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를 읽고 "어부에 소질이 없어 보여"

희귀병과 싸우는 아버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노인을 본다

등록 2009.09.05 19:04수정 2009.09.0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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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헤밍웨이는 이 책으로 글쟁이들에게 최고의 영광인 '노벨 문학상'과 '퓰리처 상'을 거머쥐었다.

 

이 작품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주말의 명화'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지루했다. 너무너무 지루해서 채널을 돌릴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영화 전편을 장식하는 장면은 '망망대해', 망망대해에 조각배 하나 띄우고 물고기를 잡는 노인이 이 영화 주인공이다. 중학생이 그 바다와 노인을 이해하기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 작품을 인생 쓴 맛 단 맛을 어느 정도 맛 본 뒤에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

 

a  12살 하영이

12살 하영이 ⓒ 이민선

12살 하영이 ⓒ 이민선

"아빠 나 노인과 바다 사줘."

"헉! 노인과 바다, 좀 어려운 책인데 네가 읽을 수 있을까? 지루 할 텐데."

"사줘~한번 읽어 보고 싶어."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초등학교 5학년이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책, 너무 어려운 책에 도전했다가 자칫 책 읽는데 흥미를 잃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방학을 맞아 펀펀 놀 궁리를 하지 않고 책 읽을 생각을 한다는 것이 기특해서 주저 없이 '노인과 바다'를 사러 책방으로 향했다.

 

"책 재미있니?"

"잘 모르겠어 좀 지루해."

"책 내용을 한번 얘기 해봐."

"음~노인이 물고기를 잘 못 잡는다는 이야기인데..."

 

초등학교 5학년 하영이에게 노인과 바다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궁금했다. 예상했던 대로 지루해 하고 있었다. 꼬치꼬치 캐묻자 대답하기 귀찮은지 말꼬리를 흐린다. 욕심이 발동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에게 독후감을 쓰게 하고 싶었다.

 

"독후감 한번 써볼래?"

"싫어 무슨 내용이지 잘 모르겠어."

"그냥 읽고 느낀 대로 써봐."

 

이렇게 해서 하영이는 독후감을 쓰게 됐다. 하영이가 쓴 독후감은 메일로 왔다. '노인과 바다를 읽고'란 제목으로. 본문 내용을 읽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하영이가 노인과 바다를 읽고 난 후 느낀 소감은 '노인은 직업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또 노인을 만나면 어부 말고 다른 직업을 가지라고 충고 해 줄 것'이라고 덧붙여 놓았다.  

 

[하영이가 쓴 독후감 첫머리]

"노인과 바다 를 읽고 작품에 나오는 노인은 어부를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고기를 많이 못 잡기 때문이다. 어부는 운이 아주 중요한데 노인은 운이 없어서 고기를 많이 잡지 못한다.

차라리 어부 대신 환경 미화원 같은 직업을 가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왜 계속 어부만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늙은 어부를 만난다면 꼭 어부 말고 다른 직업을 가지라고 말해줄 것이다."

 

철딱서니가 없는 것인지 현실감각이 너무 뛰어난 것인지! 어쨌든 솔직한 점은 맘에 들었다. 책 첫머리에 독후감 비슷한 것이 있는데도 하영이는 거들떠보지 않고 스스로 느낀 것 만을 정리해 놓았다.

 

"하영아 책 첫머리에 노인과 바다가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 되어 있잖아. 혹시 못 봤니? 망망대해에 떠있는 조각배는 고독을 뜻 한다고..."

"봤어, 근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아빠가 느낀 대로 솔직히 쓰라고 했잖아."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느끼지 못한 것을 느꼈다고 하는 것도 일종의 거짓말이라고 늘 생각하던 터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하영이는 일단 글쟁이 기본 소양은 갖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흐뭇했다.

 

그리고 반성했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욕심을. 책을 사 주면서부터 난 무심결에 하영이가 인생을 깊이 있게 바라보기를 기대했다. 겨우 12살짜리에게. 내 자식이 일찌감치 남다른 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탓이다. 입으로는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고 늘 강조하면서도 속으로는 내 아이는 특별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노인과 바다, 아버지 정도 돼야 이해 할 듯

 

a  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 ⓒ 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 ⓒ 노인과 바다

 

생각해 보니 난 아직도 노인과 바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가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보며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노인을 떠올렸을 뿐이다. 아버지는 '치매'와 싸우고 있다. 치매 중에서도 아주 고약한 종자다. 희귀병(진행성 핵산마비)이라 치료약도 별로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닌다. 가끔은 젊은 의사들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어째서 치료 할  방법이 없다'고 단정 짓느냐는 이유로.

 

아버지 어깨를 짓누르는 인생의 무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 보인다. 아버지는 정신의 끈을 놓쳐 버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는다. 악귀처럼 달려드는 상어떼에게 작살을 던지는 '노인'처럼.  

 

노인은 '인간은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명대사를 남겼다. 난 아버지가 이 말처럼 패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비록 언젠가는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죽을지언정 포기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아무래도 '노인과 바다'는 아버지만큼 인생의 풍파를 겪고 난 이후에나 완벽하게 이해가 될 듯하다.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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