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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 집을 방문하게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서 여기 저기 둘러보는 순간 제 눈을 사로잡는 한 액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대중 대통령께서 아들 김홍일 의원에게 주는 글이었습니다.
家 訓
1.하느님과 良心에 충실히 살 것
2.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충실할 것
3.믿음속에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 나갈 것
4.부자도 가난하게도 되지 말 것
1985.2.20.구정날
父 김대중 母 이희호
아버지 김대중의 절절한 부성애가 느껴졌습니다.
아들이 아파서 아버지를 뵈러 오지 못하자 아들 집을 찾아와서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셨다고 합니다.
장남 홍일이는 당신의 분신이었기에 작년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피눈물을 쏟으신 김대중 대통령이셨습니다.
아들 김홍일은 아버지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준 효자였습니다. 김홍일 전 의원에게 김대중대통령은 가슴 따뜻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과 김홍일은 동지였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2시간 이상 앉아있기조차 힘든 아들은 죽더라도 아버지 곁에서 죽겠다고 22일 오후 9시 국회의사당 빈소를 찾았습니다.
8월 22일 저녁 7시에서 8시까지 진행된 명동장례미사를 마치고 국회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잠깐 유족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아버지가 누워있는 빈소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시간이 밤 9시였습니다.
사위와 함께 휠체어를 탔어도 힘겨워하면서 상주석에 섰습니다. 옆에는 부인 윤혜라 여사, 장녀 지영씨, 둘째 정화씨와 사위들이 섰습니다. 국민들이 그렇게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사회석에서 이윤자 전 광주정무부시장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은 살아계신 것 만으로도 모진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붕이었습니다. 헌화하시고 상주석에 가셔서 김대중 대통령과 이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상주석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이 와 계십니다. 아버지 김대중 대통령께서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아들입니다. 몸이 아파서 상주석을 지키지 못하고 집에서 아버지를 가슴으로 보내드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국민 여러분과 아버지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기 위해 여기에 오셨습니다. 죽더라도 아버지 곁에서,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들 옆에서 죽겠다라고 하면서 여기에 왔습니다. 부디 김홍일 의원의 손을 잡고 쾌유를 빌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윤자 부시장의 떨리는 음성은 그토록 꿋꿋하게 버티고 있던 김홍일 전 의원을 목메이게 했습니다. 조문하러 오신 분들과 일일히 악수를 하는 동안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옆에 있던 부인 윤혜라 여사의 눈에서도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30여분간 상주석을 지키다가 자리를 뜰 때까지 아버지 김대중 대통령을 힘겹게 보내드리려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을 가장 많이 닮은 아들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
그 아들이 지금,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파킨슨병으로 투병중인 김홍일 전 의원 옆은 부인 윤혜라 여사와 前 광주 정무부시장인 이윤자 부시장만이 쓸쓸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김홍일 전 의원은 누릴 것은 다 누려서 여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김홍일 전 의원은 지금 죽어도 원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야기들은 다 들을 수 있지만 본인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손의 근육도 약해서 글을 쓸 수도 없습니다. 수화도 하지 못합니다. 쌍방향소통은 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일방적인 경청만 할 뿐입니다.
육신의 아픔보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천형에 가깝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아버지를 보내면서도 힘겹게 아버지 세 번만을 외쳤을 뿐입니다. 저는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앞으로 하루를 살더라도 말문이 트이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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