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풍년가 부르는 순천만의 허수아비

[추석연휴 가볼만한 곳] 허수아비 구경

등록 2009.09.30 15:19수정 2009.09.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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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겨워하는 허수아비 아가씨들입니다. 올해도 풍년입니다. ⓒ 조찬현


낡은 밀짚모자에 다 떨어진 누더기를 걸쳤어도 그저 정이 갑니다. 미친년 치맛자락처럼 아무렇게나 갈바람에 흔들려도 그저 좋기만 합니다. 순천만의 허수아비는 아무 때나 찾아가도 항상 웃음으로 다정다감하게 대해주기 때문입니다.

풍년농사를 갈아엎는다는 농부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울컥거립니다. 들판에서 그런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는 허수아비 녀석들의 맘은 어떨까요. 애간장이 타고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을 겁니다. 그래서 일 겁니다. 농작물을 쪼아 먹는 참새 떼들을 쫓으라고 했더니 참새들과 함께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사전을 찾아보니 허제비라고도 부르는 허수아비는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을 빗대어 일컫는  '허수(虛首)가 달린 아비'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정작 허수아비는 다른데 있는 것 같습니다. 쌀값하나 제대로 어찌 못하고 제구실 못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언제나 웃으며 불러볼까 풍년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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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아가씨들이 오색 줄을 잡고 풍년가를 부릅니다. ⓒ 조찬현


동산에는 허수아비 아가씨들이 모여 강강술래를 합니다. 여행객들은 그 원안에서 또 다른 원을 그리며 손을 잡고 돕니다.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허수아비의 결혼행렬이 지나갑니다. 광주에서 왔다는 한 여행객은 가마에 탄 허수아비 신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허수아비 아가씨의 머리위에는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녀석이 허수아비 아가씨의 흉내를 내고 있나봅니다. 한참이 지나도록 날개를 펴고 그대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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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의 결혼행렬이 지나갑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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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의 허수아비는 아무 때나 찾아가도 항상 웃음으로 대해줍니다. ⓒ 조찬현


옛날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밀짚모자를 쓴 우스꽝스런 허수아비도 있습니다. 검은 두건을 쓴 허수아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허수아비, 할머니 할아버지 허수아비도 보입니다. 허수아비와 한참을 노닥거리다 화포로 가는 길을 따라나섰습니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의 색감이 너무나 곱습니다.


허수아비들의 진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허수아비는 어울리지 않게 꽃밭에 파묻혀서 놀고 있습니다. 졸졸대는 개울가에는 갈대가 하늘거리고 고마리 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이곳 길가와 들녘에는 별별스럽게 생긴 허수아비들이 다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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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얼굴의 허수아비도 보입니다. 누굴까요? 정말 어떤 분을 많이도 닮았습니다. ⓒ 조찬현


이곳은 '별량 농협 친환경직영농장'입니다. 황금물결 넘실대는 농장에는 온통 허수아비들로 가득합니다. 허수아비 아가씨들이 오색 줄을 잡고 풍년가를 부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의 허수아비도 보입니다. 누굴까요? 정말 어떤 분을 많이도 닮았습니다. 그분 아마 '쌀'을 '살'이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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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도 많은 허수아비 대군들이 지키고 서 있는데도 참새들은 아랑곳없이 들판을 오갑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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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가마를 지고 안간힘으로 일어서려는 어린 허수아비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 조찬현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이리도 많은 허수아비 대군들이 지키고 서 있는데도 참새들은 아랑곳없이 들판을 오갑니다. 개울 갈대숲은 참새 울음소리로 가득합니다. 진목마을 입구에 이르자 허수아비들의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정각에서는 장기 한판이 붙었습니다. 허수아비 풍물단의 사물놀이 한바탕도 열립니다. 논가에서 쌀가마를 지고 안간힘으로 일어서려는 어린 허수아비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향토예비군 허수아비들이 농사일도 돕고 있습니다.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 오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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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누이는 코스모스 꽃이 예쁘고 허수아비는 재밌게 생겼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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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질을 하는 허수아비도 있습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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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와 갈바람에 날리는 억새꽃이 가을분위기와 썩 잘 어울립니다. ⓒ 조찬현


허수아비가 소달구지도 몰고 갑니다. 쟁기질을 하는 허수아비도 있습니다.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와 갈바람에 날리는 억새꽃이 가을분위기와 썩 잘 어울립니다. 겁 없는 참새 녀석들은 허수아비 무리 속으로 자꾸만 날아듭니다.

가을들녘에는 황금물결이 넘실댑니다.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갈바람이 휘젓고 들녘을 지날 때면 인근 마을의 소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옵니다.

엄마와 함께 허수아비 구경에 나선 쌍둥이 오누이(6·이원, 이준)는 코스모스와 허수아비가 있는 풍경이 좋은 모양입니다. 코스모스 꽃을 따 서로에게 건네며 동심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오누이는 코스모스 꽃이 예쁘고 허수아비는 재밌게 생겼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 다음'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순천- 보성방향 2번국도 - 별량 상림사거리 좌회전- 화포 가는 길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라도뉴스' 다음'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순천- 보성방향 2번국도 - 별량 상림사거리 좌회전- 화포 가는 길
#허수아비 #순천만 #풍년농사 #황금들녘 #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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