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 진보당, 민주주의, 그리고 대한민국

[서평]<조봉암과 진보당: 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등록 2009.07.31 10:21수정 2009.07.3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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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전체를 통해 말하겠지만, 그 핵심은 민주주의, 사회주의, 평화통일이다."

a <조봉암과 진보당-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정태영 지음) 겉그림. 후마니타스 펴냄. 2006.

<조봉암과 진보당-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정태영 지음) 겉그림. 후마니타스 펴냄. 2006. ⓒ 후마니타스

이제부터 말하겠지만, 우리는 오늘(7.31) '사법살인' 50년이 된 시점에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는 한 사람을 책으로 다시 만나본다. 이 책 지은이는 그를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로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인물로 평가한다. 그는 바로 1959년 7월 31일 '사법살인'으로 생을 마감한 죽산 조봉암이다.


민주주의 후퇴, 인권 후퇴, 개발지상주의 등 사람이 살아가야 할 가치와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뒤틀어버리는 온갖 일들을 보며 우리는 늘 묻는다. 무엇을 되찾고 또 무엇을 되살려내야 할지를. 그 와중에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 혹은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 역사를 되밟아가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서 누군가는 죽산 조봉암을 새삼 뜨겁게 재조명하고자 한다.

1945년 해방을 맞은 뒤 온전한 독립을 바라던 열망이 얻은 것은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이었다. 그리고 5년 뒤인 1950년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근 3년 여간 지속된 전쟁이 끝난 뒤 나라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고 정치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서 전쟁 이전보다 더더욱 미국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남북 분단은 더욱 굳어졌고 이념 대립 역시 그러했다. 피폐한 경제는 미국 원조 없이 유지되기 힘들었고 다방면에 걸쳐 형성된 미국 영향은 지금껏 위세를 떨치고 있다. 정치에서, 이러한 상황은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주장하고 추진하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해 왔다.

사회민주주의라 하든 민주사회주의라 하든 아니면 그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사회'와 '민주주의'는 여전히 참 만나기 힘든 말들이다. '자본'과 '민주주의'를 별 의심 없이 연결시킬망정 그 사이에 여전히 '사회'는 끼어들 공간을 찾기가 여전히 힘들다. 그리고 이렇게 오로지 '자본'만이 '민주주의'와 만나기 쉬운 조건이 여전한 상황에서 우리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조화시킬 '다른'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것조차 힘든 상황을 순간순간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여전히 미국 영향과 같은 외부 요인에서만 비롯되는 것일까.

죽산 조봉암, 그는 무엇을 바랐고 무엇을 남겼나

<조봉암과 진보당: 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후마니타스 펴냄, 2006)은 "조봉암과 진보당의 역사적 실험과 좌절에 대한 기록"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조봉암 평전이라기 보다는 죽산 조봉암이 남긴 가치에 대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살펴본 이유는 그 가치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며 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느냐를 알아보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은 '한국 진보주의 정당의 성격과 한계'(5부)를 묻고 따져본다.


이 책은 1991년 한길사에서 <조봉암과 진보당>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바 있다 한다. 그리고 내용을 보완하여 후마니타스에서 2006년에 다시 출간한 것이다. 첫 출간 시점부터 따지자면 출간 뒤 20여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런 지금 우리는 '진보'가 우리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민주주의를 마음껏 논의하고 마음껏 실천해왔다고 말할 수 있나.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면 아니 그렇게 말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다시 죽산 조봉암을 바라보는 것인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운동은 정권의 탄압이나 냉전과 같이 외적 요인들에 의해 좌절되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사실의 모든 것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더 중요한 측면은 진보운동이 현실에 기초를 튼튼히 둔 이념적 좌표를 세우는 데 실패하고, 조직에서 건전한 작풍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당내 정파들의 조급한 헤게모니 투쟁 때문에 분열하고, 결과적으로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었다는 사실이다. 진보당이 그러했고 4·19혁명 직후 혁신 세력이 그러했다. 조직의 핵을 지도 세력과 격리시키고 또 대중과 격리시키는 작업이 거듭되면서 극소수 세력을 제외하고는 흩어지고 또 흩어졌다. 흩어질 때마다 결집력은 더 취약해졌다. 진보당이 물리적인 힘으로 해체되고 그 핵인 조봉암이 법의 이름으로 처형되었어도 저항 하나 없었던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조봉암과 진보당>, 261-262)


솔직히 죽산 조봉암을 잘 모른다. 그가 남긴 가치에 대해서는 더더욱 잘 모른다. 다만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에 적합한' 정치 체제를 만들고자 했던 것에 대해 함께 주목해볼 뿐이다.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가 '사람'을 잃어버린 채 혼자 질주하는 거친 '기계음'만 내고 있기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자세히 말해 한국 민주주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새삼 다시 물어봐야 한다. 말하자면, 죽산 조봉암을 다시 살펴보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점에 있다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책에서 '부록'은 적잖은 분량을 차지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글로나마 조봉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편 '진보당 강령'과 '진보당 정책'은 조봉암과 진보당을 다룬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죽산 조봉암이 남긴 인색 역정과 진보당이 남긴 가치를 찾아 길고 긴 역사 여정을 걸은 책 <조봉암과 진보당>. 적어도 내겐 익숙하지 않은 말들이 많은 이 책은 그래서 좀 읽기 힘들다. 그러나, 그건 그만큼 그동안 죽산 조봉암과 진보당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 많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조봉암 그가 '나의 정치 백서'를 통해 남긴 말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곱씹어본다. 그가 이 땅에서 무엇을 바랐는지를 생각해보면서. 왜 그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어디선가 다시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내가 걸어갈 길은 진보당의 걸어갈 길과 꼭 같습니다. 그리고 진보당의 걸어갈 길은 뚜렷합니다. 공산 독재도 자본주의 독재도 다 같이 거부하고 인류의 새 이상인 진보주의의 진리를 파악(把握)하고 만인이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살 수 있는 복지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다른 보수정당과 다른 점은 무엇이냐고? 오늘 우리나라의 보수당들은 순전히 자본가 본위의 정당이고 우리 진보당은 농민 노동자와 모든 근로 대중의 정당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같은 책, '부록'에서 '나의 정치 백서', 314)

덧붙이는 글 | <조봉암과 진보당-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정태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2006.


덧붙이는 글 <조봉암과 진보당-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정태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2006.

조봉암과 진보당 - 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정태영 지음,
후마니타스, 2006


#조봉암과 진보당 #조봉암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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