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부당한 요금은 지불할 수 없다
레바논 여행에서 첫번째 목적지는 '제이타 동굴(Jeita grottos)이었다. 동굴까지 직접 가는 버스는 없고 다우라 쪽으로 가다가 내려서 다시 타야 된다는 거였다. 숙소 앞의 샤를 헬루 버스 스테이션에 가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중간 중간 사람을 태우면서 기사가 말하기를 자꾸 '사이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알고 봤더니, 기사는 우리가 말한 'Jeita'를 'Saida'로 잘못 들은 것이다. 제이타에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그쪽 방향으로는 안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베이루트 공항에 데려다놓고 차비를 1인당 미화 10$씩 내란다. 어이가 없었다. 기사의 잘못이니 원래 탔던 곳으로 되돌려 달라고 했다. 기사는 영어 되는 현지인을 찾아 통역을 해가며 무조건 돈을 내라는 것이다. 우리는 원위치 시켜주지 않는 한 못낸다고 버텼다. 버스 안에는 기사와 우리만 있었다.
서로 대치상태로 있다가 우리는 내려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설마 따라오랴! 안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아는 사람 없는 여기서 이러다 못볼꼴 당하는 거 아냐?' 변호해 줄 사람도 없는데... 흘깃흘깃 밖을 내다보았다. 기사도 밖에 진치고 있는 듯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20여 분 쯤 후에 밖을 봤더니 없다. 혹시 다른 곳에라도 있을까 싶어 여기 저기 살폈는데 기사도 차도 없었다. '오늘 하루 잘못 걸렸다' 재수없다' 생각하며 갔는지 안보인다. 후유! 다행이다. 그래도 어쨌든 예상했던 차비보다 더 낸 셈이다. 공항에서 처음 출발지인 샤를 헬루까지 차비를 냈으니.
일찍 간다고 한 것이 더 늦어진 셈이다. 여행이 어디 계획대로 맘먹은 대로 되던가? 아마 조금 깎아주든가 하는 협상을 제의해왔으면 우리도 응했을 지 모른다. 기사는 처음 얘기했던 가격을 고수하다 결국 받지도 못하고 돌아선 것이다.
알고 봤더니 가려던 'Jeita'동굴은 베이루트의 북쪽에 있고 'Saida'는 베이루트의 남쪽에 있는 도시였다. 정반대로 와서 차비도 더 들었다. 어쨌든 소형버스를 타고 샤를 헬루로 되돌아갔다. 차비로 1인당 1,000LL(레바논화폐,1,500리라=미화 1$)씩 내고.
비블로스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Jeita' 가는 분기점에서 내렸다. 택시를 타야 한단다. 택시는 무조건 1대당 미화 10$를 부른다. 1명이 타건 4명이 타건. 제이타 동굴 가는 길은 꼬불꼬불 산으로 들어간다. 그런 고갯길 커브길에도 앞지르기를 하고 경적을 울려댄다.
레바논 사람들은 정말 놀랍다. 미리 얘기하지만 레바논의 운전 기사들은 정말 베스트 드라이버다. 급경사 오르막길이나 급경사 내리막길(레바논은 산악지대가 많다)에서도 후진과 전진이 자유롭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최종 후보에 오른 '제이타 동굴'
제이타 동굴은 베이루트 북쪽으로 18Km 떨어진 Nahr Al-Kalb 계곡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이다. 입장료는 18,150LL(미화 12.1$)다. 케이블카를 타고 위에(upper) 있는 동굴로 간다. 동굴이 두 개다. 입구에서 카메라 및 카메라 달린 폰을 맡기게 한다. 난 없다고 하고 들어갔다.
가는 곳마다 기계에 넣어 우리나라 전철표처럼 자동 검사를 한다. 동굴에도 감시가 삼엄하다. 사진찍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다. 입장권은 위에 동굴이나 아래 동굴 모두 기계에 넣어 검사한다. 입장권 잃어버리면 절대 안되겠다. 입장권 잃어버릴까봐 보고 또 살펴보곤 했다.
기계에 넣어 검사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란 생각이다. 동굴안도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는 듯했다. 사진을 못찍은 건 섭섭하지만 자연을 잘 보존해서 많은 사람들 더 나아가 후손들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니까.
우리나라의 동굴은 좁거나 낮은 곳도 많고, 위에서 물이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헬멧을 쓰고 구경을 했었는데 이곳은 동굴 천정이 엄청 높고 공간이 넓다. 헬멧이 필요없다. 석순과 종유석들도 잘 보존되어 있다. 세계 최대의 종유석도 있다.
제일 높은 곳은 높이 120m나 되는 곳도 있다. 모든 벽이 종유석과 석순들로 꽉 차 있어 나올 때까지 눈 뗄틈 없이 보게 된다. 현재 2.2Km가 탐험되었고 750m까지만 개방되어 있다. 관람객 탐험 길이가 좀 짧은 게 아쉽다.
꼬마기차를 타고 다시 아래(lower) 동굴로 내려온다. 이 동굴은 강이 흐르고 있어 보트를 타고 둘러본다. 위쪽 동굴보다 종유석들이 적긴 하지만 푸른색 강물과 어울려 아름답다. 물은 속이 다 들여다 보이게 맑다. 마셔보고 싶었다. 너무 깨끗해서. 옆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마셨을 지도 모르겠다. 이 물은 베이루트 시민들에게 식수로도 공급이 된단다. 6.2Km까지 탐험되었다는데 500m만 보트를 타고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물에 손을 넣어봤다. 무척 차갑다. 위쪽 동굴보다 추울 정도로 시원했다. 아쉬운 점은 동굴안 종유석이나 석순들의 다양한 모양에 대한 설명이나 표지판이 없다. 보는 사람의 감성으로 판단할 일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우리나라 동굴에 비해 다양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보존상태는 우리나라보다 잘돼 있었다. 중동 와서 제일 시원한 것 같다. 나가기 싫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뒤에 가서 다시 섰다. 혹시 보트 태워주는 안내원이 알아볼까봐 스카프도 꺼내 쓰고 아까와는 다른 쪽에 서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차례가 되었는데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성공! 두 번 탔다. 시원하고, 두 번 타서 더 즐겁고. 아이처럼 뿌듯했다. 행복이 이런 거겠지? 사소한 즐거움이 행복하게 만든다. 동굴을 나오면 미니동물원이라 할 수 있는 아주 조그만 동물원이 있다.
지금 제이타 동굴은 '신 세계 7대 자연경관'(New 7 Wonders of Nature)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제주도와 함께. '신 세계 7대 자연경관'은 2009년 8월부터 2011년 까지 재단 웹사이트(www. new7wonders.com)를 통해 실시하는 네티즌 결선투표로 결정된다.
'신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이벤트는 문화유산 보존과 복원을 통해 문화 다양성을 증진한다는 취지로 스위스 탐험가 베르나르드 베버 주도로 2007년 7월부터 재단 웹사이트를 통해 진행됐다. 제이타동굴이 ' 세계 7대 자연경관'에 포함되길 바래본다. 물론 제주도는 당연히 포함되길 바랄 뿐이고.
지중해의 아름다운 휴양지 '비블로스'
걸어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했다. 돌아갈 일을 걱정해야 한다. 택시가 줄을 지어 서 있다. 가격을 흥정해서 택시를 타고 비블로스로 가는 분기점에 내렸다. 소형버스를 타고 비블로스에 도착했다. 바닷가다. 휴양지다. 큰 슈퍼마켓이 보이기에 빵과 물, 쥬스 한 병을 사가지고 길을 물어물어 바닷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10분 이상 걸은 것 같다.
비블로스 해안은 이날의 계획에 없었다. 옷준비가 안됐다. 물에 뛰어들 수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발만 적셔볼 뿐이었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는 정말 투명했다. 피서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물놀이하는 사람은 적고, 대부분 선탠을 하거나 매점에 앉아 음식이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물담배 피는 모습이 흔했다.
배낭을 멘 채로 땡볕에 서있을 순 없고 매점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맛이 훌륭했다. 의자에 앉아 있으니 졸립다. 아침부터 차비로 실갱이하고 뜨거운데 고생하고. 잠시 쉬다가 다시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온다. 길이 심상치 않다. 아침에 갈 때랑 다르게 해안도로로만 온다. 1시간 가량.
죽여주는 경치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 우리나라 동해안도 아름답지만 지중해의 아름다움은 또다른 맛이다. 물색깔이 곱다. 부드럽다. 바다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들어가서 '풍덩 풍덩' 해봐야 하는 건데 돌아오는 내내 아쉬움만 남는다. 유럽을 꿈꾸는 레바논은 작지만 축복받은 나라란 생각을 하며 아름다운 해안선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왔다.
2009.09.07 12:01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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