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안홍기
쿠데타로 집권하기는 했으나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겐 믿을 만한 세력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엄민영이란 사람이 TK인사 결집을 권했다고 한다. 이상우가 쓴 <제3공화국>에 나오는 설명이다.
박정희가 고향 사람들을 발탁하기 시작하면서 영남 남인의 후예들을 끌어 들였다. 실로 오랜만에 남인이 TK세력이란 이름으로 부활한 것이다. 오랫동안 권력에서 소외된 탓인지 그들은 집요하게 권력을 탐했다. 지역주의를 기획·가동했고, 그것과 반공주의를 기득권 수호의 핵심 기제로 동원·정착시켰다. 그들은 노태우 정권까지 오랫동안 집권했다.
1998년 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분명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다른 한편, 과거 조선시대 노론의 장기집권이 결국 망국으로 이어졌듯이 그것은 장기간 권력을 누린 TK 세력이 급기야 IMF 국난을 초래한 데에 따른 응징이었다.
사실 정권교체는 1971년 7대 대선에서 이뤄져야 했으나, 부정선거로 무산된 바 있었다. 그 후 유신이 있었고, 12·12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30년 가까이 무력에 의지해 어거지로 기득권을 유지했던 것이다.
1971년 대선에서 승리를 강취당한 사람이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다. 그가 빼앗긴 승리를 되찾은 것은 1997년 대선에서였다. 39만여 표 차이로 이기는 데 26년이 걸렸다. 아마도 세계 역사상 가장 긴 대권 도전사의 기록일 것이다. 26년 동안 그가 겪은 고통과 시련은 엄청난 것이었다. 죽을 고비를 넘겼고, 빨갱이로 몰렸다. 망국병이라는 지역주의의 화신으로 매도당했다. 바로 1971년 그로부터 승리를 강탈해간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어쨌든 DJ는 집권 후 부도위기에 직면한 나라를 되살렸다. 남북화해로 평화를 정착시켰다. 민주화 시대를 활짝 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용하는 등 동서화합을 추진했다. 언론과 야당의 거듭된 공세로 몰리던 와중인 2002년 2월, <월간중앙>과 폴앤폴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예상대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박정희가 DJ를 압도했다.
하지만 3개 분야에서만큼은 DJ가 단연 1등이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평가에서 DJ와 박정희는 각각 64.4%와 6.5%를 얻었다. DJ와 박정희는 국민의견을 존중한 대통령이란 평가 항목에서 각각 37.2%와 11.9%를 얻었다. 민주주의에 기여한 대통령에 대한 질문에서는 각각 36.5%와 13.5%를 얻었다. 조사결과를 보면, 그가 지향한 가치에 대한 많은 국민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하자면, 박정희가 보릿고개를 없앴다면 DJ는 눈물고개를 없앴다.
누구든 공이 있으면 과도 있기 마련이다. DJ에게도 많은 공이 있고, 숱한 과가 있다. 그가 잘한 것 중에 어쨌든 DJ 때문에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왜곡일까? 견강부회일 수도 있다. 대통령으로서 DJ는 임기 말에 극심한 위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반론도 가능하다. DJ가 정권의 위기 속에 당에 재량권을 넘김으로써 국민경선제라는 반전 카드가 생겨날 수 있도록 해줬다는 것이다.
'호남의 맹주'에서 '국민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