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0대 국무총리 취임식에서 정운찬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우성
하나를 더 보탠다면, "보수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가 한국 사회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명제가 '참'이라면 지난 15대에 이어 16대 대선에서도 '차떼기 부패당'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한나라당은 진즉 없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17대 총선에서 121석을 얻어 단지 12석이 줄었을 뿐이다.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몰아친 가운데서도.
해석이 분분했다. 일단, 보수우파의 부패에는 너그럽고 진보좌파의 부패에는 추상같은 국민의 이중기준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다른 가설도 가능하다. 보수우파의 부패에는 관대하면서도 진보좌파의 무능과 분열에는 엄격한 국민성 덕분(?)이라고나 할까?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과반인 152석을 차지했다. 탄핵 역풍 덕분이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분열로 그 이후 각종 선거에서 무려 30 대 0으로 진 뒤에야 18대 총선을 앞두고 소멸되었다. '보수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명제는 '거짓'이었지만, '진보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는 '참'이었다.
이런 비합리적인 국민성과 이중기준을 간파한 것일까?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족벌언론은 '진보좌파' 정부 10년 동안 끈질기게 부패라는 '진보좌파'의 약한 고리를 공격했다. 이들은 '00 게이트' 운운하면서 '진보좌파'의 부패 이미지를 덧씌웠다. 권력형 비리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게이트라고 공격함으로써 '진보좌파도 정권을 잡으니 부패한 보수우파와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국민들의 이와 같은 정치의식의 변화 속에서 가능했던 측면이 크다. 결과적으로, 실제로 무능했건 아니면 무능한 이미지 탓이건, 순진한 진보좌파는 교활한 보수우파의 적수가 안되었다. 위장전입 5번에 양도소득세 등 3억5천여만원의 세금을 탈루한 의혹이 있는 '만신창이 대통령'의 탄생은 이런 배경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맨주먹으로 300억대 재산을 일군 이명박 대통령을 청부(淸富)로 여기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비록 때는 많이 묻었더라도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 눈감아 줄 수도 있다는 '비판적 지지'였다. 왜냐하면 그가 원래 부패한 '차떼기 정당'과 보수우파의 후보였으니까.
정운찬 총리후보 지명 3주 만에 깨진 '신선한 충격'그러나 국민의 인내력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MB는 야당후보를 압도한 지지표에 취해 그걸 몰랐다. 보수우파의 부패에 관대한 국민성을 과신한 나머지 그는 자신과 출신 배경이 흡사한 '강부자'(강남 땅 부자)와 '고소영 S라인'(고려대-소망교회-영남+서울시청)으로 참모진과 내각을 채웠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망사(亡事)였다. MB 정부와 한나라당의 지지도 하락은 이때 시작되었다.
그리고 1년 6개월 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MB 정부는 지난 9.3 개각 인사에서 중도-실용주의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후보자로 지명했다. 충청 민심을 겨냥한 심대평 카드의 무산이라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민 반응은 일단 지난 10년간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코드인사'라고 비판했던 한나라당 정권이 강부자-고소영 S라인 인사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러나 '신선한 충격'은 그로부터 3주 만에 인사청문회를 통해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그는 서울대 총장 시절 기업체 대표로부터 용돈 1천만원을 받아 썼고, 인세 수입과 기업 자문 및 강연료 등으로 발생한 세금을 탈루했으며,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고령으로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미국서 낳은 아들은 청문회 직전까지 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만신창이 대통령'에 이은 '만신창이 총리후보'였다.
아들 국적이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 문제는 정 후보자가 그런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점이다.
정 후보 아들의 이중국적 의혹 제보를 받은 당시 인사청문위원인 김종률 의원이 국적 확인을 요청하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지난 13일 '후보자 및 배우자, 자녀의 국적 및 국적 변동 관련 신고내역, 관련서류 사본 1부' 제출을 의결했다. 그러나 이틀간의 청문회 가운데 첫날인 21일까지도 정 후보자는 그 '사본 1부'를 제출하지 않았다. 1시간이면 준비할 수 있는 서류를 1주일 동안 제출하지 않은 것은 고의적 은폐다.
그러자 김종률 의원이 청문회 첫날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물었다. 이중국적자인 아들이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그러자 정 후보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한 가지 여쭤볼 게 있다, 제 아이가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는 말이냐?" 그러곤 다음날 이렇게 실토했다.
"(이중국적자였던) 아들이 제대 후 2년 내 국적을 택일하게 된 국적법을 몰라 한국 국적을 자동으로 상실했고 최근 이 사실을 알고 국적 회복을 위해 16일 미 국적 포기를 신청, 절차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