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학생회에서 붙인 자보. 교수들은 나서서 시국선언을 하는데, 대학생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송주민
- 사회구조를 외면하고 특정 세대의 문제로 몰아가는 데 대한 우려도 많다. "맞다. 사회를 보자. 약자가 되면 살기가 힘든 세상이다. 회사에서 해고되면 벼랑 끝이다. 재개발사업하면 세입자들은 쥐꼬리 전세금 받고 쫓겨나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 용산과 쌍용차 사태가 그런 경우 아닌가. 북유럽처럼 복지가 잘 돼있으면 재취업이 용이하고 생존권이 보장되기에 해고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 없다. 우리는 낙오자가 되면 그대로 끝이다. 극렬히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쌍용차 노동자 부인이 자살했다. 생존권을 보장해야할 정부는 되레 압력을 넣고, 회사 측은 위해를 가한다. 자살을 택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대들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낙오되면 죽는 길밖에 없는 걸 너무 잘 알기에, 기를 쓰고 승자가 되려 하는 거다. 그래도 우리 때는 대학 나오면 웬만한 직장은 보장됐다. 지금은 대학 나와서 88만원 받으면 기본 생활조차 유지가 안 된다. 약자가 되면 살 길이 없다. 그러니 사회문제에 눈을 감는다. 강자가 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좋은 대학이라는 곳에서 더 그렇다."
- 캠퍼스에서의 '스펙' 쌓기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 옆에서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왜 이런 상황으로 치달았는지에 대한 공부가 없기 때문이다. 깨닫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가치 없는 경쟁을 계속 하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면 왜 도는지 모르고 돈다. 관성이다. 철창 밖으로 나가야 되는데, 철창을 열어야 된다는 생각도 여유도 없어 보인다."
- 이유야 어찌됐건, 현 20대는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그 어느 세대보다 많다. 학점은 기본이고 공부 양도 엄청나다. 고급 인재들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입시의 연장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오기 위해 공부했던 것처럼, 좋은 직장을 잡기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를 하고 있다. 지식의 양 자체는 많아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의 발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해졌다.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가치판단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고전과 유명소설들을 읽어봤냐고 물어보면, 소설내용을 읽은 게 아니라 소설에 대한 배경지식만 외웠다고 있다. 시험에 나올 만한 지식을 찍어서 공부하지, 책을 읽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이라면, 소설도 보고 시사·교양서적도 보고 해야 하는데,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전공 열심히 해서 학점 잘 받고 사회적인 승자가 되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런 분위기가 대학에 팽배해졌다."
"투표부터 잘 하자!" - 386세대와 비교하며 20대의 '생각 없음'을 질타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386은 전공 이외의 사회공부도 많이 한 세대다. 물론 당연히 전공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 그러나 내 전공이 사회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모르는 건 문제다. 아인슈타인은 원자력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잘못 사용되면 재앙이 될 것이라는 사회적인 통찰을 했다. 대운하를 두고, 토목학회 사람들이 건설사들 돈 많이 버는데 왜 반대하냐는 생각을 하는 것, 자기 전공분야가 이득을 보니까 대운하를 찬성한다는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가 뭔가. 자기 전공만 있고 사회적인 판단은 전혀 고려를 않는 것이다. 20대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게 이런 거다. 전공 물론 좋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공부도 같이 하자. 386에게 배울 게 있다면 그런 점이다."
- 대안을 만들어가려면, 20대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장 기본부터. 20대는 투표권이 있다. 그런데 절반 이상은 투표권을 포기한다. 그만큼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잘못을 방치하는 거고,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야기해보면, 학생들도 초중고에서 무한경쟁 시키는 건 잘못됐다고 느낀다.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가 그 정도로 막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은 많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냐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다. 바꾸는 길은 뭔가. 공 교육감 같은 사람 뽑지 않는 거다.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남에겐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그게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이런 것을 인정하자고 외치는 학생들이 있는 건 정말 섬뜩한 일이다."
- '촛불세대'라 불리는 10대들은 20대들과 다를 거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판단하기 힘들다. 다만, 사회의 잘못을 비판하며 거리로 나오는 중고생이 있다는 것. 우리 교육이 대학입시만을 강조하는데도 어린 학생들이 그런 자각을 할 수 있다는 건, 선생님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치판단에 대한 교육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처럼 보였다. 조금은 희망적이라고 느꼈다."
- 대학에는 그런 희망이 안보이나. "사실 지금의 대학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서울대 총학이 두 번을 연이어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자신들이 선택한 총학임에도 큰 문제라 생각을 안 한다는 사실. 이건 굉장히 절망적인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서울대는 죽어 가고 있다고 본다. 우리가 길러내는 학생들이 부정부패에 대해 관대하다면 그것은 대학의 정신이 없는 거다. 대학은 사회 속에 있지만 사회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을 하는 곳이다. 이 기능이 죽었다는 건, 대학, 엄밀하게 말하면 학생사회가 죽었다는 말과 다름없다."
- 현 20대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는 부분은 없나. "황우석 사태 이후 학문윤리란 과목을 가르치는데, 강의를 해보면 듣는 학생들이 예상외로 많다. 이 모습을 볼 때는, 우리 학생들이 도덕과 윤리에 완전히 눈 닫고 있는 건 아니구나. 승자와 패자를 분명히 하는 살벌한 질서에 엄청난 중압감을 받고 있지만, 일말의 가능성은 숨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곤 한다. 사회가 공정질서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학생들의 긍정적인 면도 점차 발현될 것이라고 본다."
"약자 어려움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젊음 됐으면"- 20대들에게 필요한 건 질책인가, 격려인가. "둘 다 필요하지 않을까. 위조식권 만들고, 승자가 되기 위해 비리를 당연시 여기는 모습을 보일 때는 당연히 따끔하게 지적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학생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가치관에 젊은이들이 찌들어가는 데 대한 반성 말이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보다 공정한 사회를 물려주도록 노력해야 하고, 젊은이들이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격려함과 더불어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은 이들이 생각하고 여유부릴 공간이 너무 없다."
- 마지막으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항상 당당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되 약자의 어려움에 대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젊은이들이 됐으면 좋겠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려면 공정한 경쟁과 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 배려가 없는 사회는 인간이 사는 사회가 아니다. 젊은이들이라면 사회적인 가치가 훼손되는데 대해 분노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힘과 돈 앞에서 불의와 타협하는 굴욕을 받아들이지 말고, 힘없는 약자에 대해 관용을 나누는 일에 주저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회의 책임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결국 나의 책임이라는 걸 인식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 됐으면 좋겠다. 길거리에서 폐휴지 줍는 할머니들의 고충을 볼 때 함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마음, 젊은이들이 이런 온기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용산 철거민들의 삶, 평택 노동자들의 고충이 어땠을까, 이런 고민과 관심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젊은이들,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식인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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