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개콘 새코너 '남성인권보장위원회'

황현희의 새로운 시사풍자 개그... 결의에 찬 진보가 웃음 소재로

등록 2009.09.22 11:04수정 2009.09.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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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원 개콘의 새 코너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의 첫 회 모습. 진보세력을 희화화한 모습의 개그맨들이 눈에 띤다. ⓒ 금준경


지난 20일 KBS 2TV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남성인권보장위원회(줄임말 남보원)'가 막을 올렸다. 황현희, 박성호, 최효종이 선보인 이번 코너는 연인 사이에서 남성이 밝힐 수 없는 내면을 드러내며 웃음을 선사했다.

그런데 이번 코너 출연진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우선 황현희와 박성호의 만남부터 심상치 않다. '집중토론', '소비자고발'에서 시사풍자 요소를 가미했던 개그맨 황현희. 그리고 '선생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합니다!'로 시작하는 운동권 개그와 '보람상회' 코너에서 정치, 사회의 풍자 요소를 가미했던 박성호의 만남은 시사풍자 개그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첫회를 봤을 뿐인데 몇가지 풍자 장치가 인상깊다. 우선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정치적인 뉘앙스. 진보세력으로 말하면 연대의 뉘앙스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추측은 박성호와 황현희의 복장을 보는 순간 억측일 수도 있다는 미미한 예측에서 농후한 확신으로 굳어진다. 긴 수염과 눈 아래의 점, 그리고 한복을 입은 박성호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을 연상시킨다. 붉은 조끼와 붉은 머리 띠를 착용한 황현희는 민주노총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대체 이 단체는 왜 만들어진 것일까? 황현희는 시작하는 말에서 "우리는 사회에서 성차별을 받은 남성들을 대변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와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를 결의했다. 그렇구나! 남성인권을 위한 투쟁. 농민, 노동자, 여성의 약자인권 강화만을 소리치던 진보의 모습에서 남성의 인권을 외치는 모습은 역설적이지만 흥미롭다.

코너의 내용과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콩트의 경우 남녀 간 경제적 평등에 관한 것이다. 우선 최효종이 남성의 경제적 평등이 필요한 상황을 제안한 후 여성들에게도 남성들과 동등한 경제력을 요구한다며 안건을 발제한다. 이어 황현희는 '남성 동지'들을 향해 구호를 선창한다.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값은 니가 내라!"
"팝콘값은 내가 냈다! 집에 갈 땐 혼자 가라!"


직후 애절한 음악이 나오며 박성호가 여성을 향해 호소한다.

"여성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영화표 값 아끼고 팝콘 값 아껴서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안건 공유 후 구호 제창, 그리고 감정에 호소하는 애절한 발언. 역시 황현희다. 어느 진보단체의 기자회견이나 발대식에서 보던 순서와 흡사하니 말이다. 진보성향 시사주간지 <시사IN> 발행 축사를 할 정도로 황현희는 사회와 진보, 정치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관심이 치밀한 분석력을 낳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경외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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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인권보장위원회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의 첫회 모습. 구호를 제창하기 위해 일어서는 관객들. ⓒ 금준경


같은 형식으로 두 번째 콩트가 끝나고 황현희는 객석을 향해 소리친다.

"자, 여기서 끝날 게 아닙니다. 남자분들 자리에서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불평등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여자들을 향해 외칩시다!"

청중의 '팔뚝질'로 결의를 다지는 것은 결의대회의 불문율이 아니었던가. 수긍하던 찰나에 박성호는 다시 한번 호소한다.

"앉아 있는다고 살림살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이 순간 내 입에서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고 TV속 객석에서도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점입가경이다. 독특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내용을 진보의 모습을 통해 시쳇말로 싱크로율 대박을 보여준다.

개그프로그램에 무슨 잡설이 이리 많을까 하며 이 기사를 읽는 분들도 더러 계시겠지만 진보를 따라하는 코너라서 재미있는 코너인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보자면 희화화의 대상이 진보라는 점, 내용이야 어떻든 비장한 모습이 웃음거리라는 점, 그 흔한 대통령 성대모사조차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서 유독 진보를 갖고 놀린다는 점은 냉소와 조소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정치인들이 연극을 만들어 대통령을 비웃을 정도의 잃어버린 10년의 정치풍자의 전성기가 아직 그립다. 풍자개그 씨가 말라가는 최근 추세에 비추어 직설적이진 않지만 조금 더 노골적인 시사풍자가 살아났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니 소위 진보세력이라 불리는 자들은 이 코너를 꼭 한번쯤은 보았으면 한다. 투쟁일변도의 모습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았는지.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지만 많은 대중들이 공감하고 선뜻 일어나 구호를 제창할 수 있는 모습에서 부러움은 느껴지지 않는지. 좀 더 폭넓은 생활 진보를 위해 즐겁고 신나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어떠한지. 유독 오른쪽 날개로만 비상하려는 삐뚤어진 비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무엇이 부족했는지 고민하고 변화하길 바란다.
#개그콘서트 #황현희 #남보원 #박성호 #강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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