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들... '와보랑께 박물관'

투박하고 고단했던 조상들의 숨결 그대로 전해

등록 2009.09.05 09:28수정 2009.09.0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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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하대장군 석장승이 반겨주는 '와보랑께 박물관'은 새롭게 산뜻하게 지었다.

천하대장군 석장승이 반겨주는 '와보랑께 박물관'은 새롭게 산뜻하게 지었다. ⓒ 조찬현


와보랑께,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다. 나무판때기에도 전라도 사투리가 주렁주렁 열렸다. '참 애기가 수말스럽소 이(아이가 참 착하군요)' 사투리마다 풀이 글도 달렸다. 텃밭, 연못, 물레방아, 정자, 박물관 가장자리에 늘어선 12지신상, 눈에 밟히는 풍경마다 마음에 와 닿는다. 천하대장군 석장승이 반겨주는 '와보랑께 박물관'이 새롭게 산뜻하게 지어졌다. 


새집에 전시할 물건을 옮기고 있던 박물관장(63. 김성우)은 "많이 좋아졌지라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환하게 웃는다. 그 특유의 정감어린 사투리에서 친근감이 물씬 전해져 온다. 이전에 사용했던 건물은 창고나 다를 바 없어 비가 새고 얼룩이 져서 혹여 소중한 물품들이 손상될까봐 애간장을 녹였었는데 이제는 시설이 좋아졌다며 기뻐한다.

a  와보랑께,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다. 나무판때기에는 전라도 사투리가 주렁주렁 열렸다.

와보랑께,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다. 나무판때기에는 전라도 사투리가 주렁주렁 열렸다. ⓒ 조찬현


평생을 두고 모은 소장품, 그 사연도 가지가지

초가의 지새미 맬 때 사용하는 거라며 '대나무바늘대'를 보여준다. 이엉으로 지붕을 얹는 초가의 추녀 끝을 마무리할 때 사용하는 도구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궂은살이 박힌 투박한 손이 언뜻 떠오른다. 바늘대에서 그동안의 고단했던 그분들의 삶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김 관장이 평생을 두고 모은 소장품들은 그 사연도 가지가지다. 어머니를 여윈 슬픔에 한풀이라도 하듯 자개농을 깨부수는 그 분을 설득해 가져다 놓았다는 50여년 된 자개농,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이라며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보내줬다는 옷장, 그 어느 것 하나 애틋한 사연이 담기지 않은 물건이 없다.

가뭄에 둠벙에서 마른논으로 물을 풀 때 사용했다는 '두레'다. 넓은 나무그릇 귀퉁이에 줄을 달아 물을 퍼 올리는 도구다. 이런 걸 누가 사용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로 아주 조그마한 앙증맞은 지게도 있다. 옛 시절에는 어린 아이들도 지게질을 했다며 아이들 지게라고 했다.


소중한 자료를 하나 보여 달라고 하자 김 관장은 모든 자료가 다 소중하지만 특히 '토기와 황동그릇'에 애착이 간다고 했다.

a  김관장은 '토기와 황동그릇'에 애착이 간다고 했다.

김관장은 '토기와 황동그릇'에 애착이 간다고 했다. ⓒ 조찬현


다음은 김 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옛날에 비해 박물관이 참 좋아졌네요, 좋으시겠어요.
"옛날에는 건물이 초라해 손님들이 오면 어려웠는데 이제는 덜 부끄럽게 대할 수 있어서 좋아요. 뿌듯해요."

- 자개농에 망치 자국이 있는데 무슨 사연이 있나요?
"마을 분인데 자기 어머니 돌아가시니까 농을 막 깨불드라고, 여기 망치로 한방 맞았어. '어이 참소, 우리 박물관에 놔두세' 하고 설득해서 여기 가져다 놨어요."

- 토기와 황동그릇은 어느 시대 물건입니까?
"연대는 추정이 안돼요. 토기는 볼수록 문양이 독특해 보물단지 같아요.

- 자료가 꽤나 많아 보이네요.
"저희 집에 귀중한 자료가 참 많거든요.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작년에 자료를 복사해 갔어요."

- 소장품이 얼마나 됩니까?
"아마~ 3500여점 될 겁니다."

a  입구에 줄지어 늘어선 요강이 이채롭다.

입구에 줄지어 늘어선 요강이 이채롭다. ⓒ 조찬현


a  김관장이 평생을 두고 모은 소장품들은 그 사연도 가지가지다.

김관장이 평생을 두고 모은 소장품들은 그 사연도 가지가지다. ⓒ 조찬현


a  가뭄에 둠벙에서 마른논으로 물을 풀 때 사용했다는 '두레'다. 넓은 나무그릇 귀퉁이에 줄을 달아 물을 퍼 올리는 도구다.

가뭄에 둠벙에서 마른논으로 물을 풀 때 사용했다는 '두레'다. 넓은 나무그릇 귀퉁이에 줄을 달아 물을 퍼 올리는 도구다. ⓒ 조찬현


우리네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소품들 가득

상장도 임명장도 다 소중한 자료라고 한다. 생활 속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와보랑께 박물관'은 그렇게 우리네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소품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유성기다. 직접 구입했다고 한다. '마나님한테 욕깨나 먹었겠습니다'라고 하자 '쬐깐 욕을 먹었습니다'라며 웃는다. 아뿔싸, 그의 마나님이 바로 곁에서 물품 정리를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 나올까 긴장하고 있는데 '제가 이제 그러려니 하고 삽니다'라며 하던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잠시나마 긴장했던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말끔하게 단장된 '와보랑께 박물관'은 2층 건물이다. 1층에는 각종 생활용품과 가구, 고서를 2층에는 농기구를 전시할 예정이다.

"2층에도 물건이 많아요?"
"폼만 잡아놨제 전시품은 아무것도 없어요."

농가에서 퇴비 등을 운반할 때 사용했다는 대로 만든 삼태기, 아낙네들이 머리에 이고 다녔던 양철물동이, 직접 그렸다는 상여 나가는 풍경 등 어느 것 하나 애정이 가지 않는 게 없다고 한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 소재지 풍경 사진(1968.3.5)을 설명하던 그의 얼굴에 언뜻언뜻 행복감이 묻어난다.

a  전남 강진군 병영면 소재지 풍경 사진(1968.3.5)을 설명하던 그의 얼굴에 언뜻언뜻 행복감이 묻어난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 소재지 풍경 사진(1968.3.5)을 설명하던 그의 얼굴에 언뜻언뜻 행복감이 묻어난다. ⓒ 조찬현


'와보랑께 박물관'의 이름은 김 관장의 아내가 지었다. 어떻게 이름을 지을까 고민하던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라고 '와보랑께'로 하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준 것이다. 그래서 '와보랑께'로 이름을 지었다는 박물관은 전라도의 생활과 문화가 그 단어 한마디에 모두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이제 새롭게 단장한 박물관은 10월초에 다시 문을 연다.

그저 자신이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달 떠오르는 것 바라보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고향(강진 병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박물관을 통해 고향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고향이 그립거든 옛 추억의 편린들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와보랑께 박물관'(www.와보랑께.kr)에 꼭 한번 들려보라는 말과 함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와보랑께 박물관 #강진군 병영면 #조상들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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