

 

1810년 미국에 사는 농부 '텐치 콕스'는 "숲 때문에 해안에서 100~200마일 들어간 기름진 땅에 접근하기 힘들어 경작을 못한다"며 "이렇게 성가신 나무를 없애기 위해 숯을 때는 제철소를 세우자"고 핏대를 올린다.

 

돈이 곧 문명인 2010년 이 땅의 개발업자들은, 미국의 '텐치 콕스'보다 훨씬 집요하고 악랄하고 천박하다. 아파트와 자동차를 만들자면, 골프장을 세우자면, 울긋불긋한 모텔을 짓자면 그까짓 산 몇자락 허무는 게 대수랴. 집(숲)을 잃은 멧돼지가 시멘트로 만들어진 도시에 갇혀 울부짖는 들, 무에 그리 큰일일까. 
 

책 끝자락에 실린 1883년 찰스 사젠트 보고서는 거침없이 내달아 자연계에 혼자 남게된, 인간의 위기의식이자 숱하게 베어넘긴 숲에 대한 화해의 몸짓이다.

 

"산이 많은 지대에서 숲은 파괴적인 급류를 방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산에서 숲을 벗겨내면 지역사회는 커다란 위험을 맞게 된다. 이미 도끼와 불, 그리고 새싹을 뜯어먹는 가축들 때문에 산악지대 삼림들이 잠식되기 시작했다.  큰 강들의 흐름을 조절하는 이 같은 삼림들이 사라지게 되면 사회는 미래의 엄청난 투자로도 막을 수 없는 광범위한 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보고서가 나온 지 126년이 지난 오늘, 빛바랜 종이에 박힌 글자들이 오히려 더 빛남은 '도끼와 불'이 광포한 불도저로, '새싹을 뜯어먹는 가축'들이 결코 멈추지 않는 자본과 끊임없이 이익을 좇는 개발업자들로 바뀌어 더 고단해진 이 땅의 처지 때문이리라.    


불행 중 다행일까? 척박한 땅 고단한 삶에도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으니. 존 펄린이 들려주는 '숲의 서사시'는 숲 이야기가 아니다. 숲이 떠나면 잠깐 숨 돌릴 겨를조차 없는 우리들의 다급한 목소리일 뿐. 사람살려!  

2009.07.24 16:12 ⓒ 2009 OhmyNews

숲의 서사시

존 펄린 지음, 송명규 옮김,
따님, 2002


#숲의 서사시 #숲과 자연 #숲과 문명사 #그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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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 그리고 조경일을 배웁니다. 1인가구 외로움 청소업체 '편지'를 준비 중이고요. 한 사람 삶을 기록하는 일과 청소노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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