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자기성찰을 꿈꾸는 당신에게

[서평] 왕멍(王蒙) 단편선 나비

등록 2009.09.28 13:35수정 2009.09.28 21:53
0
원고료로 응원
왕멍 단편선 '나비'는 <견고한 죽>, <밤의 눈>, <나비>, 세 편의 중국 개혁 개방 이후 1980년대 중국을 다룬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 수록 작품들을 통해 중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관료이자 지식인이었던 한 인간의 고뇌와 열정을 살피며,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행로난(行路難)이라고 했다. 집에 있으면 편안하지만 집 문 밖을 나서면 바로 고생이다. '고위 간부'로 사는 것이 결코 수월치 않은 것처럼 일반 평민으로 사는 것도 역시 수월치 않았다." (나비, 163)


문득 얼마 전 유행했던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광고 카피가 떠오르는 위 문구는 2000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정식 추대되면서 당대 아시아권 작가들 중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네 차례나 거명되기도 했던 왕멍(1934~)의 자전적 단편소설에서 주인공 장쓰위엔이 독백하는 내용이다.

<나비>를 왕멍의 자전적 소설이라 함은, 나비의 주인공인 장쓰위엔이라는 인물이 중화인민공화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겪은 이야기가 바로 왕멍 자신의 삶과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왕멍은 195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가, 문화대혁명 당시 우파분자로 낙인찍힌 뒤 오랫동안 소설 쓰기를 중단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왕멍은 '밤의 눈', '볼세비키의 경례', '나비', '봄의 소리'를 비롯한 수십 편의 중단편소설과 장편소설 '변신 인형'과 같은 작품을 창작하게 된다. 이후 왕멍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과 우리식으로 하면 장관인 국무원 문화부 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왕멍 단편선 수록 작품
견고한 죽
아침에 '죽'을 먹는 중국인들의 오랜 식습관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한 집안에서 할아버지부터 증손자까지 4대가 연출하는 분란을 담고 있다. 전면적인 서구화를 주장하는 서구파에서부터 완고한 보수주의파, 민주적 개혁을 주장하지만 현실과 유리된 민주파 등으로 나뉜 가족들이 서로 경쟁하다가 결국은 다시 '죽'으로 돌아옴으로써 '죽'의 견고함을 입증하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밤의 눈
문혁 시기에 우파로 지목되어 외딴 시골로 내려간 진실하고 순수한 한 인물이 베이징에 출장을 가는 길에 부탁 받은 심부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는 타락한 당 간부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양의 다리'로 상징되는 절박한 생계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반 기층 민중들의 세계와,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밤의 눈'으로 남아 있는 타락한 당 관료의 세계와 이분법적으로 대비시켜 그리고 있다.

나비
왕멍 자신의 삶과 상당 부분 겹쳐 있는 「나비는 우리나라의 차관 급에 해당하는 부부장 직에 있는 주인공이 어느 날 모든 수행원을 물리치고 과거 우파로 낙인찍혀 내려가 지냈던 산골 마을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과 예전에 자신과 같이 생활하였던 순박한 산촌 사람들을 만난 뒤 다시 부부장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왕멍은 "혁명에 충성을 바치려면 문학을 배반해야 한다. 그런데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

을 하자면 혁명 진영 입장에서 볼 대는 수치스러운 배반자가 된다."는 말로 당 관료와 문학가, 즉 정치와 문학 사이에 있었던 그의 존재적 기반과 문학 세계를 표현한 바 있다. 또한 왕멍은  '중국인들에게 문화대혁명과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이렇게 풀어준다.


'우리의 공화국과 우리들 모두가 성숙하지 못하여 범했던 잘못"(나비, 117)이라고. 즉 혁명이 가져다 준 고통은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중국 현대사의 상징인 셈이다.

그러한 현대사의 증인으로 서 있는 왕멍은 '밤의 눈'에서 80년대 이후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회자되는 유명한 문구가 된 "민주와 양의 다리가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언급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중국 미래의 궁극적 지향점을 암시한다. 그러기에 왕멍이 주인공 장쓰위엔의 귀향길을 묘사하며 "행로난(行路難)이라고 전제한 뒤, 이어 귀향을 "혼을 되찾는 과정이자, 그들(인민) 모두를 윤택하고 부유하게 살도록 할 책임과 의무를 되새기는 과정이다. 또한 귀향 체험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민중에 대한 소명 의식을 일깨우는 개인적 과정이기도 하다."고 고백한 이유를 되새겨 봄직하다.


추석을 앞두고 온 국민이 귀향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올해는 '추석연휴 짧아 사람 대신 선물이 귀향한다.'는 제목으로 귀향하지 못하는 이들이 마음으로나마 고향으로 벌써 달려가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마음이든 몸이든 다들 고향으로 달려가는 추석이다. 바라기는 비록 몸뚱어리는 귀향을 하지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모두가 고향으로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귀향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초심을 회복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만나는 모두를 윤택하고 부유하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의 밀알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왕멍 단편선, '나비'를 권하고 싶다.

나비

왕멍 지음, 이욱연.유경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


#왕멍 #견고한 죽 #귀향 #나비 #밤의 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