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 목숨 건 대통령 노무현을 말하다

<노무현 함께 읽기> 첫 번째 서평

등록 2009.09.06 14:00수정 2009.09.06 14:00
0
원고료로 응원
노무현 대통령을 읽는다는 것은 그가 추구하다가 그만둔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노무현 대통령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달을 봐야지 손가락에 시선이 맴돌고 있으면 안된다. 그가 추구했던 것과 달성했던 것을 하나씩 살펴보되 그가 이룬 성과에 취해 신격화를 하면 안 된다.

a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노무현 대통령과 기자-취재원으로서 인연이 각별한 오연호 기자가 참여정부 임기말 청와대에서 3일간 나눈 심층 취재 "인간 노무현"의 결과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유와 고뇌가 온전히 담겨 있는 것과는 별개로, 오연호 기자 역시 저널리스트의 한계를 뛰어넘어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뻔한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이나 자신만의 관점에서 질문할 수 있는 기자가 우리 사회에는 필요하다. ⓒ 오마이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 생전에는 '악'으로 취급받았고, 죽어서는 '선'으로 돌변했다. 그의 삶과 죽음 사이에는 다양한 종류의 이분법이 존재했다.


"반미 좀 하면 어때?"라고 공언하던 대통령이 "한미FTA, 이라크파병"을 들고 왔을 때 나를 포함해서 우리가 보여준 자세는 정확하게 선악 이분법이었다. 한미FTA, 이라크 파병 반대는 선, 찬성은 악이라는 프레임에 빠져 있었다. 그 일을 직접 추진하는 사람의 입장이나 상황은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미국에 대한 관계에서 내가 한 일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있죠. 그런 비판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요. 미국이 빠지고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느냐. 미국이 빠지면 동북아 질서라는 것은 논의를 할 수가 없어요.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한반도의 질서 개편 과정에 미국이 결정적인 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런 관점에서 평가를 해야 합니다. 마른 나무 부러뜨리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187쪽

노무현 대통령은 자이툰부대 파병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이 역사에 오류를 기록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기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183) 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욕을 많이 먹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은 맞지만 대통령과 대중이 바라보는 현실의 간극이 너무나 넓어서 그 안에 이분법들이 춤을 추는 것이다.

대통령 되었으니 바로 좋은 세상 올 줄 알았나?

"대통령이 되었으니까, 좋은 세상이 바로 올 거라고 생각했던 순진함, 막강한 권력의 파워들을 다 저쪽에서 가지고 있는데-그 순진함.."(같은 책, p240)


민주개혁세력의 역사를 보면 주로 야당의 위치에서 집권자들에게 반대와 저항을 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을 하다 보니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민주개혁세력의 꿈이자 예고편에 불과할 뿐, 수백 수천년 동안 뿌리내린 광범위한 극우보수, 수구의 유전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성찰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뼈저리게 느꼈다.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의 속내를 들어보자.

내가 2002년 대선에서 이긴 것은 이례적인 사건, 특수한 조건들이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도 못 풀어갑니다.(같은 책,p237)

하지만 우리가 사실은 특수한 이벤트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취약성 같은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고요. 진보 진영이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아도 아직까지는 마이너입니다. 물적 토대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물리적 토대의 차이만큼 노무현(지지세력)과 반대편 진영의 물적 토대의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책, p238)

노무현을 읽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고일대로 고인 정치지형에 조금씩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이 절실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작업을 하기에 앞서 이를 가로막는 막강한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언론권력과 경제권력이다.

국가권력을 구하는 것은 온전히 시민권력의 몫

언론이라는 게 생기고 진가를 발휘한 것은 왕정 시절이었다. 물론 우리나라 왕정에도 "언로(言路)"라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언론은 부르주아와 시민들의 편에서 용감하게 펜으로 싸운 모습이 전형으로 남아 있다. 현대에 오면서 언론이 산업자본과 결탁하는 정도가 노골적이 되었고, 지금은 광고를 받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미디어 산업이 되었다. 언론권력은 곧 시장권력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시장권력에 대한 논리는 치밀하다.

"정치권력은 전 국민을 대표하는 권력이고, 시장권력은 시장에서 승리한 강자들의 권력입니다. 시장권력은 시장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대변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정치권력이 시장권력보다 커야 된다는 것은 명백한 것입니다. 결국 궁극적인 권력은 정치권력이라야 합니다. 정치권력은 이론상 국민주권이니까 전 국민의 권력이거든요."(같은 책, p230)

언론권력과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결탁. 그것은 "엘리트"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엘리트들의 특징은 자신들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 상종을 안 하려는 점이다. 그리고 특유의 선민의식을 느끼고 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의식도 무척 강한 집단이다. 이 집단이 수백년 동안 조선과 대한민국을 지배해 왔다. 이들이 권력을 차지하면 사회 대다수의 약자들은 설 자리를 잃고 한강물에 뛰어드는 정도가 커진다. 약자들을 끊임없이 배제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정치의 기본적인 취지인 "배고프고 서럽고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을 철저히 배반하는 정치가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권력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독재자들이 보여주었던 관점을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다.

정치인들, 보통의 정치인들은 (정치)권력을 정점으로 사고합니다. 그리고 권력으로부터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죠. 보통의 정치인들은. 하지만 나는 다릅니다. 내가 다른 정치인과 다른 점은 권력을 최고 정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정치권력은 하나의 권력일 뿐이고, 하나의 과정일 뿐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권력은 시민들의 머릿속에 있어요, 진정한 의미에서. (같은책, p34)

'시민'에 미친 대통령 노무현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를 일컬어 "신에 미친 철학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히 "시민에 미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노무현 대통령의 고민의 과정들을 보면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필생의 소망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된다. 시민이라 함은 서럽고 하소연할 데 없는 약자이거나 이들을 지지하는 엘리트, 부르주아를 일컫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민들의 감시를 받는 국가권력이 시장권력을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달성된다고 보았다. 시장권력은 현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무방비 상태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정한 자율경쟁이라는 시장 본래의 의미까지 국가가 개입하지는 않는다. 국가가 개입하는 정도도 시민의 제어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시장권력보다 국가권력이 우위에 서게 하는 방법은 뭐냐?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를 모두 포함해서 시장의 소비자까지를 포함해서, 이른바 시장권력의 상대편에 서 있는 소비가 권력을 조직하고 이들을 정치권력으로 묶어내고, 정치권역으로 시장을 통제함으로써 시장의 효율과 정의를 유지해 나가자는 거지요. 이게 말하자면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인 프로세스 아니겠습니까?"(같은 책, p249)

"시민의 제어를 받는 국가, 국가의 제어를 받는 시장"이라는 체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시민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퇴임과 함께 시민사회로 들어가고자 하는 포부를 강하게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시민들의 행동이라는 메커니즘이 아닌 다른 어떤 것도 민주주의를 보장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지식이 뛰어난 엘리트가 활약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돈 많고 의로운 자본가가 사회적 공헌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정치가가 뛰어난 감각으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여준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든 진보주의든,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간다'(같은 책, p270)

덧붙이는 글 | <노무현 함께 읽기>의 기획 리뷰로서 블로거뉴스, 아고라, 알라딘 등에 동시 연재합니다. 매주 일요일 첫 리뷰 기사를 올리고 나서, 독자 피드백을 포함한 포스트는 매주 화요일에 올립니다. 목요일 강독회를 참여하고 나서 리뷰, 피드백, 강독을 포함한 후기는 금요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노무현 함께 읽기>의 기획 리뷰로서 블로거뉴스, 아고라, 알라딘 등에 동시 연재합니다. 매주 일요일 첫 리뷰 기사를 올리고 나서, 독자 피드백을 포함한 포스트는 매주 화요일에 올립니다. 목요일 강독회를 참여하고 나서 리뷰, 피드백, 강독을 포함한 후기는 금요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통령 노무현과 기자 오연호의 3일간 심층 대화, 개정판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7


#노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동네 뒷산 올랐다가 "심봤다" 외친 사연
  2. 2 '파묘' 최민식 말이 현실로... 백두대간이 위험하다
  3. 3 1심 "김성태는 CEO, 신빙성 인정된다"... 이화영 '대북송금' 유죄
  4. 4 채 상병 대대장 "죗값 치르지 않고 세상 등지려... 죄송"
  5. 5 제주가 다 비싼 건 아니에요... 가심비 동네 맛집 8곳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