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없는 수박 만든 우장춘'의 숨겨진 진실들은?

[아이들과 함께 읽는 책50] <우장춘-종의 합성을 밝힌 과학 휴머니스트>

등록 2009.09.22 17:01수정 2009.09.2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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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의 아버지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 살해당할 것을 겁내 일본으로 도망간 우범선이다? ▲우장춘 그는 혼혈아다?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허약한 소년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훗날 그의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랐을 정도로 ▲우장춘에게는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아간 유명한 정치인 동생이 있다? ▲그는 일본의 식민지 차별교육지원 때문에 과학자가 된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자기 집에서 날밤을 세우며 화투나 마작 등의 노름이나 바둑을 즐겼다. 그것도 돈을 걸고 하는 내기를 좋아했다? ▲우장춘의 한국행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처럼 대단한 애국심 때문이 아니었다?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이 만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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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종의 합성을 밝힌 과학 휴머니스트>겉그림 ⓒ 다섯수레

우장춘의 일대기를 다룬 <우장춘-종의 합성을 밝힌 과학 휴머니스트>(다섯수레 펴냄)에서 만난, 우장춘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들이다. 이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가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있을까?


"우장춘 알아? 어떤 사람이야?"
"우장춘? 그 사람도 몰라?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이잖아! 그것 모르는 사람 있어?"

혹 나만 우장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른 아이 몇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표현은 저마다 다르지만 대답은 결국 하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뿐, 그에 대해 더 이상 아는 게 없단다.

하기야 나 역시 우장춘 박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에 대한 책 한권 읽은 적이 없고 글 한편 읽은 기억조차 없다. 그런데 올해는 우장춘 박사 서거 50주년이란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 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의도로 읽은 책이다.

그런데 이처럼 그는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사람이 아니란다. 수박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들려준 적도 있는데…. 그렇다면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교토제국대학 교수로 있던 '기하라 히토시'입니다. 그는 1943년에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후 그 연구 성과를 4년 뒤에 정식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우장춘도 교토제국대학을 오가면서 기하라 히토시의 연구 결과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씨 없는 수박을 처음 재배한 사람도 사실은 우장춘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신기하다는 소문을 듣고 일본에서 들여온 종자를 이용하여 씨 없는 수박을 생산한 농민들이 있었지요. 오히려 우장춘은 재배 농가들이 실패한 원인을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은 후에 시험재배를 했습니다. 그 시기가 1953년이니 씨 없는 수박이 처음 개발된 지 10년이나 흐른 뒤였지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우장춘이 씨 없는 수박을 처음 재배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릅니다. 물론 우장춘은 씨 없는 수박 개발자가 자신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책속에서


그럼에도 우장춘하면 '씨 없는 수박'이 왜 그림자처럼 따라다닐까? 저자는 우장춘 가족의 가난하고 멸시받은 불우한 가족사를 시작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우장춘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과학자가 되었으며, 일본에서의 연구와 업적들은 무엇이며 그 위상은 어느 정도였는지, 한국으로 오기까지, 한국에서의 외로운 생활과 연구 및 업적 등을 이야기 들려주듯 순서대로 소개한다.

정부가 육종학의 실용성 등의 위력을 알리고자, 또한 농민들에게 씨 없는 수박을 널리 알려 재배하게 하고자 의도하여 홍보함으로써 우리 국민들에게 '우장춘=씨 없는 수박 만든 사람'이 굳어져버린 내력과 진실을 들려주는 것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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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박사의 젊은 시절/우리 채소의 새로운 지평을 연 우장춘파의 원예 2호 배추 ⓒ 다섯수레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코너에서 우장춘 박사의 업적과 일본 식민지 차별 교육, 육종학 이야기 등을 중점 소개하는데 썩 좋은 자료들이다.

▲우장춘은 노벨상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을까?(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과 객관적 비교) ▲한국인은 고등교육을 받을 능력이 부족하다?(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식민지 차별교육 실태) ▲유전학 시대가 열리다(박사가 연구하던 시대의 과학적 배경 설명) ▲우장춘의 한국 귀환, 애국심? 휴머니즘?(박사의 한국 귀환 이야기) ▲채소의 육종기술이란? ▲씨 없는 수박에 관한 오해와 진실 ▲ 한국 배추, 게놈 연구의 세계 표준이 되다 등이 대략의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오랜 시간 잡다한 품종의 채소가 재배되어 왔기에 순종을 찾아내기 힘든데다 재래 품종만으로 우량 형질의 채소를 만드는 일이 매우 어려웠으니까요. 게다가 당시 상황은 채소의 수확량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그 수급을 원활히 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우장춘은 이 문제를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하기위해 그 사업을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추진했습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1950~1955년까지로 기존 품종으로부터 우량품종을 찾아내 채소 종자를 우리 스스로 생산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1955년 무렵에는 채소의 종자를 자급자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한국 경제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이룬 최초의 분야가 채소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책속에서

우장춘 연구팀의 두 번째 연구 단계는 1955년 이후로 서로 다른 품종들 사이의 교잡 시험을 추진함으로써 우량 일대 잡종 시대를 열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채소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우장춘 박사팀(우장춘파)의 이와 같은 연구들이 바탕이 된 덕분이다.

우리의 김치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건강전문잡지 <헬스>는 한국의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우리가 오늘날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우장춘 박사팀이 개발한 원예 2호 배추 덕분인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도입한 귤나무를 시험 재배하고 품종을 개량한 덕에 제주도가 대규모 감귤 생산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습니다. 아울러 무병 씨감자를 얻고 시험재배에 성공함으로써 황무지나 다름없던 강원도 대관령이 감자 특산지로 발돋움 할 수 있었지요- 책속에서

이제까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씨 없는 수박의 신화가 깨져서 약간 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장춘 박사의 큰 업적들이 '씨 없는 수박'에 가려 묻히고 있었구나. 이제까지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과학자를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이 때문인지 책을 모두 덮은 지금 그의 따뜻한 인간애가 바탕이 된 과학자로서의 삶에 자꾸 마음이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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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장춘은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가 떠나오기 직전에 찍은 일본에 두고 온 그의 가족들이다. 당시 일본과 국교 단절 중이라 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듣고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 다섯수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일화 하나. 일본과 국교가 단절된 그때, 일본에 모든 가족들을 두고 가난에 허덕이는 아버지의 나라를 선택한 우장춘은 죽는 날까지 외롭게 살았단다. 두 나라의 대립 때문에 그는 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도 달려가지 못한다. 우리 측에서는 그가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를 염려했을 정도로 그는 소중한 존재였다고도 한다. 일본에 가지 못하는 그에게 전국에서 조의금이 답지한다.

그는 또 물이 부족한 연구소에 우물을 파고 '자유천'이라 이름을 붙인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젖 같은 샘'이란 뜻이란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인간애를 잘 드러난 일화다.

이뿐이 아니다. 우장춘 그의 삶은 감동스럽다. 이 책을 통해 씨 없는 수박 신화에 가려 거의 묻혀버린 그의 과학적 업적과 솔직하고 따뜻한 인간애가 부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이 때문일까. 이런 책의 출간이 참 고맙다. 부디 많이 읽혔으면 하는 책이다.

2009년은 세계적인 유전육종학자 우장춘 박사가 돌아가신 지 50년을 맞는 해입니다. 우장춘 서거 50주년을 맞아 이 책을 내놓습니다. 우장춘은 우리에게 다윈 못지않게 소중한 과학자입니다. 그는 '종의 합성이론'을 명쾌하게 입증하고 채소 일대 잡종 기술을 개발하는 등, 노벨상 후보에 올라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학문적으로 매우 뛰어난 과학자였습니다. 그간 우장춘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여러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씨 없는 수박'을 우장춘의 대표적 업적으로 소개한다든지, 그를 지나치게 애국자 혹은 천재로 그린다든지 하는 점이 그렇습니다. 이 책은 우장춘의 삶속에 녹아있는 과학자의 진면목과 과학에 스며있는 그의 인간적 흔적을 충실히 담으려고 했습니다. -저자의 말 중에서

편집자에게 물어봤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장춘은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런 그가 다만 시험재배만 했을 뿐이다? 이제껏 믿고 있던 신화가 깨졌다는 실망감이 크다. 그러나 과학자 우장춘, 인간 우장춘에 박수를 더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의 아버지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인물이다? 등 이제까지 알고 있는 우장춘, 의외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에 대한 (친일파 운운 등)의 평가는 어떤가?
"책에 있는 것처럼 당시 잠깐 논란이 되었으나 그때 이후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은 걸로 안다.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런지 오히려 애국자라는 평가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으로만 지나치게 강조되어 알려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의 업적이 많이 가려진 것 같다. 이제라도 많이 알리고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다."

-<우장춘-종의 합성을 밝힌 과학 휴머니스트> 이 책은 '살아있는 역사인물 시리즈 1권'으로 되어 있다. 이 시리즈는 몇 권까지이며 우장춘처럼 근·현대 인물이 주인공들인가?
"현재로서는 15권 가량 계획하고 있는데 특별하게 시대적 배경은 기준하지 않았다. 기준이 있다면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연속성, 즉 옛날 업적으로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선정 기준이다. 연암 박지원에 관한 책이 곧 나올 예정이고 송만갑 이야기도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연암 박지원은 학자로서의 삶을 우선할 것이다. 판소리의 대가 송만갑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작가 선생님이 집필중인데 그의 일화가 꽤나 많아 무척 기대된다. 어떤 원고가 나올지 말이다. 그동안 위인전 대부분은 그 인물의 진면목보다는 위인이니까 어린 시절부터 비범했고 천재였다는 등 무조건 훌륭하다는 쪽으로 통틀어 이야기되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출판사의 이 역사인물 시리즈는 역사인물마다의 대표적인 업적과 인간적인 측면에 우선 비중을 둘 것이다. "

※9월 21일 출판사 편집자와의 통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근배 (지은이) | 조승연(그림) | 다섯수레 | 2009-08-25


덧붙이는 글 김근배 (지은이) | 조승연(그림) | 다섯수레 | 2009-08-25

종의 합성을 밝힌 과학 휴머니스트 우장춘

김근배 지음, 조승연 그림,
다섯수레, 2009


#우장춘 #육종학 #씨 없는 수박 #우범선 #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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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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