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콤마를 잘못 찍은 줄 알았다. '정상'인 사람이 7%밖에 안 된다. 심리상담이 필요한 중등도 우울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50년간 미군의 폭격으로 물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매향리 주민들보다 3배 이상 높다."
파업에 참여했던 쌍용차 노조원 257명의 정신건강 상태를 조사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이 혀를 찼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전국금속노조가 1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철회투쟁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는 가히 '경악'이라 부를 만했다. 파업에 참가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중 48.2%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고 전체 중 71.1%가 심리상담 등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는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는 질환으로 해리 현상이나 공황발작, 환청 등 지각 이상이나 공격적 성향, 충동조절 장애, 우울증, 약물 남용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임 소장은 이와 관련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비율은 인명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나 성폭력 등 각종 폭력에 노출된 서비스 노동자보다 6~7배 정도 높고 우울증 비율은 50년간 폭격 등으로 물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던 매향리 주민들보다 3배 정도 높다"고 설명했다.
업무과중으로 인해 심신이 녹초가 되고 결국 우울 상태에 빠지는 '탈진 증후군'의 경우도 외국의 노동자보다 상당히 높았다.
정서적·육체적 피로를 묻는 모든 항목에서 대다수가 항상 '거의 그렇다'(100%), '자주~많이 그렇다'(75%)에 답해, '가끔~어느 정도 그렇다'(50%), '별로 그렇지 않다~약간 그렇다'(25%), '결코 그렇지 않다~매우 조금만 그렇다'(0%)에 대다수가 답한 유럽의 노동자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사회적 관계도 엉망이 됐다. 동료·이웃과의 관계가 악화됐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전체의 80% 이상이었고 국가, 회사에 대한 신뢰도도 전체의 98% 이상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공권력이 잉태하고 키운 사회적 질병"
노동자들이 이러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는 요인으로는 채무의 증가와 회사의 회유 및 협박, 노사합의 사항 불이행에 대한 불안감 등이 지목됐다.
조사 대상자 중 90.6%는 노사합의 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임 소장은 특히 "파업기간 중 동일한 설문으로 조사했을 때는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상이 전체의 54.9%였으나 파업 이후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상을 나타내는 이는 71.1%"라며 노사 합의가 이뤄진 뒤에 우울증세를 보이는 노동자가 증가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들 노동자들에게 빠른 의학적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 쌍용차 노사가 합의했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지금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정신 질환은 자연재해가 아닌 공권력이 잉태하고 키운 사회적 질병"이라며 "정부, 경찰당국, 그리고 쌍용차 사측이 그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갑수 쌍용자동차 지부 보건부장은 "대타결 이후 회사나 정부에서 진행하는 일들은 오로지 우리 노동자들을 죽이려는 목적만 갖고 있는 것 같다"며 타결 이후 한 달간 합의 사항 이행에 나서지 않는 회사를 비판했다.
"예를 들어 정리해고 당사자가 아니지만 파업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합의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무한정 대기발령 상태다. (…) 아직도 공장 밖에는 용역 직원들이 있다. 이들은 노동자들 여럿이서 밖으로 움직이면 사진을 찍는 등 감시하고 있다. 파업에 동참했던 노동자뿐만 아니라 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김 부장은 이어, "공권력, 사측 용역들에 의해 크게 다친 이들도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수사는 전혀 없이 밑도 끝도 없이 편파적이고 강압적인 경찰 수사가 벌어지고 있다"며 "이 나라 경찰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수사를 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남택규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미 급여를 못 받은 지 오래된 조합원의 경우 채무 규모가 상당하고, 이러한 채무 구조가 정신적 후유증의 원인으로 지목됐다"며 "쌍용차는 즉각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파산이 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노동건강연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인권운동사랑방 등은 이와 같이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는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해 지난 12일부터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집단치유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권용식 노동건강연대 전문위원은 "정부와 회사가 노동자들을 계속 고립시키고 있는 지금 사회적 연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대상자에 따라 정신과 진료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9.09.14 18:12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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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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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 노동자 정신건강, '정상' 7%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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