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딱지를 붙이지 마라

[웬수 같은 자식, 마녀 같은 엄마 ③]

등록 2009.09.11 10:56수정 2009.09.1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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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1 : 넌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니? 매사가 그 모양이야.

부모2 : 간장을 쏟았잖아! 조심해야지. 빨리 물걸레로 닦아.

 

아이가 어찌하다가 간장을 쏟았다. 바닥에 쏟아진 간장을 보면서 아이의 잘못을 지도하기 위한 부모의 꾸중이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똑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꾸중이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부모의 꾸중에 따라, 부모에 대한 아이의 태도도 결정되기 마련이다.

 

부모1의 경우를 보자. 부모는 아이의 실수를 꾸짖으면서 아이에게 '매사가 그 모양인 애'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부모는 아이의 인격내지는 본성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행동을 통해 그 아이의 본질(전체)을 규정하는, 이런 투의 의사소통은 아이를 절망하게 한다.

 

'넌 맨날 놀기만 하냐, 항상 말썽만 일으키지'와 같은 말들이, 부모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도 화가 나서 별다른 생각 없이 하는 순간적인 말(혹은 말실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언급들, 즉 아이에 대한 부모의 '딱지 붙이기' 식 어투는 아이로 하여금 부모를 상대하기 싫은 존재로 규정하게 만든다. 자기를 구제불능이라 판결하는 부모에게서 아이가 어떤 희망을 볼 수 있겠는가? 아이로서는 부모와 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부모2의 경우를 보자. 우선 부모는 지금 발생한 문제 상황만을 언급하고 있다. 아이가 실수를 해서 간장 종지를 엎었고, 그 때문에 바닥이 더러워진 상황 말이다. 이러한 진술에는 아이의 인격을 규정하는 어떤 말도 들어 있지 않다.

 

그 다음에 부모는 그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이가 해야 할 행동을 지적해주고 있다. 여기서 아이는, 부모가 문제 해결을 위한 의논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부모는 아이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 발생한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는 자기편인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아이 인격이나 성격을 깔고 뭉개는 말만을 늘어놓을 때, 아이는 부모를 어떻게 느끼겠는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물어뜯으려 하면서 놀라고 당황해 하는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저승사자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결코 부모를 자기편으로 보지 않을 것이며, 또한 결단코 부모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닐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가 말썽을 일으켰을 때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부모는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야 하고, 또 매를 들 때는 매를 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화를 내고 매를 드는 행동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이다. 그 행동 속에 아이에 대한 멸시나 인격에 대한 규정이 담겨 있을 때, 아이는 절망하게 된다. 부모의 화나 매는 얼마든지 수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격에 대한 멸시가 담긴 '딱지 붙이기' 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네가 간장을 엎어서 나는 무척 속이 상하고 화가 났다'(혹은 한 대 맞아야 겠다)와 '넌 맨날 그 모양이냐' 는 말은, 아이에게 부모에 대한 전혀 다른 인상을 심어 준다. 전자의 경우는 단지 아이가 잘못한 행동에 대한 부모의 감정과 느낌만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 즉 맨날 그 모양이라는 말 속에는 '너는 구제불능의 인간'이라는 아이에 대한 딱지(인격에 대한 규정)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을 대화 불가능의 적대관계로 만드는 것은 결코 부모의 꾸중이 아니다. 그 꾸중 속에 담겨 있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불신과 멸시와 판단이다. 부모 속만 썩이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판단이 담긴 부모의 말이나 눈길 때문에 아이는 부모와 담을 쌓는 것이다. 세상에 자신을 한심한 인간이라고 규정하는 사람과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나는 한심한 인간입니다' 라고 굴복하든가, '내가 왜 한심한 인간이냐' 라며 저항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대응관계에서 부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아이는 처음에 절망하고 자기를 자책하며 부모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아이 자신이 힘이 없다고 느낄 때까지이다. 나이가 들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는, 자기가 당했던 것과 똑같이 부모를 정죄할 만한 이유를 찾는 쪽으로 관심과 태도를 바꾸게 된다. 나를 판단한 부모를 판단함으로써 자신의 절망감에 도전하려고 한다.

 

부모에 대한 굴복에서 부모를 향한 저항으로 선회하는 것이다. '그래 나도 자식으로서 잘하는 것 없지만, 엄마(아빠)는 부모로서 잘해 준 거 있냐' 는 식의 적대적 감정을 내면에 키움으로써 자신에 대한 자책과 절망을 해소할(변명할)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자기 존엄(인정 받음)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의 시작이다.

 

우리가 보통 문제아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역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반항하며 자신의 일탈 행동을 고집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반항의 표시이다. 달리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의 자존감을 보상 받기 위해  부모의 자격 없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잘 나서' 라고 외침으로서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보상받고(혹은 복수하고) 싶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9.11 10:5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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