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끝없이 역할 찾고 확장해 나가라

[나의 재활기 12] 아무리 사소한 역할일지라도 적극적으로 하라

등록 2009.08.24 16:16수정 2009.08.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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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향집 옥상에서의 가족모임 늦은 계획으로 숙소를 구하기가 어려워 어머님의 제안으로 고향집에 모여 옥상을 이용해 토요일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현실에서 내 역할 찾기는 가족모임의 제안과 실행을 주도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고향집 옥상에서의 가족모임 늦은 계획으로 숙소를 구하기가 어려워 어머님의 제안으로 고향집에 모여 옥상을 이용해 토요일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현실에서 내 역할 찾기는 가족모임의 제안과 실행을 주도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 서치식


생활에서 맡은 최초의 내역할은 주말동안 어린 형서를 돌보는 일이었다
.


사고 후 현실 속에서 나의 존재는 그저 몸이 불편한 장애자로 '환자'일 뿐이었다. 사고로 몸이 불편해지면서 내 사랑하는 집사람이나 부모님, 형제에게도 난 언제나 어디서나 끊임없이 배려하고 보살펴야 할 '노약자'로 취급되고 있었다. 처음 그 사실을 인식하고 든 생각은 서운함이었고, 나에 대한 배려를 오히려 "차별"로 오해하며 적대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그들의 그런 행동은 당연했으며, 그들 눈에 내가 그렇게 비춰진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인정해야만 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걸 오히려 내 재활의 동기(動機)로 삼아 나가기 시작했다.

내 사랑하는 가족들 눈에 그렇게 보이고 그들에게도 장애자로 취급 받아야 한다면 다른 사람 눈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어떨지에 생각이 미치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날 제일 많이 이해하고 감싸 주려하는 가족들 눈에도 그렇다면 재활을 통해 나 스스로 동작을 개선해 그들 눈에 멀쩡한 모습으로 보이고 인정받으면 그 뿐이었다.

혼자 재활에 열중 하다보면 내 동작이 뚜렷이 개선 된 것을 느끼고 가족들에게 그걸 확인 받고 싶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집사람에게 수시로 전화 해 "무슨 동작이 이젠 가능 해졌고 어디가 어떻게 좋아졌다"고 했으며, 다니러 오면 그것을 보여주며 확인받고 싶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정말 사소한 동작 하나가 비로소 불안하게 개선되는 정도였고, 모든 게 '정상'인 그들 눈에는 당연한 동작일 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런 동작의 개선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가족들의 그것은 뚜렷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처음엔 그들이 내게 관심과 애정이 없어 그렇게 내 재활 성취에 대해 그렇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서운했으며 그것을 표현하기도 했다. 당연했다. 내가 처한 상황과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내가 처한 상황과 그들의 처지가 가지는 괴리는 너무 컸던 것이다


현실에서의 나의 존재는 거의 실체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가령 집안일에 대한 논의나 하다못해 친척들의 애경사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것까지 집사람이 중심이었고 나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었다. 그걸 알자 마음으로부터 그런 상황에 대해 거부감이 일며 그런 상황을 개선하고 실생활에서 내 역할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현실에서 최초로 내 역할 찾기에 나선 것은, 전에 기술한 바 있듯이 생활을 위해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집사람이 여건상 못하는 부분을 도우는 일로 토요일 오후면 집근처의 재활병원에서 외박을 나와 아파트 단지안의 어린이 집에서 사랑하는 딸 형서를 데려다 돌보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거기서 시작된 나의 '실생활 에서의 역할 찾기'는 자가운전을 다시 시작하면서 더 확대되기 시작해, 집사람 퇴근시간이 되면 일하는 곳으로 형서와 함께 차로 이동해 집사람을 퇴근 시키는 것으로 확대 되어갔다. 불편한 아빠와 지내는 게 재미있지만은 않던 형서는 엄마의 퇴근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데 "엄마 데리러 가자" 소리에 환호성을 질렀다.

더욱이 의식이 없어 자기도 몰라보던 아빠가 손수 운전해 엄마를 데리러 가는 것에 형서는 대 만족이었다. 물론 그렇게 운전하고 나타난 나를 보고 집사람은 반가와 하기는커녕 불안하다며 화를 먼저 내었다. 교통사고로 불편해진 몸으로 아직도 불편해 입원 치료중인 사람이 혼자서도 아니고 어린 딸까지 태우고 자기를 태우려 왔으니 당연했다.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심하게 반대를 했다. 당연했다.

하지만 계속 현실에서 무기력하게 사는 것을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나로서도 물러 설 수 없었다. 그 다음 주 토요일이 되면 여지없이 퇴근시간에 맞춰 나타나는 나와 형서를 보고는 아내도 나중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복귀해 끊임없는 재활이 지루해질 때마다 외박을 나가 가족과 함께하는 그 시간을 위안 삼으며 토요일 오전까지 재활에 매진했다. 그렇게 나의 "현실에서의 역할찾기"는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갔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역할 찾기는 2007년 생활을 위해 집사람이 형서만 데리고 옮기는 결정도 가능하게 했고, 당시에 손수 운전해 짐을 실고 태워다 주게 했다.

a 고향집 옥상에서 별을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각자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소원해진 형제들의 결속을 위해 포털 다음에 '산정너머 종다리 우는집'이란 가족카페를 개설해 운영중이며 회비를 거출하며 정례화 하는데 까지 내 역할 찾기는 확대되었다. 22일 고향집 옥상에서 가진 가족모임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공포영화를 보고 한쪽에선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고향집 옥상에서 별을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각자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소원해진 형제들의 결속을 위해 포털 다음에 '산정너머 종다리 우는집'이란 가족카페를 개설해 운영중이며 회비를 거출하며 정례화 하는데 까지 내 역할 찾기는 확대되었다. 22일 고향집 옥상에서 가진 가족모임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공포영화를 보고 한쪽에선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 서치식


가족에게 가족모임 제안해 8월 22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 가정에서 그렇게 내 역할의 영역을 확대 해가면서 형제들과 부모님 사이에서도 점차 내역할을 늘려가고 있으며, 성장해 각자 가정을 이루어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형제들이 소원해진다 생각해 구정에 가족카페 개설을 제안해 개설 운영 중이며, 봄에는 형제간의 친목도모를 위해 모임구성을 제안해 월 회비를 거두며 운영하고 있다.

아버님 어렸을 때 중국사람으로부터 종달새 사육을 배우셔서 종달새 키우기를 취미로 하셔서 어릴적부터 "종달새 우는집"으로 통했던 점에 착안해 포털 다음에 "산정넘어 종다리 우는집"으로 이름을 정해 개설해 가족간에 소식을 전하는 공간으로 활용중이다.

이런 자식들의 활동에 자극받으신 연로한 아버님도 지금은 거의 멸종된 종달새를 구하기 위해 보리밭의 고장 고창 4번, 인천 송도 3번의 탐방 끝에, 4월 '세계도시박람회'준비로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송도의 종달새 서식지에서 종달새 새끼 두 마리를 구해 오셔서 애지중지 기르고 계셔 가을쯤은 그 맑고 청아한 노래를 들려 줄 것이다.

가족카페를 개설하고 운영하며 가족야유회를 제안했으나 시기적으로 너무 늦어 마땅한 숙소를 구할 수 없어, 어머님의 제의로 고향집에 8월 22일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누며 고향집의 옥상을 이용해 야유회 기분을 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사고 후 어린 딸을 주말에만 돌보는 데서 시작된 나의 "현실에서의 역할 찾기"는 이렇게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전국의 140만 재활우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상황과 처지에 맞게 실생활에서 역할을 찾아 도전하라는 것이다. 장시간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은 대부분 뇌와 관련된 질병이나 외상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 초기엔 인지능력의 결핍으로 인해 본인 스스로 한정을 지으면서 대부분의 일들을 포기하고 장애자로 치부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대하게 되며 그런 상황 속에서 점점 고립되게 되고 세상에서 잊혀지게 된다는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도 주말을 이용해 가정에서의 내 역할 찾기는 점차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으며 공무원시험을 통과하면 완전한 생활인으로 자리로 돌아가리라 확신하며 오늘도 그 준비에 매진중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게재후 다음의 view에도 게재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게재후 다음의 view에도 게재 예정입니다.
#역할 찾기 #장애자 #뇌병변2급 #서치식 #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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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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