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충해 잔칫집이 돼 버린 우리집 농사

초보농사꾼의 실패기

등록 2009.09.16 15:27수정 2009.09.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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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목도열병을 앓는 벼이삭 벼들의 알맹이가 하얗게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벼의 목을 보면 황색의 멍이 들어있다.

목도열병을 앓는 벼이삭 벼들의 알맹이가 하얗게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벼의 목을 보면 황색의 멍이 들어있다. ⓒ 조갑환


올 해 처음 지어 본 농사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논에 갈 때마다 화가 난다. 내 논 옆의 논들은 모두 잘 되어서 벼가 탐스럽게 열려 있는데 내 논의 벼는 마치 쭉정이 같다.


벼가 목도열병으로 말라 죽어 버렸다. 벼 목이 황갈색으로 변하더니 벼가 말라버리는 병이 목도열병이란다. 논의 반이 이 병으로 하얗게 변색돼, 벼들은 열매도 영글지 못하고 말라 버렸다. 남들 논은 누렇게 익어 수확의 기쁨을 기다리는데 내 논 벼는 친구들이 졸업하는데, 아파서 병실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몸이 아픈 학생의 슬픈 심정이랄까.

4년 전에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아 재테크를 해 보겠다고 산 논이다. 그 동안 다른 사람한테 임대를 주고 쌀 10가마니를 받아 왔었다. 올 해 말에 직장 정년이라 올 해부터 시작한 농사였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해 본 내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작년에 처음 농사를 지었다는 군대친구가 하는 말이었다.

"농사짓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데. 요즈음은 기계로 하니 주말농장식으로 짓겠데. 나도 처음 지어 봤는디 농사꾼보다도 더 잘 지었네."

현재 농사를 100마지기 정도 짓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친구에게도 물어봤다.

"돈 벌라고 하지는 말고 소일거리 한다고 생각하고 하소. 1단지에 3백만 원 정도 수입이 되는데 농자재값 등으로 2백만 원 정도 지출이 되고 남는 것은 1백만 원 정도일 걸세."


친구 말을 듣고 애초에 수익은 기대하지 않았고 그냥 내년부터 소일거리로 지어 보겠다고 올해 시범적으로 시작한 농사였다.

올 봄에 친구가 도와주어서 로타리를 치고 모를 심었다. 기계로 모를 심어서 모가 빠진데 가 많이 있었다. 그 때 남은 모를 가지고 빠진 곳을 심느라고 논에 들어가서 모를 떼웠다. 그 때가 농사 짓는다고 무논에 들어가서 직접 해봤다.


그 뒤에 농약 치는 일은 모두 남을 시켰다. 농약만 사다주고 해주는 사람에게 맡겼다. 농약해주는 비용은 1단지에 5만원이었다. 직장 때문에 농약 치는 것을 볼 수도 없었다. 그냥 돈과 농약만 갖다 주고 농약을 해 놓으라고 하고 농약을 쳤다고 하면 그러려니 했다.

물 봐주는 일이 힘들었다. 주말에만 가서 물을 대려니 힘들었다. 물이 없다고 아무 때나 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지정리를 해놓은 논이라 수문에 물이 내려오면 셔터로 철문을 내려서 막아주어야 우리 논으로 물이 들어오는 체계이다. 하루 내내 물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수문에 물이 흘러내리면 가서 철문을 내려주는 일이 고역이었다. 휴일에 물이 내려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 옆 비닐하우스 하는 분에게 부탁도 해 보았으나 자기 일처럼 해주지 않아서 물 봐주는 일이 가장 힘들었던 듯싶다.

이파리에서 벼가 나왔다. 우리 전라도 말로 벼가 출수하는 것을 배동갈이라고 한다. 벼가 나오니 정말 기뻤다. 농사를 이 맛에 하는가 보다. 열매는 농부들의 고생의 보람이다. 일주일 만에 가 보면 더욱더 열매가 튼실해지는 것 같아서 가슴 뿌듯했다. 그 때만 해도 이 정도면 농사가 지을 만 하다고 생각했다.

배동갈이를 하고 어느 날 가보니 왠지 내 논의 벼 이파리만 말라가는 것이었다. 원래 벼가 그런가 보다 하고 내버려두었는데 갈 때마다  더욱 심해지고 벼 잎사귀가 검불이 되어갔다. 불을 피우면 확 달아오를 것 같았다. 농사를 하는 친구가 와서 보더니 벼잎마름병이 너무 번졌다는 것이다. 늦었기는 한데 더 번지지 않도록 약이나 해 보자고 해서 농약을 쳤다.

농약을 친 후에 며칠 후에 가 보았다. 이제는 벼이삭이 하얗게 말라버리는 것이 몇 개 발견되었다. 일주일 후에는 하얗게 말라버리는 병이 엄청나게 번져 있었다. 목도열병이라는 것이다. 말라비틀어진 벼를 뽑아서 보니 목에 황색의 멍이 든 것 같은 자국이 있었다. 이 목 부분에 병충해가 든 것이란다. 또다시 농약을 쳤다.

농약을 쳤으나 효과가 별로다. 논에 갈 때 마다 병은 더 번지는 것 같다. 친구에게 농약을 더 할까도 물어 보았으나 이제 상황은 끝났다는 것이다. 농약 쳐 보았자 효과도 없고 그대로 수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그로기 상태다. 농사짓는 일에 ko당하기 일보직전이다. 잘 나가다가 병충해에 연타를 맞고 보니 이제 농사에 진더리가 난다. 원인을 알 수도 없다. 남들이 농약 할 때가 되었다고 하면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농약을 사다주고 남에게 맡겨서라도 했는데 말이다. 병충해란 놈들도 내가 초보농사꾼이라는 것을 눈치 챘나 보다. 내 논이 병충해의 잔치집이 되어 버렸다. 농사 중에 벼농사 짓는 일이 제일 편하다고 하는 데 벼농사도 만만한 게 아니었다.

내가 올 해 벼농사를 해 보니 농민들이 불쌍하다. 들녘에 농사는 잘 되어서 누렇게 풍년을 기약하는 데 노력을 해서 농사를 지어보았자 아무 이익이 없다. 그래서 농민들이 빚만 쳐지고 모두 농사를 버리고 도시로 떠나가나 보다. 사실, 농사지을 바에는 도시로 나가서 막노동이라도 하는 것이 보다 좋을 듯 싶다. 농사비용은 농자재 값이 올라 갈수록 증가하지만 막노동은 들어가는 비용은 없지 않은가. 나도 내년 농사는 다시 임대를 내 주어야 할 듯싶다. 농사꾼은 농사 전문가이다. 내가 농사꾼이 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농사경험이었다.
#벼농사 #목도열병 #잎마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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