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고 소박한 김구 주석의 집무실. 한복 두루마기, 박은식 선생의 서적 등 김구 주석의 당시 생활상을 사실과 가깝게 복원했다.
모종혁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생각보다 잘 단장되어 있다. 정문 위에 붙여진 대한민국임시정부 현판을 뒤로 하고 청사 안에 들어서면, 가파른 언덕에 위에 건물들이 이어져 있다. 왼쪽으로 2층짜리 1호 건물이 있고 오른쪽으로 2~3층의 2,3,4,5호 건물이 줄지어 붙어 있다.
본래 1호 건물은 서무국과 선전국 사무실로 사용됐다. 지금은 1층에는 중앙홀에 김구 주석의 흉상과 임정이 사용한 대형 태극기를 걸려있는 등 다양한 자료를 전시한 진열관으로 변모했다. 이 진열관에는 1919년 상하이에서의 임정 수립부터 1945년 해방 후 임정 환국까지의 각종 자료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들로 하여금 임정이 걸어왔던 역사 전모를 이해토록 한 것이다.
진열관 반대편 2호 건물 1층은 임시의정원 회의실 겸 식당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헌법에 명시된 최고기구였던 임시의정원에서는 1919년에 구성된 이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모두 39차례의 회의가 개최됐다.
2호 건물 2층은 외무부 사무실과 외무부장 및 외무차장의 집무실로 이용됐다. 이어진 3호 건물은 3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에는 내무부와 경위대 사무실, 2층은 재무부 사무실, 3층에는 김구 주석 집무실과 국무위원회 회의실이 있다.
김구 주석 집무실의 옷장 옆에 한복 두루마기가 걸려있다. 서가에는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놓여 있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김구 주석과 함께 청사 내 거주했던 조소앙 선생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삼균주의연구소를 두고 학문 정진에 몰두했다. 조 선생 옆방에 거주했던 이시영 선생 또한 조그만 풍로에 친히 밥을 지어 드시면서 조국해방의 의지를 불태웠다.
국민당 정부의 지원이 있었지만, 임정 대가족은 생활이 극도로 어려웠다. 쌀에 밥을 쪄서 콩나물국에 소금을 타 하루 세끼를 연명할 정도였다. 이러한 궁핍한 생활에다 안개 많고 습도 높은 충칭의 기후는 100여명의 임정 가족들을 괴롭혔다. 적지 않은 요인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중에는 김구 주석의 장남 김인도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