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살아온 이 동네에서 눈 감고 싶다"

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노인들…"개발 부추기는 정책이 문제"

등록 2009.07.29 09:11수정 2009.07.2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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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평산 신씨 집성촌으로, 13대째 여기서 살고 있다. 우리 집안은 얼추 500년 정도 이곳 부평구 삼산동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재개발로 인해서 쫓겨날 상황이다."

7월 23일, 부평구 삼산동 소재 재개발정비사업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사무실에 30여명의 노인들이 모여 앉아서 추진위원장더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정비업체 관계자와 추진위 임원들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모인 노인들은 벌써 나흘째 이곳을 방문해 재개발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면서 시위 아닌 시위를 하고 있다. 시위꾼(?)들의 평균 나이는 60세를 훌쩍 뛰어 넘었다. 대부분 60대 후반의 노인들이다.

신현진(74)씨 집안은 이곳에서 13대째 살고 있다. 이곳은 평산 신씨 집성촌으로, 이곳에서 뿌리내리고 산 지 얼추 500년은 됐다고 한다. 지금도 대략 20호 정도의 평산 신씨 집안 식구들이 이곳에 살고 있단다. 13대, 대략 셈해도 500년이란 계산이 나온다.

부평구는 과거 계양․서구와 함께 인천 북부권의 주요한 농경지가 있던 곳이다. 현재 57만명이 거주하는 거대 자치구로 농경지를 찾아볼 순 없지만, 옛날엔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농경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 골목길. 재개발 예정 지역인 이곳은 소방도로도 비교적 잘 정비돼 있으며, 인근에는 왕복 8차선 도로도 있는 등 주거환경이 나쁘지 않다.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 골목길. 재개발 예정 지역인 이곳은 소방도로도 비교적 잘 정비돼 있으며, 인근에는 왕복 8차선 도로도 있는 등 주거환경이 나쁘지 않다.한만송


"누구를 위한 재개발이야, 난 이대로가 좋아"


인천시는 2006년 '2010 인천시 도시ㆍ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당시 고시에는 총 71개의 주택재개발 정비예정구역이 지정됐다. 그 후 인천시는 2008년 12월과 2009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추가 고시를 통해 정비예정구역을 212곳으로 확장했다.


이밖에도 인천에는 가정오거리ㆍ숭의운동장ㆍ가좌IC주변ㆍ도화구역ㆍ제물포역세권ㆍ인천역 주변ㆍ동인천역주변 등에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도시재생사업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개최 이전에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신씨가 사는 부평구 삼산1구역(삼산동 221-6번지 일원 3만 5400㎡)은 2006년 '2010 인천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이 고시될 때까지만 해도 '사업유형 유보지역'으로 분류됐다.


그 후 인천시는 올해 2월 25일 인천도시계획위원회 회의를 통해 해당 지역을 재개발정비예정구역으로 변경했다. 토지 등 소유자 중 68%가 재개발 사업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일에는 해당 지역에 대한 '정비계획 및 구역지정'이 확정됐다.

이로 인해 이곳에 살고 있는 노인 50여명은 투사로 변신하고 있다. 이들은 매일 같이 재개발추진위 사무실을 방문해 자신들의 토지 등을 재개발 정비구역에서 빼든가, 재개발 사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씨는 "재개발 사업이라면 도시가 낙후된 지역에서 추진하는 것인데, 우리 동네는 소방도로도 있고 인근에는 왕복 8차선 도로도 있는 등 주거환경이 나쁘지 않다"며, "이런 곳까지 재개발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씨의 마지막 소원은 자신이 태어나서 살아온 지금의 집에서 계속 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는 "급성장해서 아파트와 공장을 제외하고 문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 부평에서 500년째 집성촌으로 살고 있는 이런 곳을 보존하지 않고서 어떻게 문화부평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발 부추기는 한나라당 정책이 문제"
   
 재개발을 반대하는 노인들.
재개발을 반대하는 노인들.한만송

인천에서 노인들이 대거 쫓겨나고 있다. 대부분 재개발구역이나 주거환경사업지구 안에서 살고 있는 노인들이다. 이들 노인들 대부분은 노동력과 경제력을 거의 상실했다. 주된 수입원은 전․월세를 통한 임대수입과 연금, 자녀들이 쥐어주는 용돈이 전부인 셈이다.

그나마 자신의 집을 갖고 있는 이런 노인들조차도 재개발 인해 쫓겨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대부분의 재개발 지역에서 3.3㎡당 600만원 미만의 감정평가액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입주해야하는 아파트의 3.3㎡당 분양가격은 대략 1000만~1200만원 정도에 달한다.

최근 착공한 부평 A재개발 구역의 경우 3.3㎡당 보상가격은 600만원 미만이지만, 분양가격은 1100만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마저도 인천에서는 싼 가격으로 분양하는 경우다.

또한 서울지하철7호선 연장구간에 인접해있는 부평5 재개발 구역의 경우도 감정평가액 기준으로 보상가격은 3.3㎡당 600만원 정도이지만, 분양가격은 대략 1000만원이다.

여기에 등기ㆍ이사 비용 등을 추가해야한다. 결국 경제력이 상실된 노인층의 경우 재개발로 인해 재산가치가 증식되지만, 대부분이 재개발 지역에서 살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런 이유로 재개발 사업을 반대하는 노인층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인천지역에서 재개발 반대운동을 하는 중심축은 노인들이다. 용산참사 과정에서 아들과 함께 호프집을 운영하던 이상림(70)씨가,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도심 게릴라'가 돼 화염병을 던진 것도 재개발이 노인들의 생존권을 일방적으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삼산동 주민 모종근(72)씨는 "현재 재개발은 아파트만 짓는데, 미분양 사태가 되면 누가 책임 지냐? 결국 손해도 주민들이 떠안는다"면서, "35년 동안 농사짓고 직장생활 해서 어렵게 장만한 집마저 빼앗기면 난 어떻게 하냐"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재개발정비구역이 아닌 주거환경사업지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천 남구 용현동 용마루 통합 주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인천지역에서 개최된 집회에 참석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60대 후반의 노인들이다. 비현실적인 주거환경개선사업 추진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인천 남구 용현동 용마루 통합 주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인천지역에서 개최된 집회에 참석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60대 후반의 노인들이다. 비현실적인 주거환경개선사업 추진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한만송
인천 남동구 간석지역에서 대책위를 꾸려 활동하고 있는 우명숙씨는 "개발을 부추기는 정부와 인천시의 주거정책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힘없는 도시서민들은 갈 곳이 없다"면서, "특히나 용마루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에는 60대 이상이 70%를 차지할 정도"라고 말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의 보상가액은 재개발지역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노인들이 더욱 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최근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인천 향촌지구의 경우 3.3㎡당 보상가액은 170만원에서 180만원 사이였다. 또한 간석지구의 경우는 이보다 조금 형편이 좋지만, 280만원에서 320만원에 불과하다.

주거환경은 열악하지만 자신의 집에서 저축한 돈과 임대수입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들은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아파트를 분양받더라도 재입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우씨는 "임대소득과 자녀들의 용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이 젊은 사람처럼 맞벌이라도 해서 은행담보를 통해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부분 입주를 포기하든가 자녀들에게 재산권을 물려준다"고 말했다.

서민 없는 재개발 방식, 도시서민들의 보금자리 빼앗아 

한국의 재개발 정책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신속하게 노후ㆍ불량주택을 헐어내고 고층 아파트를 짓는 정책으로 추진돼 현재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당시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올림픽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면서 서울의 '달동네'촌을 싹 밀어내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었다.

인천시도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개최에 대비해 구도심 재생사업을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인천시는 재개발 부서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줘가면서 신속한 재개발 사업 추진을 주문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신축 빌라 등도 헐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나 모든 재개발 사업을 통해 보급되는 주택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다.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 어떤 문화 상품이 존재할까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현재의 재개발 방식은 도시서민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고 있다. 젊은 층과 도시 저소득층이 사는 소형주택과 전월세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의 경우도 재개발로 인해 전용면적 60㎡이하 주택비율이 63%에서 30%로 줄었고, 재개발 전에 83%를 차지했던 전세가 4000만원 이하 주택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인천의 경우도 절대 다수의 구도심이 재개발 정비예정구역으로 고시됨에 따라 빌라 가격의 급상승과 전월세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시 재원으로 재개발구역 내 임대주택 등과 같이 공공성을 띤 시설의 경우 매입해 공급하고 있지만, 인천시는 이런 대책도 없다. 더욱이 인천시의 경우 도시서민들의 향후 주거문화 등에 대한 연구 등을 찾아볼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재개발 #삼산1구역 #용마루 #인천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도시재생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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