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일째 길에서 사는 '부부 교수'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

등록 2009.08.16 15:08수정 2009.08.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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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9호선 전철 국회의사당역. 농성장이 어딜까? 전화를 해야 하나? 건너편을 보니 국민은행이 보였고, 그 앞에 초라한 텐트가 눈에 띄었다.

길을 건너갔다. 천막 앞, 길에 세워 놓은 팻말에 "국회 앞 천막농성 700일째…"라고 써 있다. 햇수로 3년. 저 천막에서 이런 더위를 두 번, 칼날 같은 여의도 강바람 추위를 두 번이나 겪으면서 부부 교수가 농성을 하고 있다. 그 까닭은, 시간 강사라고 일컫는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교원 지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달라는 거였다. 텐트 안을 보니 김동애 선생이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텐트 안에서 후끈한 열기가 얼굴로 다가온다. 김동애 선생은 희끗희끗한 머리에 온화한 얼굴이었다. 조금 뒤에 온 김영곤 선생과 셋이 길가 나무 그늘 아래서 마주 앉았다. 바로 옆에는 이 농성장 때문인지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오늘이 천막농성을 한 지 700일째 되는 날이에요."

두 분이 오랫동안 농성을 해서 그런지 건강이 안 좋아 보였다. 부인 김동애 선생은 한성대 '대우교수'였고 남편 김영곤 선생은 현재 고려대 '시간 강사'다.

현재 한국의 대학 전임교수는 6만여 명이다. 그런데 그 두 배가 넘는 13만5천여 명의 비정규 대학교수가 있다. 그 가운데 7만여 명은 연평균 990만원 봉급을 받으며 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정규직 교수와 임금 차이는 무려 10배. 연구실, 휴게실도 없고 대학교육에 참여할 권리도 없다. 계약서도 없는 비정규 대학 강사들, 강의 요청 연락이 없으면 자동으로 해고통보가 된다. 근로기준법도 필요 없고, 4대보험을 든 곳은 극히 드물다. 대학에서 전임 교수 외에 시간 강사니, 외래교수니, 연구교수니 하는 '비정규직 교수'들은 교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런 모든 차별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 교수 이야기는 잠깐 뒤로 미루고 이 두 분의 삶을 잠깐 돌아본다. 이분들의 역사는 곧 현대사다. 1947년과 1949년에 각각 태어난 김동애, 김영곤 선생은 박정희 독재 정권을 온몸으로 저항하면서 살았던 분들이다. 김동애 선생은 숙명여대, 김영곤 선생은 고려대를 다녔다. 나이는 김영곤 선생보다 두 살이 많지만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김동애 선생이 중국어를 배우려고 고려대를 드나들면서 학생운동을 하고 있던 김영곤 선생을 만났다. 그 무렵은 1970년대 살벌한 박정희 정권 때. 1969년에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맞선 반대 투쟁이 일어났고, 1970년에 전태일의 분신으로 1971년부터 대학가의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었다. 박정희는 위수령을 발동했다. 늘 집회에 앞장섰던 김영곤 선생은 그때 제적을 당한다. 그때 가장 많이 돌봐주던 이가 김동애 선생이었다.

김영곤 선생은 학교에서 제적·수배 중 구로동에 있는 대한광학에 취직한다. 이른바 위장취업이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뜬금없이 김낙중 민우지 사건(고대NH사건)을 만들어 학생들을 구속시켰다. 취직해서 일만 하고 있던 김영곤 선생도 이때 구속된다. 김영곤 선생은 1975년에 석방된 뒤 복학을 해 졸업을 한다. 그리고 1977년 다시 현장으로 되돌아간다.


"졸업하고 대우중공업에 들어갔죠."

"아니죠. 대우중공업이 아니라 뉴코아 건물 지하 기관실에 갔다가……."


부인 김동애 선생이 잔잔한 웃음을 보이면서 말해 준다. 남편의 삶을 더 잘 기억하는 듯하다. 김영곤 선생은 대우중공업노동조합 사무국장,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 참여해 안산, 안양, 수원에서 노동자신문을 만들고 수원노동상담소 소장을 지냈고,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의장으로서 안산 지역에서 노동자 신문을 만들기도 하고 1987년에는 노동자 대투쟁에 참여했다. 늘 경찰로부터 수배를 당하는 아슬아슬한 삶이었다.

"삼성전자 노조결성 추진과 연루되어 수배되면서 89년도에 서울로 올라왔지요. 김영삼 때 두 번 구속됐지요."

그 뒤 김영곤 선생은 1997년까지 노동운동협의회 활동을 하다가 그해 9월쯤 노동운동을 그만두게 된다. 노동운동을 그만두게 된 그 까닭이 뭘까? 김영곤 선생은 평생 노동운동을 하다가 왜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 지난날을 돌아보게 됐다. 선생은, 1997년 시점으로 노동조합이나 의회정당을 빼놓고는 운동가가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연관성을 찾아내는 글을 8년 동안 썼다. 그것이 2006년에 나온 <한국 노동사와 미래>이다. 그 책을 쓴 게 계기가 되어 김영곤 선생은 고려대 강사가 됐다. 그게 벌써 5년차다. 물론 박사나 석사 학위는 없다.

"아마, 사회과학 계통에 전공 가르치는 사람 가운데 학사 출신은 거의 없을 거예요."

부인 김동애 선생은 1999년부터 고등교육법 개정 운동을 하고 있었다. 박정희가 1977년 당시 젊은 교수들이 유신 반대를 주장해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교원 신분을 빼앗아 버리려고 만든 것이 이 고등교육법의 시초다. 그리고 전두환 때 졸업정원제를 하면서 비정규직 강사가 대량으로 늘어났고 뒤이어 노태우부터 노무현까지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자본가들이 '돈'이 덜 나가는 강사를 쓰다 보니 비정규직 교수가 더욱 늘어나게 됐다.

김동애 선생은 오랫동안 비정규직 강사 일을 해 오면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열악한 강사료는 둘째 치고 시간 강사 지위로는 도저히 아이들을 올바로 가르칠 수가 없었다. 연구실도 없고 연구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새 학기가 되면 강의해 달라는 연락이 안 올까 봐 입이 바짝 타 들어갈 정도였다. 그건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했다. 노동운동 때문에 13년 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남편 김영곤 선생을 지켜 주고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김동애 선생은 그렇게 버텼지만 강사 제도의 문제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벌써 8명이다. 김동애 선생은 2001년부터 노조와 함께 교과부와 교육부 앞,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근데 이 사람은 이 싸움의 중요성을 몰랐어요."
"몰랐어요. 강사가 된 뒤 알았어요."

김영곤 선생은 부인이 그렇게 고등교육법 개정 투쟁에 온 힘을 바치고 있는데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운동 쪽으로는 발길을 끊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동애 선생은 남편이 고려대 강사가 된 뒤 이제 도움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단다.

"저는 활동가는 아니지만 이 문제만큼은 한 발 한 발 왔어요. 어느 지점으로 가야 하는지 보이는데 동력이 따라 주지 않았어요. 근데 남편 도움 받으면 되겠다 싶었지요. 당신은 이제 현직 강사 아니냐고 했지요."

이제 김영곤 선생도 이 고등교육법 개정 투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그저 들려주는 강의로 무뇌아가 된 아이들에게 A학점을 주는 교육이 아니라 토론식 교육으로, 이 사회를 알게 하고 싶다. 그러려면 현재 시간강사들이 교원 지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현재 대학들이 비정규직보호법을 핑계로 2학기부터 시간제 강사를 잇따라 해고하고 있다. 영남대학교는 시간제 강사 100여 명에게 지난달 9일 '2학기부터 강의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보냈다. 성공회대는 지난달 1개 학과당 최소 1명씩의 시간강사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4학기(2년) 이상을 강의한 비정규직 강사가 대상이었다. 영어과에서는 강사 4명이 해고됐다. 고려대는 지난달 시간 강사 88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김영곤 선생은 고려대에서 다시 일인 시위를 시작했다. 왜 자신은 해고되지도 않았는데 나설까.

"당연히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죠. 강사들이 해고를 당해도 나서지 못해요. 그만큼 대학 사회가 잘못된 구조로 얽혀 있어요."

왜 그이들은 나서지 못하는 걸까? 김영곤, 김동애 선생. 왜 이런 분들만이 평생 길 위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지난 12일 비오는 날 고대 정문 앞에서, 고등교육법 개정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외롭게 서 있는 김영곤 선생과 유인물을 나눠 주는 김동애 선생은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자 투사였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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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PICT0010.jpg
덧붙이는 글 월간작은책 발행인 안건모

02-323-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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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안건모 #비정규직 교수 #월간지 #시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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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는 농사를 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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