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에게는 한국교회가 '경찰 곤봉'보다 낫다?

촛불·노 전 대통령 서거 등 MB의 수세국면 때마다 자발적 지지

등록 2009.08.12 17:35수정 2009.08.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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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쌍용차 사태 평화적 해결 회견 돌발 연기요청으로 물의

 

지난 5일을 전후해 쌍용차사태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일촉즉발 상황에 처하자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은 자신이 속해 있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공동대표 의장 엄신형, 이하 종지협)에 쌍용차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자고 요청했다. 지관스님의 요청에 따라 7대 종교 수장으로 구성된 종지협은 5일 오전 서울 소공동에 있는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긴급 모임을 열고 이날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쌍용자동차 화합과 상생을 위한 긴급호소문'을 발표하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정부와 노사 모두 노력할 것을 호소하기로 했다.

 

이날 종지협 긴급모임에는 엄신형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지관스님(조계종 총무원장·공동대표), 최근덕 성균관 관장, 김동환 천도교 교령,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 5명이 참석했으며, 지방일정 중인 김희중 천주교 주교회의 대주교와 휴가 중인 이성택 원불교 교정원장은 불참했다.

 

이날 종교지도자들이 발표하는 호소문에는 ▲ 회사 청산과 손해배상 청구라는 극단적인 해결책이 아닌 노동자의 생존방안을 고려할 것 ▲ 회사를 살릴 수 있도록 노동자들도 한 발 양보할 것 ▲정부는 공권력 투입을 중지하고 노사협상 지원 및 쌍용차 회생 지원책을 마련할 것 ▲ 국민들은 쌍용차 문제가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을 위해 나서줄 것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불과 50여 분을 앞두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기자회견 연기를 통보했다. 불교계 인터넷언론인 <불교포커스>는 종지협 사무국을 맡고 있는 한기총이 "쌍용자동차 문제뿐만 아니라 국민화합과 국가발전 등 나라를 위한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호소문을 발표하기 위해 종교지도자들의 합의 하에 기자회견을 연기했으며, 기자회견 일정은 아직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은 경찰이 쌍용자동차 노조원 강제해산에 나서 도장1공장을 완전 장악하고, 이 과정에서 노조원 3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제2의 용산 참사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의 갑작스런 연기는 정부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불교포커스>는 이날 오전에 종지협 모임이 끝난 후 김대기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오전 10시 경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예방했다고 밝혔다. 예정도 없이 방문한 김 차관은 "쌍용자동차 사태가 빠른 시일 내에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며 이날 오후 예정된 종지협의 기자회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지관스님은 "쌍용차 사태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이 함께 우려했으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정부와 노사,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김 차관 방문 후에도 조계종 총무원은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그러나 회견 직전 종지협 의장인 엄신형 목사가 지관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회견을 연기한다고 알렸다.

 

엄 목사의 일방적인 통고에 조계종 총무원 내부에서는 격앙되었으며 별도로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계 내부에서는 그동안 친MB 행보를 보인 한기총이 호소문 발표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발표를 꺼렸거나 좀 더 친정부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종지협의 호소문 발표연기 후 쌍용차사태는 대타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는 했지만 정부가 의도한 대로 노조의 패배로 끝났고 경찰의 폭력 진압은 무시된 채 한상균 쌍용차 노조지부장 등 모두 64명이 구속당했다. 이는 2006년 평택 대추리 사건 때(영장 신청 134명·구속자 20명)의 3배가 넘고 1997년 6월 한총련 출범식 때 1000여 명을 연행, 195명을 구속기소한 이후 최대 구속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 쌍용차 사태과정에서 불교계와 천주교에서는 총무원장인 지관스님과 정진석 추기경이 직접 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정부의 강경진압을 반대하는 등 약자의 편에 서려고 노력한 반면 종지협과 한기총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엄신형 회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종지협 호소문에 정권의 견해를 반영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엄신형 회장의 이 같은 태도는 친MB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종교지도자간에 합의한 것을 불과 1시간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은 스스로 품위를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기총은 이번 사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촛불시위가 한창 진행되던 2008년 8월 5일 한기총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신도와 시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라사랑 한국교회 특별기도회'를 열고 "계속되고 있는 촛불시위로 국론분열과 이념대결이 심화되고 있다"며 "국민화합과 국론통일을 위해 촛불시위의 즉각 중단을 호소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이 줄을 잇는 상황에서도  조용기·김준곤 등 한기총 원로회와 한기총은 각각 6월 9일과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추모 분위기에 편승해 나라를 흔들고 혼란을 부추기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법질서를 수호하고 정치권은 국회로 돌아가 적체된 법안을 즉시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MB에게 한국교회는 검찰·경찰보다 고마운 존재

 

불교계와 천주교가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상황에서 한기총의 응원과 지지는 경찰 곤봉과 군화발로 정권을 유지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겐 가뭄 속에 단비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자발적으로 지지를 보내기 때문에 경찰력보다는 대외적으로 괜찮아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1960~1980년대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저항해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진행될 때 보수기독교가 보여준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1980년대 중남미에서도 벌어졌다. 당시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군사정권은 암살과 고문 등 잔인한 방법으로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했는데 이때 수많은 가톨릭 사제들과 운동가들이 희생됐다. 특히 엘살바도르에서는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군부가 보낸 암살자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가톨릭 사제들이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시기 미국에서 들어온 오순절 교회와 복음주의 세력은 반대로 정권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제 복음주의자들의 자발적 지지에 고무된 중남미의 군사정권은 이들을 '무장군대나 경찰보다 훨씬 낫다'고 평가하고 음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 당시 복음주의 세력의 준동은 1979년 반정부 무장 세력인 산디니스타가 43년 강압통치를 펼쳐온 친미독재 소모사정권을 전복하자 중남미 혁명 확산에 위기를 느낀 미국 CIA의 조종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전통적으로 개신교 보수 세력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매우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 과정에서 정권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고 성장을 거듭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은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피땀을 바쳐 얻은 민주화의 성과를 이명박 정권이 유린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한국교회가 과거와 똑같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6월 12일 한기총 등이 지식인들과 시민사회의 시국선언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법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는 친정부 성명을 내자 진보와 개혁진영의 25개 기독단체 및 교회대표자들은 "대한민국과 이명박 정부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며 "각 시국선언에 적절히 담겨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를 향한 열정과 의지에 대한 모독이며 언어폭력"이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들은 "한기총과 자칭 한국교회 원로회는 정치권력에 야합해 공의를 잃어버렸다"며,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실정과 불의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양지만을 찾아 권력과 야합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앞으로도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 기독교세력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태생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100호 특집호(8월 15일자)에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검찰, 경찰과 함께 가장 신뢰도가 낮은 조직으로 평가되었다는 점에서 앞날이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국가기관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검찰과 경찰은 각각 19.1%와 20.1%가 신뢰한다는 매우 저조한 평가를 받았고 한국교회도 천주교(66.6%), 불교(59.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6.9%의 신뢰를 얻는 데 그쳤다. 난형난제끼리 이명박 정권을 거들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검찰과 경찰은 정권교체 때마다 안면을 바꾸지만 한국교회는 정권이 바뀌어도 이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 대통령에게 한국교회는 군대와 검찰, 경찰보다 더 나은 조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대통령이 종교편향을 무릅쓰고 소망교회 출신 등 기독교인들을 중용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는 둘 모두에게 불행을 자초하는 길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2009.08.12 17:35 ⓒ 2009 OhmyNews
#한국교회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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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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