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유기농 일궜더니 보트 띄운다고?

팔당일대 지역농민 90% 이상 유기농사... 4대강 반대운동 나서

등록 2009.09.08 11:22수정 2009.09.0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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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뒤로 남한강이 무심히 흐른다. 왼쪽부터 서규섭 친환경농업사수를위한팔당공동대책위원장, 임인환, 노태환씨. ⓒ 윤성희

농지 뒤로 남한강이 무심히 흐른다. 왼쪽부터 서규섭 친환경농업사수를위한팔당공동대책위원장, 임인환, 노태환씨. ⓒ 윤성희

4대강 정비사업이 강에 이어 삶을 뒤엎고 있다. 팔당 일대 유기농 농업단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 4대강 사업에 나서며 정부는 하천부지를 수용해 제방·자전거도로·공원 등을 지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기도는 "빠르면 10월 중 두물머리나루터 복원계획을 통해 양수리 일대에 수상레저시설 등을 만들겠다"고 했다.

 

사업부지로 선정된 경기 남양주·양평·여주 등 팔당호 상류지역은 국내 친환경 유기농업의 태동지다. 1973년 팔당댐 건설 이후 뜻 있는 농민들이 유기농 농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백여 가구가 '팔당생명살림 영농조합'을 함께 하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단체인 팔당생명살림 협동조합이 함께 하면서 소비자와 연계망이 생겼다. 현재는 팔당 일대 지역 농민 90% 이상이 유기농업으로 생계를 꾸리며, 연간 100t의 유기농 농산물을 수도권에 공급한다.

 

농토·농민 죽여 레저시설 만든다니

 

노태환(45)씨는 20년간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별별 고생을 다 했다. 노동력이 갑절은 더 드는 유기농사에 몸은 늘 고통스러웠다. 워낙 실패가 많아 돈을 벌기는커녕 작물을 버리기 일쑤였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생계를 위해 몇 달씩 공사판에 나가 일했다. 그래도 그는 농사를 지었다.

 

"먼저 유기농업 하는 분들 보니까 그렇게 사는 게 가치 있어 보이더라."

 

노씨에게 농사일을 배운 귀농 7년차 임인환(45)씨와 최요왕(45)씨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일한 만큼 성과를 얻는 거잖나. 아무 것도 안 만들고 이따만큼 얻으려 하는 거, 우리는 이해도 안 가고 성미에도 안 맞아(웃음)."

 

최씨가 과거 결혼을 앞두고 귀농의 뜻을 밝혔을 때, 약혼자는 경악했다. 겨우 '결혼하고 10년 후, 수도권 근처로 가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그렇게 오게 된 곳이 팔당 유기농단지다. 간호사인 부인은 매일 구로까지 출퇴근을 한다. 

 

단짝인 임씨는 대학 동기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는데, 알고 보니까 각자 귀농에 뜻이 있었던 거지. 서로 누가 먼저 내려갈까 그러다 내가 먼저 내려오게 됐어요. '나 먼저 간다잉' 하고 자랑을 빡 했더니만 자기도 몇 달 만에 따라 내려오더라고. (웃음)"(최)

 

"처음에 노형이 나한테 그랬어. '에이그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하우스 농사하러 왔니'. 요즘 생각해보니 진짜 그런 거 같아(웃음) 남한테 신세도 많이 졌고, 고생도 많이 했어요."(임)

 

올 때는 땅도 집도 없이 맨손이었다. 국가로부터 하천 부지를 '농지'로 점용받아 겨우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유기농업을 하려면 토질부터 되살려야 한다. 거기에만 꼬박 6년을 들였다. 그와 함께 토양검사, 수질검사 등 국가기관으로부터 유기농산물을 인증 받는 기간만 3년이 걸린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일절 쓰지 않기에 뭐든 손으로 해야만 했다.

 

이렇듯 고생스럽게 가꾼 농지를 쓸어버리겠다니, 농부들 마음은 무너진다. 더불어 '농업'의 가치를 내버리는 정치에 분통이 터진다.

 

"사람이 먹는 걸 생산한다는 건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에요. 우리가 힘든 유기농 귀농을 결정한 이유도 그거예요. 물론 농사가 금융처럼 부가가치가 높진 않아요. 하지만 금융자본은 아무런 생산물 없이 서민들 돈 빼내서 투기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망치면 자본은 책임 안지고 피해는 국민들이 보고. 그건 아니라는 거죠. 난 정직하게 생산해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먹고 살겠다고 하는 건데 무조건 돈 좀 줄 테니 나가라. 그럼 대책은 있냐? 없다…. 이러니 허망하죠."(최)

 

서규섭 친환경농업사수를위한팔당공동대책위원장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강가 사람들 생존이 걸린 문제잖아요. 사회적 합의조차 없었지만, 합의과정이 있더라도 정부가 국민에게 이런 요구하면 안 된다고 봐요. 대안을 말하기는커녕 '법에 따라 하는 거니 방해하지 말라'고만 하고. 밥 안 먹고 법만 먹고 살 건가?"

 

4대강 사업에 지역은 몰락, 정권만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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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협동조합 팔당생명살림 유기농산물매장에 농민들이 직접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윤성희

소비자협동조합 팔당생명살림 유기농산물매장에 농민들이 직접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윤성희

이 모든 상황이 4대강 사업에 의한 것임을 농민들은 안다. 지역과 자연을 몸으로 겪어낸 '현장전문가'인 만큼, 사업의 허구성 역시 조목조목 짚어낸다.

 

"4대강 개발의 목적이 네 가지잖아요. 홍수예방, 지역경제 활성화, 용수부족 해결, 수질개발. 이게 다 뻥이란 거죠. 지역경제? 토목건축사업으로 10만 일자리 생긴다고 하죠? 그런데 부여만 봐도, 4백만 평에 천 개 농가가 있어요. 보통 부부가 같이 일하니까 농업 종사자가 하루에 2천 명, 1년이면 72만 개 지역일자리 생기는 거죠. 농업 활성화되면 지역경제도 살죠. 그런데 토목건축사업은 외부 업자들이 가져가는 거잖아요.

 

그리고 홍수예방? 여기는 홍수 없어요. 여기 물에 잠긴다는 건 팔당댐 넘친단 얘기예요. 사실상 강 본류보다 지천, 지류에서 피해가 나요. 그 쪽을 정비해야 하는 거죠. 용수부족? 여긴 최대 갈수기에도 물을 94% 저장해요.

 

수질개선? 보 쌓아서 물을 가두면 침전물이 계속 쌓여 결국 물이 오염돼요. 또 거기서 물 막으면 그 아래 팔당댐으로 썩은 물이 바로 넘어온다고. 그럼 상수원에 치명적이지."

 

"여주 한 군에만 보를 세 개나 세운대요. 알고 보니까 수도권에서 골재 채취할 수 있는 데가 이 입구부터 충주댐 밑에까지밖에 없거든. 보로 물 막으면 골재를 채취할 수 있는 거야. 그 위에 보트 띄우고. 결국 남한강에서 정부가 관심 갖는 건 그 두 개뿐이란 거야."(노)

 

그들의 말은 최근 개정된 하천법시행령이 입증한다. 그 내용은 수질오염을 초래하는 하천구역 내 온실(비닐하우스)을 금지시키고, 시, 도지사에게 부유식 계류장 설치 허가권을 내줘 수상레저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상수원 수질 개선에 기여한 유기농 농민들로서는 어이가 없다. 더구나 정부가 밝힌 "2020년까지 BOD(수질오염수치) 기준을 3PPM으로 하겠다"는 계획에는 말이 막힌다. 결국 현재 1.5PPM인 강을 오염시키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일 큰 문제로, 문제점이 지적되면 또 다른 사업을 끼워 맞추려는 행태를 꼽았다.

 

"여주에 수중보가 문제가 되니까 엊그제는 소규모 댐으로 만들겠대. 그럼 고쳐 짓느라 쏟는 국민 혈세는 또 어쩔 거야."

 

전문가들 역시 사업이 시작되면 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 지적한다.

 

자연-농민-도시민이 같이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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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기른 토마토를 살피고 있는 노씨와 최씨. ⓒ 윤성희

자신들이 기른 토마토를 살피고 있는 노씨와 최씨. ⓒ 윤성희

 

이들은 상황을 단순히 '지역농민의 생존권 문제'로 보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요구는 '보상'이 아니라 '자연-농민-도시민이 함께 사는 길'이다. 즉 잘못된 4대강 개발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목표는 유기농업의 생태적 가치, 지역공동체의 가치, 도시 소비자와 지역농민 간의 유대관계, 안전한 농산물 생산 등을 지키자는 거다. 이건 농민뿐 아니라 도시 소비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산지가 파괴되면 그 모든 게 흔들리지 않나. 더구나 4대강 사업으로 상수원이 오염되면 당장 2천5백만 수도권 인구에게 피해가 가는 거다."

 

MB정부의 국책사업에 맞서야 한다니, 처음엔 서로 막막해 했다. 그래도 대책위를 꾸려 지자체, 정부기관, 국회, 방송사, 시민단체, 생활협동조합 등을 부지런히 찾아갔다. 일방적인 사업설명회 등은 완강히 거부했다. 그 결과 지자체와 전국 생협 및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유기농업단지 보존을 요구하고 있다. 또 남양주시와 논의해, 상지대 친환경 국제유기농센터 교수팀과 지역농민이 함께 '한국형 유기농 모델'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언론사도, 국회의원들도 찾아왔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참여다.

 

"국토란 게 지금 정권 몇 년 안에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잖나. 백년대계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 여기 물과 생산물을 먹고 마시는 수도권 시민들이 여기를 지켜주고, 나아가 국민이 잘못된 정치를 적극 비판해야 한다. 작년에도 그 작은 촛불들이 모여 끝내 정부를 이기지 않았나. 우리가 시초가 되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데 시민들이 조금만 힘을 보태주면, 진짜 강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전형을 만들어 보이겠다."

 

그들의 목소리는 절박하고도 굳건한 자부심이 실려 있었다.

 

임씨의 비닐하우스에는 빛깔 좋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뿌듯한 얼굴로 토마토를 살피던 노씨가 건너편을 씁쓸하게 쳐다본다. 잡초가 무성한 비닐하우스는 서씨의 것이다.

 

"(싸우느라) 워낙 바쁘니 자기 밭도 잘 못 돌보고 있어요."

 

이들의 비닐하우스를, 국토를 정비하는 데 필요한 건 토목공사는 아니리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에도 실렸습니다.(www.laborworld.com)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4대강정비 #4대강사업 #팔당 #남한강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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