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까지 절하는 길, 파출소에 갇혔다

[현장] 300m로 끝난 용산참사 삼보일배... 유가족들은 파출소로

등록 2009.08.31 21:24수정 2009.08.3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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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저녁 용산참사 해결을 요구하며 청와대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하려던 활동가가 경찰에 거꾸로 들려 연행되고 있다.
31일 저녁 용산참사 해결을 요구하며 청와대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하려던 활동가가 경찰에 거꾸로 들려 연행되고 있다.노동과세계이명익

31일 오후 6시 50분, 삼보일배를 하던 용산 유가족이 종로경찰서 세종로파출소에 끌려들어갔다.

경찰은 인도에 있던 홍석만 용산범국민대책위 대변인을 파출소 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이를 말리던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도 함께 데려갔다.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는 파출소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경찰에 막혀 나오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권명숙씨가 입던 검은 상복 치마저고리도 찢겨졌다. 지난 29일에도 그의 상복은 경찰 대치 상황에서 찢겨졌다.

이에 항의하면서 파출소 앞으로 몰려가 면회를 요구하던 류주형 대변인, 김태연 상황실장 등 범대위 활동가들도 줄줄이 파출소로 끌려갔다가 경찰버스로 연행됐다. 일부 범대위 활동가들과 철거민들은 곧장 경찰버스에 연행됐다.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8개월째로 접어든 용산 참사를 해결하라는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이날 오후 대한문 앞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300여m를 채 못 가서 경찰 진압으로 중단됐다.

16명 연행... 파출소에 갇힌 검은 상복의 유가족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이정희 의원과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31일 오후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수사기록 공개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이정희 의원과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31일 오후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수사기록 공개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권우성

이날 연행된 활동가와 철거민들은 모두 16명으로, 이들은 각각 강서경찰서·동작경찰서 등에 나뉘어 호송됐다. 연행은 약 20분 뒤인 저녁 7시 10분께 모두 끝났다. 같이 삼보일배를 하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이정희 의원은 연행되지 않았지만, 도로에 앉아 연좌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은 연행을 마친 뒤 유가족들에게 "나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권씨는 파출소 의자에 앉은 채 "상복 제대로 해놓기 전까지는 못 나간다"고 외치면서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의 팔은 어깨부터 손목, 손등은 물론 손가락까지 파스가 가득했다.


용산 유가족들과 철거민 등 10여 명은 앞서 이날 오후 4시 30분 대한문 앞 인도에서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행렬은 20분 만에 코리아나 호텔 앞 인도에서 멈췄다. 여기까지의 거리가 약 200m. 그나마 경찰 20여 명이 행진대열을 둘러싼 바람에 이들의 요구는 청와대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삼보일배 출발지인 덕수궁 대한문앞에 수십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사람들이 모일 수 없도록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삼보일배 출발지인 덕수궁 대한문앞에 수십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사람들이 모일 수 없도록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권우성

 서울시의회앞 인도에서 삼보일배 행렬을 가로막고 나선 경찰들이 참가자들의 모습을 여러대의 카메라를 동원해서 채증하고 있다.
서울시의회앞 인도에서 삼보일배 행렬을 가로막고 나선 경찰들이 참가자들의 모습을 여러대의 카메라를 동원해서 채증하고 있다.권우성

코리아나호텔 앞 인도는 경찰병력과 차벽에 막혀 '불통'됐다. 현장을 촬영하고 돌아가려던 방송·사진기자들과 길을 지나가는 시민들이 항의했지만 경찰은 길을 터주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40분 가까이 연좌하며 버틴 끝에 오후 5시 50분께 다시 삼보일배를 할 수 있었지만 10분 동안 100여m를 전진한 뒤 동화면세점 앞 인도에서 역시 가로막혔다.


경찰들과 마주서서 침묵을 지키던 유가족들과 의원들은 그 자리에서 결국 그 자리에서 연좌했다. 대치 시간이 길어지자 유가족들과 범대위는 애초 이날 저녁 7시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원불교 추모법회 장소를 옮겨 이 자리에서 행사를 열기로 했다.

그러나 추모법회도 결국 열리지 못했다. 경찰은 "불법 미신고 집회를 하고 있다"는 해산 경고방송을 한 뒤 오후 6시 50분부터 바로 옆 파출소에 홍석만 대변인을 끌고가면서 본격적인 연행에 들어갔다.

용산 유가족들은 이날 삼보일배를 통해 투쟁 거점을 남일당 참사현장에서 서울광장으로 옮기고 여론을 확산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날 삼보일배에 앞서 오후 4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는 "8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우리는 장례도 못 치르고 있다, 정권이 정정당당하면 우리 가는 곳마다 왜 경찰이 따라붙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내일 다시 공판인데 검찰 수사기록 3000쪽이 공개되어야 진실을 밝힐 수 있다, 이를 알리고자 삼보일배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삼보일배는 청와대가 아닌 파출소에서 끝났다.

용산참사는 오늘로 224일을 맞았다.

권우성

#용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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