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새는 배수관, 누가 수리했나 했더니...

아내가 이번처럼 위대하고 자랑스러 보일 때가 없었습니다

등록 2009.08.30 14:15수정 2009.08.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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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왼쪽이 낡은 배수관이고 오른쪽이 아내가 수리한 새 배수관입니다. 이런 수리는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왼쪽이 낡은 배수관이고 오른쪽이 아내가 수리한 새 배수관입니다. 이런 수리는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 윤태


얼마 전부터 화장실 세면대 금속배수관에서 물이 조금씩 새더니 급기야 금속배관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너무 낡아서 삭아버린 것입니다. 세수할 때마다 발등으로 줄줄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면서 수리를 해야지 하고 있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임시로 구멍 뚫린 곳에 아내가 임시로 비닐 과자봉지를 이용해 새는 물줄기를 잡긴 했지만 여전히 조금씩 물이 새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 불러다 고치면 그만인 것을 왜 그리 고민하고 있냐고요?

저희가 전세를 살고 있는데 어찌 보면 이렇게 자잘한 것까지 집수리하면서 비용을 달라고 하기도 좀 민망했습니다. 집주인이 멀리 살기도 하지만 지난 4월 전세 계약할 때 얼굴 한번 보고 그 후로는 연락을 한 적이 없으니 안면도 거의 없는 상태지요. 집주인이 가까운 곳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면 웃으면서 가볍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요.

괜히 전화했다가 혹시 전세 보증금 올려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그렇잖아도 요즘 전세금이 올라간다는 소식도 들려오구요.

하지만 순전히 우리가 비용을 지불해 고장 난 곳을 고친다는 것도 참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한 달 전에 주방 개수대 아래 쪽에 물이 새 사람 불러 고쳤는데 몇 만 원 나오더라구요. 집주인한테 얘기도 못하고 그냥 그러고 있던 터에 이번에는 세면대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모호한 상황. 살다보면 명확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서성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빠듯하게 살아가는 상황에서 예상 외로 지출이 생기면 생활이 힘들어집니다. 넉넉하면 이런 것쯤 전혀 신경 안 쓰고 기분 좋게 새것으로 고쳐버리면 마음은 편하지요.

그런데 엊그제 출근해 들어왔는데 세면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구질구질 물 새던 배수관이 반짝반짝 빛나는 새것으로 말끔히 바뀌어 있더군요. 세면대 안 물 가두었다 뺐다하는 고무까지 깔끔하게 교체돼 보기도 좋더군요.


당연히 사람을 불러 수리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직접 해버린 것입니다. 설비 가게에 들른 아내는 출장비 3만 원에 부품비 1만여 원이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하기로 한 것입니다.

결국 설비 아저씨한테 꼬치꼬치 물어 교체하는 방법을 모두 익힌 후 1만여 원 주고 부품을 사들고 와서 모든 일을 해결해버렸습니다. 비용 측면에서도 그렇게 부담은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손재주가 있는 건 전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선풍기, 시계 등 부러지고 고장 나면 뚝딱뚝딱 몇 번하면 금세 쓸 만한 물건으로 복구되곤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배수관 교체는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적어도 이 정도의 비교적 '스케일 큰' 일은 남편인 제가 해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더군요. 그래서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알아보거나 추진력 있게 나서지 못한 겁니다.

이번 일을 한 아내가 위대하고 자랑스러워 보였습니다.

a  처음에 이 상태를 보고 전문가를 불러서 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품만 사다가 수리할만한 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그것을 거뜬하게 해버렸습니다.

처음에 이 상태를 보고 전문가를 불러서 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품만 사다가 수리할만한 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그것을 거뜬하게 해버렸습니다. ⓒ 윤태


a  물이 안 새는 것도 좋지만 보기만 해도 뭔가 든든해보입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 보려고 노력하는 아내가 그렇게 위대하고 자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습니다.

물이 안 새는 것도 좋지만 보기만 해도 뭔가 든든해보입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 보려고 노력하는 아내가 그렇게 위대하고 자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습니다. ⓒ 윤태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올린 것을 좀더 자세히 고쳐썼습니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 올린 것을 좀더 자세히 고쳐썼습니다
#배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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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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