才(재), 일제의 민속문화 말살

한자로 보는 세계(15)

등록 2009.08.14 14:28수정 2009.08.1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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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해에 사는 귀신을 쫓아달라는 기도문이 쓰인 신주단지

동해에 사는 귀신을 쫓아달라는 기도문이 쓰인 신주단지 ⓒ 새사연


일제시대 들어 우리나라의 민속신앙은 극도로 毁損(훼손)당한다. 조선시대 성리학, 개화기의 기독교를 통해서 탄압 혹은 排斥(배척)당했던 전통신앙은 일제가 '개화'라는 명목으로 타파의 대상이 되었다. 家神(가신)과 洞神(동신)을 중심으로 한 민속신앙과 이에 따른 공동체적 민속놀이가 금지되었다. 또 <巫女取締法規(무녀취체법규)>를 통하여 무속을 억누르고 일본의 神道(신도)를 들여와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그 결과 성주신·조왕신 등 가신을 불사르고 당집과 당목을 훼손하여 동제를 중단시켰다. 뿐만 아니라 의복·세시풍속·가옥·머리 양식 등도 크게 변화되었다. 또 해방 이후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새마을운동으로 무속과 무녀로 대변되는 샤머니즘적 전통신앙은 한 번 더 대대적인 탄압을 받아 그 뿌리조차 흔들릴 정도였다. 다행이 최근 들어 한국 신화의 부흥과 우리 것에 대한 관심으로 민속 문화가 미약하나마 존립할 수 있게 되었다.


시조단지는 "우리나라 민속에서 쌀을 넣어 안방 선반 위에 모시던 단지인데 햇곡식이 나오면 해마다 바꿔 담는다. 말하자면 햇곡식 단지를 잘 모셔놓고 조상처럼 여기는 것이다 곡물신 숭배와 조상신 숭배가 결합된 형태가 시조단지가 아닐까 생각된다"-<우리신화의 수수께끼. 조현설. 한겨레출판>에서.

시조단지는 신주단지·새존단지·부릿단지·부릿독·부릿섬·시좃단지·제석단지·할매단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다. 우리 속담에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애지중지 소중히 대우한다는 의미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조상신·농경신을 집안에 소중히 모셔온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민속신앙을 미신이라 하여 일제가 이를 말살하였던 것이다. 이는 조상과 자연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온 우리 민족의 전통을 말살시킨 것에 다름 아니다.

口의 옛 자형은 ㅂ형태로 신주단지이다. 우리 민족은 고래로 각 가정에 조상신을 모신 위패를 모셨으며 일상적인 기도와 예배의 대상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곡식을 담은 단지를 집안 선반에 모셔 이를 대체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신주단지는 농경신과 조상신을 모신 단지로 일제가 이를 말살하기까지 우리의 보편적인 민속신앙이었다.

a  才(재) 在(재) 士(사) 存(존)

才(재) 在(재) 士(사) 存(존) ⓒ 새사연


才(재)의 갑골

才(재주 재)의 갑골을 보면 十字(십자)형의 나무에 기도문이 새긴 신주단지인 ㅂ를 얹은 형태이다. 이로부터 시공간적으로 聖化(성화)되어 신성한 장소가 된다. 삼한시대의 소도, 그리스·로마의  아실리(Asillie) 또는 아실럼(Asylum)과 같은 곳이며 글자 자체는 소도에 있는 鈴鼓(영고)를 단 솟대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才는 신성한 장소로서 '있다, 存在(존재)'가 본래 뜻이며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才能(재능)·才質(재질), 사물이 본래 가진 材質(재질)을 의미하게 되었다. 재능(gift)의 측면에서만 보면, 성소에서 신주단지를 얹혀 기원한 것에 대한 신의 선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三才(삼재), 鬼才(귀재)


在(재)의 금문, 士(사)의 금문

才가 '있다'의 의미에서 '재능'의 의미가 되자 才에 자루를 제외한 도끼 모양인 士(선비 사. 본래 무사 계급임)를 덧붙여 在(있을 재)를 만들었다. 士도 역시 신분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기물로서 在는 본래 점유와 지배를 나타낸 자였다. 지배하에 '있다'가 본래 의미다. 在位(재위)


存(존)의 소전

才는 솟대와 같이 성스러운 곳을 알리는 標木(표목)으로 아이(子)가 태어나면 이곳에서 출생의례를 행한 후에야 비로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生存(생존)을 보장받는다. 여기에서 '있다'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存과 在는 모두 '있다'라는 뜻이지만 存은 시간적이고 생명체에 대하여, 在는 공간적이며 사물에 대한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인디언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신성한 자연에게 그 출생을 알려 자연과 조화롭게 살도록 하는 것이 연상된다. 保存(보존)

a  材(재) 財(재) 貝(패) 災(재)

材(재) 財(재) 貝(패) 災(재) ⓒ 새사연


材(재)의 소전

신성한 공간으로 '있다'는 才에 나무(木)를 더한 材(재)는 나무에게 본래 材質(재질)을 의미하였겠지만 뜻을 확장하여 모든 사물이나 생명체의 재질이나 재능을 의미한다. 素材(소재)

財(재)의 소전, 貝(패)의 갑골

가지고 '있는(才)' 것 중 화폐(貝)의 형태를 財(재물 재)라 한다. 貝는 여자 성기를 닮아 아이를 쉽게 낳을 수 있게 도와주는 주술도구로 쓰이기도 하고, 또 먼 바닷가에서 나는 귀한 것이므로 고대 중국에서 화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아직도 태평양 섬에 사는 원시부족 가운데 조개를 화폐로 쓰는 부족이 있다. 才가 신성한 의례를 행하는 곳이므로 財(재)도 본래 신성한 일을 위해 신이 주신 재화를 의미하였을 것이나 物神(물신) 숭배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치부수단에 불과하다. 蓄財(축재)

災(재)의 갑골, 災(재)의 소전

災(재난 재)의 현재 자형은 川(내 천)과 불(火)의 조합으로 홍수와 화재에 의한 재난을 의미한다. 하지만 갑골을 보면, 신성한 지역에 화재가 일어났음을 나타내고 있다. 성서를 예로 들자면, 하나님이 다스리던 신성한 땅이 물욕과 쾌락에 빠진 인간으로 들끓자 하나님이 물(노아의 방주 이야기)과 불(소돔과 고모라)로 심판을 내린 사건이 연상된다. 고대 통치자들은 재앙을 하늘이 인간에게 내리는 경고로 생각하여 근신하거나 죄인을 사면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심지어 축출되거나 살해당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 사회가 災(재)를 당하지 않을 정도로 건전한 사회인가 심각하게 고민할 때이기도 하다.

a  (다치게 재) 戈(과) 戴(대) 異(이)

(다치게 재) 戈(과) 戴(대) 異(이) ⓒ 새사연


(다치게 재)의 갑골, 戈(과)의 금문

(다치게 재)는 갑골에서 보듯이 才(재)와 戈(창 과)의 모습이다. 창 날 부분에 才를 붙인 모습이다. 戈는 날이 옆에 붙은 창을 세워놓은 모습으로 사악한 기운을 떨어내는 주술에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다치게 재)는 물건을 처음 만들거나 사용할 때 액막이 의례로 사용한다. 차를 처음 사서 사고 없이 운행하게 해달라고 지내는 고사 같은데 쓰였다. 載(실을 재. +車), 裁(마를 재. +衣), 栽(심을 재. +木), 哉(비롯할 재·어조사 재. +)이다. 앞의 세자는 각각 수레에 처음 물건을 실을 때, 옷을 만들려고 베를 자를 때, 나무를 처음 심을 때 액막이를 하는 의례이다. 뒤의 哉는 창(戈)을 처음 만들 때의 액막이 의례이다. 搭載(탑재), 裁斷(재단), 栽培(재배), 嗚呼痛哉(오호통재)

戴(대)의 소전, 異(이)의 소전

異(다를 이)는 귀신, 혹은 귀신의 가면을 쓴 샤먼이 양팔을 펼치고 있는 모습으로 奇異(기이)한 모습으로 인해 '다르다'는 뜻을 갖는다. 이 샤먼이 의례를 행하기 위해 戈를 이고 있는 모습이 戴(일 대)이다. 戴冠式(대관식)

서울을 홍보하는 선전 문구 중에 Seoul, Soul of Asia가 있다. 서울이 아시아의 영혼이라 하는데 기가 막힌다. 오히려 서울은 영혼이 없는 대표적인 도시이다. 성장과 개발, 탐욕과 이기심이 넘쳐나는 도시이다. 돈 없고 백 없는 가난한 영혼들이 서울에 살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런데 이 영혼 없는 도시를 만드는 주범 중 하나가 식민지 시대 일본 제국주의라고 본다. 조상과 자연을 섬기며 공동체적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 군국주의, 천민자본주의, 천황 숭배로 한국인의 영혼을 타락시킨 일본 제국주의에게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친일파, 정신대, 노무자, 원폭피해자 등 일제 식민지 시대의 문제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여기에 우리의 전통 신앙, 민속, 공동체 정신과 의례 등도 꼭 회복해야 할 과제이다.

덧붙이는 글 |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현재 白川(시라카와) 한자교육원 대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현재 白川(시라카와) 한자교육원 대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문화훼손 #신주단지 #才(재) #성장과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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