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영원한 폴리페서 휴식처?

[보따리강사 이야기 19] 폴리페서 신드롬과 정치 중독증

등록 2009.09.16 20:41수정 2009.09.1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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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K 교수. 지난 6월 국회의원 재선거에 한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다가 경선과정에서 탈락하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곧바로 강단에 복귀했다.

사립대 L모 교수. 지난 2007년 제17대 대선후보의 정책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강의실을 등지고 현실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지금도 대학에선 여전히 교수 직위가 남아 있다.   

빙산의 일각일 뿐, 대학 사회에 셀 수 없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들이다. 교수신분으로 정계 진출을 모색하며 정치권의 유력 인사에게 선을 대거나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리는 '정치교수'로 통용되는 폴리페서. 그들은 대학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정규직 폴리페서들의 빈자리를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이 메워주고 있지만 여전히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교수직을 공직진출을 위한 '보험용'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교수사회 신규 진입을 노리며 오랫동안 비정규직 강사로 지내며 언제 자신에게 불어 닥칠지 모를 해고바람 앞에서 떨고 있는 이들의 현실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오히려 현실정치에 참여하려는 정치교수들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으니 가히 '폴리페서 신드롬'이라 할 만한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곤 하는 '철새형' 폴리페서 외에도 최근엔 정부의 '깜짝 발탁인사'에 묻혀 갑자기 사라졌다 또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신출귀몰형' 폴리페서들이 늘고 있다. 유형이 갈수록 기묘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부 대학과 정치권에서 폴리페서 규제안 마련이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퍽 다행스런 일이지만 문제는 권력과 폴리페서들의 유착 고리가 너무 오랜 동안 기득권으로 뿌리내리고 말았다. 질기고 강한 유착 고리를 과감히 끊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자리에 학문적 실용성과 학생들의 학습권 존중 풍토를 대신 키워 나갈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긍정보다 부정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뭘까. 이 정부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진행돼 온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마치 권력의 금단현상을 두려워하는 부나방과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 장면 하나] '대선캠프 기웃대는 폴리페서 538명'...그들은 지금 어디에?

a 대선 기웃대는 교수들...  <경향신문>이 2007년 6월 28일 대선을 앞두고 공개한 폴리페서들.

대선 기웃대는 교수들... <경향신문>이 2007년 6월 28일 대선을 앞두고 공개한 폴리페서들. ⓒ 경향신문

"폴리페서들의 행태는 매우 다양하다. 불쑥 찾아와 대통령이 되는 비책을 후보에게 전달하겠다는 '좌충우돌형'을 비롯해 상식 수준의 자료를 싸들고 와 면담을 요청하는 '보따리형', 여러 캠프를 돌아다니며 보고서를 제출하는 '나그네형' 등이 그것이다."


지난 20007년 대선을 앞두고 <교수신문> 신동준 편집국장은 폴리페서 유형을 이렇게 분류했다. 폴리페서의 출몰은 대선, 총선, 심지어 지방선거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중 대선 과정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행태는 특히 심하다.

제17대 대선을  6개월여 앞둔 2007년 6월 28일 <경향신문>이 공개한 '대선캠프 기웃대는 폴리페서 538명'이란 제목의 기사는 유력 대선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는 정치교수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케 했다.  

"교수 신분으로 각 대선주자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폴리페서'가 538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중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의 자문교수는 무려 495명에 달한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는 28명이 참여하고 있다. 범여권 손학규 후보는 5명, 정동영 후보는 10명 등이다."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의 자문교수들 가운데는 전국 국·공립대 교수가 83명(16.7%)이나 됐다. 이 가운데는 현직 학생처장도 자문단에 포함되는 등 서울대 교수만 21명에 달했다는 언론의 보도 내용이 주목을 끌었다.
 
한 유력 대선주자 캠프에서 활동한 교수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 3대에 걸쳐 대통령 직속 정책자문기구의 위원을 지냄으로써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선 과정에서 폴리페서의 극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확실한 건 대부분 어정쩡하게 교수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 그들에겐 그다지 중요치 않다.  

[# 장면 둘]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가장 주목 받은 집단은 '교수'?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가장 주목을 받은 집단은 아마 대학 교수일 것이다. 16명의 국무위원 후보 가운데 7명이 대학 교수 출신이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땅 부자'였다. 대학 교수는 4월9일 총선에서도 주목받았다. 지역구·전국구 포함, 42명이 출마해 19명이 당선됐다. 이 과정에서 18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뒤 학교로 돌아가려 했던 한 서울대 교수의 '폴리페서' 논란이 벌어졌다."

대선이 끝난 후 그들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2008년 4월 28일 <경향신문>은 한국 지식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경향신문 특별취재팀·후마니타스)이란 책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기사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단적인 사례지만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인 교수들이 정치권력과 맺는 잘못된 관계를 잘 묘사한 대목이다. 

<경향신문>이 오랫동안 연재한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을 바탕으로 엮은 책의 내용과도 일부분 일치한다. 특히 지식인이 지식인으로서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신문은 이렇게 지적했다.

"급기야 서울대 교수 81명이 '폴리페서 윤리규정' 건의문을 서울대 본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관련 규정이 지금까지 없었단 말이냐'며 놀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 와중에 들려온 소식 중 하나는 어느 시간강사의 죽음이었다. 시간강사들은 폴리페서들로 인한 강의 공백을 메우며 폴리페서 체제를 온존시켜주는 데 활용됐지만 정작 자신들은 사실상 영원히 불안정한 지위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산다."

이는 곧 지식인들이 군사독재라는 거악(巨惡)이 사라졌다는 점에 안도하며 권력에 대한 긴장을 놓아버린 것이 아닌지, 사회주의 몰락에 이어 더욱 전사회화 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 자본에 대한 거리두기에 실패한 것은 아닌지 하는 등의 의문들이 함축됐다.

얼마나 많은 대학 교수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보이던 후보 진영을 기웃거렸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9월 국회에서 폴리페서 금지법안이 어떻게 논의되고, 처리될지 여부에 관심이 증대되는 이유다. 

[# 장면 셋] 서울대, 폴리페서 논의 반복 또 반복...왜?

a 정치교수 논란 반복... 서울대 <대학신문>이 최근 보도한 정치교수 논란에 관한 기사.

정치교수 논란 반복... 서울대 <대학신문>이 최근 보도한 정치교수 논란에 관한 기사. ⓒ 대학신문

"국무총리 내정자인 정운찬 교수(경제학부)가 지난 7일(월) 사직서를 제출한 데 이어 조만간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그동안 지속돼온 정치교수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31년간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해 온 정운찬 전 총장의 사직서 제출에 서울대 학보사인 <대학신문>이 이례적인 일이라며 정치교수 논란에 새 불씨를 던졌다.

지난해 9월에도 서울대는 교수의 정치활동을 비롯한 각종 대외활동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교수 휴직·파견·겸임 제도 연구위원회(연구위원회)'를 발족한 바 있으나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대학신문>은 "정치교수 관련 사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교수의 대외활동과 관련된 규정을 정리해 모순된 부분을 개선하고 합리성을 높이겠다"는 연구위원회 측의 각오를 부각시켜 보도하면서 "늦어도 4개월 안에는 최종적인 규정안이 나올 예정"이라며 "관련 규정은 학내 구성원의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공수표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더니 1년 만인 지난 13일 '정치교수 논란 새 국면 맞는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 문제를 다시 상기시키려는 듯 이 신문은 "정년이 2년밖에 남지 않았고 사직서가 아직 수리되진 않았지만 파격적인 총리직 제안을 수락하며 사의를 밝힌 만큼 정운찬 교수의 사직 의사는 확고해 보인다"며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가 정계 진출을 하는 교수는 사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소의 소신을 지킨 것이라며 환영했다"고 전했다.

"정운찬 교수가 사표를 제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정계에 진출하는 교수가 학자적 양심을 가졌다면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을 생각해 사직해야 한다"는 학내 반응도 실었다. 그동안 정치교수 논란이 부각될 때마다 중심에 섰던 서울대 폴리페서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학은 정계에 진출했던 교수들이 별다른 제재 없이 복직해 온 관행이 지속된 데 대해 지난해부터 '정치교수 규제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학내에서 높게 일어왔다. 현행법상으로는 교수의 정계 진출을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최근 한 교수는 학기 중 지역구 선거에 출마했지만 3개월 감봉처분을 받았을 뿐이며, 또 다른 교수는 대통령실장직에서 물러난 뒤 아무런 조치 없이 복직되기도 했다.

학내 문제라는 점에서 서울대 교수협의회의 태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풀진 못할 것 같다는 전망이다. "교수협의회 역시 정치교수의 처분과 관련해 '교수의 사회봉사에 관한 가이드라인 연구'를 추진 중이나 아직 연구 진행은 미비한 수준"이라고 밝힌 <대학신문> 기사에서 읽힌다.

전직 총장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는 하지만 어찌됐건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거의 알몸인 상태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리는 모습은 여느 폴리페서들의 지향점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 장면 넷] 중앙대, 이재오 초빙교수와 진중권 해임교수... 차이는? 

a 본교가 폴리페서 휴식처? <중대신문>이 지난 5월 문제 제기한 폴리페서 관련 기사.

본교가 폴리페서 휴식처? <중대신문>이 지난 5월 문제 제기한 폴리페서 관련 기사. ⓒ 중대신문

지난 5월 18일. 중앙대학교 학보사 <중대신문>엔 정치적 냄새가 학내에 진동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재오 초빙교수, 공간 배정 특혜논란'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다. 기사는 "지난달 16일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이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임명된 후 본부에서 연구공간을 배정한 것을 두고 초빙교수 특혜논란이 일고 있다"며 "일부 교수들은 고질적인 공간 문제에 시달리는 중앙대가 초빙교수에게 따로 연구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초빙교수는 정원 외 교원으로 외부에서 초청된 비전임 교수를 일컫는다. 당시 한 교수는 "교수초빙은 문제가 아니나, 초빙교수에게 연구공간을 주는 것이 형평성에 적합한가는 재고해야 한다"며 이번 조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본부 관계자는 "이재오 초빙교수의 사회적 지위를 감안하고 본교가 얻을 잠재적 이익을 고려할 때 이정도의 예우는 마땅하다"고 기사에서 밝혔다. 

이에 앞서 이 대학 학보사는 '본교가 폴리페서의 휴식처?'란 제목의 기사에서도 "'MB시대' 탄생의 주역, 혹은 현 정권의 '실세 중의 실세'라 불리는 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이 본교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로 위촉되었다"며 "지난해 본교로부터 정치학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은 지 일 년여만의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 뒤 3개월여 만에 이 대학에서 이와는 대조적인 문제로 학내 갈등이 심화됐다.  정치 실세에 대한 호의적 태도와는 정 반대로 지난 2002년부터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를 맡아 왔던 진중권씨에게 대학은 냉혹했다. 중앙대는 진중권 겸임교수에 대해 "겸직 기관이 없다"는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한 데 이어, 이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한 학생의 징계 처리 방침을 밝혀 파문이 커졌다.

진 교수는 중앙대 재임용에서 탈락된 것을 비롯해 카이스트·한국예술종합학교·홍익대 강의도 잇따라 무산됐다. 오죽했으면 강준만 전북대 교수,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우석훈 연세대 강사, 홍기빈 국제정치경제칼럼니스트는 9월 1일 긴급성명을 냈다.

폴리페서 휴식처?...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

이들은 성명에서 "미학자이자 사회비평가로서 대한민국의 지식계에 소중한 역할을 해왔던 진씨가 공립·사립 대학교에서 연달아 자리를 잃었고, 여섯 개에 달하는 재판과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며 "진씨에 대한 유·무형의 압력과 탄압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중앙대 학생들도 진 교수의 재임용 탈락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항의의 표시로 빨간 색종이 10여 장을 총장실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일까. 학문적 실용성 강화 차원인가, 출세의 지름길이어서 인가.
이처럼 권력과 대학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현실정치 참여를 명분으로 교수가 본분에 앞서 공직진출의 교두보로 인식하고, 부실한 강의를 일삼는다면 결국 피해는 누구에게 가겠는가? 다른 교수나 강사들에게도 일정 부문의 노동과 책임이 전가될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학생들이다.    

이런 논리가 제기되면 곧바로 "정치군인은 안 되고 정치교수는 된다?", "공자는 폴리페서의 원조?"라는 희한한 명분을 내세워 중독성을 애써 감추려는 이들이 바로 폴리페서들이다. 그들에게 정치는 참으로 무서운 마약, 아니 그 이상의 것이다.
#폴리페서 #정치교수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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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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