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 예산이면 국민임대주택 169만채 공급이 가능하다. 사진은 개발을 위해 철거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의 한 뉴타운 예정지.
정진영
"전세금 올려줄래, 아니면 이사갈래?" 아마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만큼 지독한 흑백논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뛰는 전세금을 맞춰보려 대출을 받으려 해도 서민에겐 문턱이 너무 높다. 필자가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할 때 주택금융공사 자료에서 확인하기로는 지난 2005∼2006년 당시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한 사람 가운데 넷 중 한 명꼴로 거절당해 하루 평균 122명씩 한 달 평균 3657명씩 대책도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물론 대출받으려는 사람의 신용도 감안해야 하지만 역시 전세금 대출도 재정이 부족해 충분히 빌려주지 못하고 있다. 만약 4대강 정비 사업 22조2천억 원을 모두 서민의 전세자금으로 대출해준다면?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3만6천 호의 저소득 가구에 2%의 싼 금리로 1조1500억 원의 전세자금을 대출해줄 계획이다. 만약 4대강 정비 사업비 22조2천억 원을 저소득 가구 전세자금으로 대출해준다면 70만 가구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정부는 또 직장인 11만9천 가구에 4.5% 금리로 3조188억 원의 전세자금을 대출해줄 계획인데, 이 경우 22조2천억 원은 88만 가구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돈이다.
한국에서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반)지하방에 사는 사람은 모두 58만6649가구, 141만9784명이다. 인류가 동굴을 비롯한 지하에 살기 시작한 것은 50만년 전 베이징 원인에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21세기 세계 11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땅 속에 산다는 것 자체가 부동산 계급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라 할 수밖에 없다.
지하에 사는 처지가 딱한 사람들이 땅 위로 올라와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따뜻한 세상으로 가는 첫 단추라 하겠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필자의 저서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추정했듯이 수도권 지하 전세방에서 지상 전세로 이사하는 데는 가구당 1831만 원(인천)∼3512만 원(서울)이 필요하고, 월세와 사글세는 전세로 환산할 경우 288만 원(경기, 사글세)에서 1513만원(서울, 보증금 없는 월세)이 든다.
이 같은 방식으로 지하 거주 가구 전체가 한꺼번에 지상으로 이사하는 데는 수도권에서만 10조6천억 원, 전국적으로는 11조2천억 원이 필요하다. 필자는 당시 전월세 시장에 끼치는 영향과 함께 필요한 재정 규모가 너무 엄청나서 10년 정도 시간을 두고 단계별 접근을 하자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 예산을 보니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당장 '지하에서 지상으로' 아름다운 사다리를 내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22조 2000억 원은 모두 국민의 피땀이다. 이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국민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강 파헤치는 데 쓰지 말고 집 없는 서민들 눈물 닦는 데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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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예산이면 시프트 125만채 공급 집없는 서민 눈물 닦아줄 돈 강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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