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신불자는 막아줄게, 평생 돈 갚아라?

대학과 은행 배불리는 등록금 후불제

등록 2009.08.24 09:45수정 2009.08.24 09:45
0
원고료로 응원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듣고 놀랐다는, 그 학자금 대출로 인한 신용불량자다. 얼마 전 농협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내 등록금에 보증을 선 적이 있기 때문에 주택이 압류될 수 있다는 전화였다. 우리 집은 이미 압류돼 있는데? 게다가 지금까진 말이 없다가 왜 갑자기? 농협 직원은 말했다.

"그 동안은 학생이었기 때문에 봐 드렸는데 이제 졸업하셨잖아요."

아버지와 상의 끝에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갔다. 상담을 받기 전 빼곡히 문서를 작성했다. 집주소부터 전화번호, 내 부채를 보유한 은행, 나의 월 소득까지 모두 적도록 돼 있었다. 허위사실일 경우 책임지겠다는 서명까지 하고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는 물었다.

"부채 원금이 얼마예요?"
"2천 만 원이요."
"최장 8년까지 나눠 갚을 수 있어요. 고객님 경우에는 월 21만 원씩 갚아야 해요."
"아- 네... 끝인가요?"
"네."

허무한 상담 뒤에 나에게 남은 것은 월 21만 원씩 96개월이라는, 딱 그만큼의 무게였다. 그리고 그 무게는, 부모님께 다달이 부쳐드리던 돈 15만 원에 딱 6만 원을 더 얹은 만큼의 무게였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의 구멍  


a

등록금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등록금넷)은 지난 7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여당이 진심으로 서민행보를 하려 한다면, '공포의 2학기'가 오기 전에 등록금 문제 해결하라'고 주장하며, '반값 등록금' 이행, '등록금 상한제·후불제 ·차등책정제' 입법화, 고등교육재정 확충 등을 요구했다. ⓒ 권우성


"서민가정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사회에 진출하고 가난을 끊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를 설명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그토록 반서민적인 정부가 '진전된' 정책을 내놨다니…. 그럼 나도 취업할 때까지 신용불량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것인가 싶어 자료를 찾아 봤다. <중앙일보>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Q. 기존 6개월 이상 원금과 이자 연체자가 1만 3800명인데 이들도 구제 대상이 되나.
A. 현실적으로 구제할 방법은 없다.
(<중앙일보> 7월 31일치)

"현실적으로 구제할 방법은 없다." 냉혹한 한 마디가 내 가슴을 후볐다. 그 많은 홍보자료에서 교과부는 말했었다.

"등록금 대출 연체로 인한 신용불량자 발생이 없어집니다."

"2009년 6월 현재 13804명에 달하는 금융채무 불이행자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한다."

한마디로 발생할 것만 예방하고, 발생한 것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대출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라면,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것인데, 왜 정책 실패의 희생자는 책임지지 않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학자금을 대출받으면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못해도 갚아야 되니까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나 같은 사람을 보고 충격받았다는 얘긴데, 왜 나는 구제하지 않는가.

그래도 후배들을 위해서라면...

그래도 후배들을 위해서는 좋은 일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나는 8학기 2605만 원을 대출받았다. 나의 첫 등록금은 연 500만 원이었고, 나의 마지막 등록금은 연 700만 원이었다. 후배들은 4년 동안 얼마를 대출받게 될까?

2008년 사립대 평균 등록금이 연 738만 원이다.(권영길 의원실) 매년 등록금 인상률은 지난 6년간 평균에 맞추어 6.2%로 잡았다.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려면 생활비도 대출받아야 한다. 200만 원씩 매 학기 생활비를 대출받는 걸로 하자. 4년만에 졸업한다고 생각하자.

a

등록금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등록금넷)은 7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여당이 진심으로 서민행보를 하려 한다면, '공포의 2학기'가 오기 전에 등록금 문제 해결하라'고 주장하며, '반값 등록금' 이행, '등록금 상한제·후불제 ·차등책정제' 입법화, 고등교육재정 확충 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 권우성

그러면 이 학생은 총 4838만 원을 대출받게 된다. 벌써 거의 내가 빌린 돈의 두 배 가까이를 대출받아야 한다.

이자는 교과부 홍보자료에 따르면 09년 2학기 기준 5.8%라고 한다. 매년 바뀔 거라고 하는데, 이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적용해 보자. 2년 간 군대에 가거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다고 치자. 졸업 후 구직까지 1년이 걸렸다고 가정하자. (2006년 평균) 갚아야 할 돈은 얼마가 나올까?

대학 졸업 후 3년이 지나면 이
돈은 6590만 원으로 불어난다. 갚는 기간을 늦춰준 대신, 이자는 차곡차곡 쌓이도록 해서 결국 갚을 돈은 더 많아졌다. 신입사원이 출발할 때부터 대출끼고 조그만 전세 빚 얻은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저소득층 가구의 절반 이상이 적자를 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이 만연한 사회고,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층 사회 초년생이 돈 쓸 곳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결혼 준비, 주택 저축 등등. 당연히 부모님도 부양해야 한다. 저소득층일수록 자식이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 확률이 높아진다.

교과부는 이렇게 설명한다. 후불제가 되면 "부모님 노후자금의 저축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아하, 부모님이 등록금 내지 않고 노후자금을 모았을 테니 자식이 부모님을 부양하지 않아도 된다 이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 부모님은 원래 노후자금을 모을 돈도 없으셨다. 생각해 보라.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저소득층 가정이 노후자금을 모을 여력이 있는 가정이겠는가? 노후자금 모을 돈으로 등록금을 내는 가정? 그런 가정이라면 애초에 대출을 왜 받겠는가. 도대체 어느 층을 위한 제도인지 교과부 스스로 혼란스러운 것 아닌가.

이 제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단 신불자는 막아줄게. 평생 돈 갚으며 살렴. 결혼? 집? 부모님? 알아서 해야지."

저소득층을 위한 제도? 대학과 은행을 위한 것

나는 저소득층이다. 여기까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나서 종합적으로 드는 생각은 이거다.

"이 제도는 나를 위한 제도는 아닌 것 같다."

그래, 나도 처음 듣고 솔깃했다. 알아보니, 당장 신용불량자 딱지는 안 달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혜택이 있다. 하지만 딱 그만큼이다. 이게 '획기적인 제도'인가. 신용불량자 양산은 막은 대신, 저소득층이 내야 할 돈은 더 많아졌다. 늦게 갚는 만큼 이자는 빼곡히 쌓인다. 재원 때문인지 기초생활수급자 5만 2천 명에 대한 무상 지원도 중단한다고 한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도 중단한다.

대학과 은행이 손해볼 일은 없을 듯하다.

일단 대학은 정부가 돈을 주는 거니 오히려 맘놓고 등록금을 인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말한다. "학생 1인당 교육비 산정 근거를 내년 1월부터 공시하도록" 했으니 대학이 마음대로 등록금을 인상할 수는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한다. "등록금 수준에 대한 관심과 등록금 인상에 대한 견제 심리는 현재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대학 맘대로 등록금을 인상하진 못할 거라고 말이다. 엥? 만약 앞의 말이 진실이라면 뒤의 부연은 필요하지 않다. 한마디로 자신 없는 거 아닌가. 실제로 교과부의 이 발표에 대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공개내역에 대한 감사나 적절치 않은 산정근거에 대한 규제, ... 사회적 합의를 하는 시스템 등이 부재해 ... 허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 정부에게서 "등록금 상한선을 제시할 계획이다. 걱정 마라",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아마 이명박 정부는 그런 양보를 쉽사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대학 당국의 이윤을 직접 침해하는 길이니 말이다.

은행도 혜택을 보긴 마찬가지다. 수십 년간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안정적인 시장을 손에 넣는 것이 아닌가. 이율도 짭짤한 편이다. 학자금 대출은 상환 비율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황금알까진 아니더라도 최근 금융위기 속에선 괜찮은 거래 아닐까?

따라서 이 제도를 다시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학생에겐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는 대신 왕창 늘어난 빚의 멍에를, 은행에겐 안정적인 시장을 준다."

이건 뭐 부모님 부양비를 대학과 은행 부양비로 쓰라는 말 아닌가.

이 조그만 '개혁'을 얻기까지

a

4월 1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 반값등록금 실현' 등을 촉구하는 예술, 이공계열 대학생대표자 대정부 농성선포식에서 대학생 대표자들이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를 요구하며 삭발을 한뒤 눈물을 닦고 있다. ⓒ 유성호


이 제도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반값 등록금 공약은 어디 갔느냐고. 그런 공약 내세운 적 없다는 말도 들었지만, 청와대 말마따나 고작 이 제도가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이 대통령 교육철학의 결정판"(!)이라면 이 대통령의 교육철학이 얼마나 빈곤했는지만을 보여 줄 따름이다.

게다가 '신용불량자 유예제도'에 가까운, 이런 보잘것 없는 '개혁'조차도 지난한 투쟁을 통해 성취됐다. 이 제도를 얻기 위해 대학생들부터 사회단체들까지 안 해 본 게 없다. 참여연대 안진걸 팀장은 말한다.

"해볼 수 있는 모든 방법, 집회-국민대회, 촛불시위, 기자회견, 토론회, 공청회, 입법청원, 1인시위, 삭발투쟁, 국회의원 면담, 선거시기 공약으로 만들기 캠페인, 대학가 순회강연회, 헌법소원 추진 등등... 언론장악, 4대강 죽이기, 부자편향정책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민생을 파괴하는 데 여념없는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이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이 무서웠긴 무서웠나 봅니다."

a

4년 등록금, 대출만 2500만 원. 학교가 준 것은 출교와 신용불량…. 2008년 3월, 고려대 입학식장 앞에서 등록금 네트워크가 주최한 기자회견에 참가한 필자. ⓒ 안형우

2005년, 필자는 사범대 학생회장으로 있을 당시 등록금 문제로 정말 박터지게 싸웠다. 2006년엔 등록금 투쟁을 포함한 교육투쟁 과정에서 학교 당국에 휘말려 출교도 당했다.

올해 초 청와대 앞에서 삭발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대학생들이 난폭하게 연행됐던 것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서민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 이런 사소한 '개혁'조차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눈물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 첫 발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적 분노 앞에 '움찔' 했다. 그렇다면 한 발짝, 두 발짝 물러서게 하는 것은 왜 불가능하겠는가.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4대강 사업 22조 원 중 10조만 써도 무상교육이 가능하다는, 좀 뜬구름처럼 들리는 이 제안도 사실은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후불제가 가능하다면 왜 상한제는 안 되는가? 후불제조차 안 된다고, 안 된다고 우기더니 결국 대통령 말 한마디에 되지 않았나. 정권에 위기가 닥쳐오자 이렇게 신속히 '포퓰리즘' 정책을 펴지 않나. 그렇다면 왜, '신용불량 유예제도' 말고 복지를 확 늘릴 수는 없는 것인가. 왜 정리해고될 노동자들을 구제할 돈은 없다는 건가. 우리는 이런 물음을 훨씬 더 폭넓게 던져볼 수 있다.

대학등록금 후불제는 달팽이 걸음 같은 진일보다. 딱 그만큼이다. 대학과 은행은 이 제도를 이용해 더 나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서민들은 더 수탈당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때는 퇴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지 않는다면,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자신감 있게 나간다면, 이번엔 쥐꼬리만한 양보가 아니라 더 큰 양보를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등록금 #등록금 후불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 #신용불량 #신용불량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국 떠나는 과학자의 탄식 "늦었어요, 망했습니다"
  2. 2 조국혁신당 2호 영입인재, 구글 출신 이해민
  3. 3 더 과감해진 'SNL 코리아'의 '입틀막' 패러디... 누리꾼 "환영"
  4. 4 "대학은 가는데, 문제는..." 현직교사가 본 '가난한 아이들'
  5. 5 윤 대통령, 반도체산업 죽일 건가? 외국 보고서에 담긴 진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