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백년설 동상 건립에 "친일파 안 돼"

경북 성주고 총동창회 추진에 지역 농민회·전교조 '철회' 요구

등록 2009.09.30 14:49수정 2009.09.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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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백년설 동상이 웬말이냐!!" 성주군 농민회 등 시민단체들이 백년설의 동상 설립을 반대하며 동네 입구에 내건 현수막 ⓒ 임정훈


다음 달 친일인명사전 출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친일파로 분류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가 확정된 대중가수 백년설(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출생)의 노래비와 흉상이 모교 교정에 들어설 예정이어서 지역 사회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경북 성주고 총동창회는 오는 10월 10일 총동창회 행사를 하면서 이 학교 출신 대중가수 백년설의 노래비와 흉상 제막식을 하기로 했다. '나그네설움'이 새겨진 노래비는 이미 지난 28일 체육관과 기숙사 사이에 설치됐고 흉상은 행사 당일인 다음달 10일 제막식을 할 예정이다. 성주고 총동창회는 지난 5월 30일 이사회를 열고 총 3천만 원(동창회 추정)이 투입되는 백년설 노래비와 동상 건립사업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지역 농민회와 전교조 등 시민단체들은 "친일파의 노래비와 흉상을 공립학교 교정에 세우는 것은 학생들의 역사관 정립 및 도덕성 함양에 상당한 혼란을 주는 끔직한 일"이라며 반대 뜻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교육적으로 알맞은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총동창회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이라며 노래비와 흉상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 학교 주설자 총동창회장은 이러한 논란에 대해 "백년설의 친일 논란에 대해 동문들은 피치 못할 강요에 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친일 노래는 잘못 됐지만 나머지 노래는 정말 좋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모교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한 것인데 이렇게 시끄러울 줄 알았다면 안 했다"면서도 "이미 동상 등 제작이 완료돼 설치만 남은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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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설 노래비 성주군 성밖 숲에 건립돼 있는 백년설 노래비. 성주고에 세워진 것과 같이 <나그네설움>이 새겨져 있다. ⓒ 임정훈


성주고 권순박 교장은 "개인적으로 반대했지만 뜻대로 안 됐다. 학교 밖에도 노래비가 있는데 굳이 동창회에서 추진하는 것과 이처럼 논란이 되는 것이 학교에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직 장관 등이 회원인 동창회의 힘이 세서 역부족이다"라고 토로했다. 8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성주고는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5공)을 비롯해 강희락 경찰청장 등이 동문이다.

특히 이상희 전 장관은 2003년 당시 성주고 재경향우회장으로 성주군과 함께 '백년설 가요제'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백년설가요제 역시 백년설의 친일문제로 지역 시민단체들이 반발해 2003년 제1회 대회로 막을 내린 바 있다.


성주군 농민회 여우연 사무국장은 "년설 노래비와 흉상 건립에 대해 군 단위의 공청회를 하자고 동창회장에게 제안했으나 거절했다"고 밝히고 "친일 행적이 분명한 사람의 노래비와 흉상을 교정에 세운다면 학생들에게 역사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주장했다. 이후 "경북교육감 면담 요청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노래비와 흉상 건립의 부당성을 알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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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설 . ⓒ .

본명은 이갑용(李甲龍) 혹은 이창민(李昌民)이다. 경상북도 성주에서 출생하여 성주농업보습학교(성주고의 전신) 4회(1931년) 졸업생이다.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여 가요계에 데뷔하였고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 등을 연속 유행시켰다.

대표곡은 1940년 발표한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이며, 이 밖에도 <삼각산 손님>, <고향 길 부모길>, <남폿불 역사>, <눈물의 백년화>, <산팔자 물팔자>, <천리정처>, <아주까리 수첩> 등 히트곡이 있다.

1941년 지원병제가 실시되면서 <아들의 혈서>, <혈서지원>, <위문편지>, <지원병의 어머니>, <즐거운 상처> 등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친일 가요를 다수 불렀다.

이 가운데 조명암이 작사한 <혈서지원>은 혈서를 쓰면서까지 지원병이 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으로 후렴구에는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라는 가사를 담고 있어 군국가요 가운데서도 친일성이 농후하다.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을 지냈으며 1961년에는 한국연예협회 기획분과 위원장을 맡았다가 1963년에 은퇴, 가수인 심연옥과 결혼한 뒤 1978년에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함께 이민을 갔으며, 2년 후인 1980년에 미국에서 사망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는 10월 출간 예정인 친일인명사전의 음악인 부문에 등재가 확정되었다.

<위키백과사전과 자료 참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친일파 #백년설 #민족문제연구소 #성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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